능력의 손길(시편77:1-12)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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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0-11-06 20:47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인 77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다시 간구하는 기도이다. 옛말에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한다'고 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위기의 순간에는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게 된다.
신앙의 체험 수기로 가득한 "가이드 포스트(Guideposts)"라는 월간 잡지에 실린 체험 수기이다.
어느 남 밤, '메이시'는 천둥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가려고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니 이미 그곳은 불길이 번져 연기가 가득했다. 메이시의 집이 벼락을 맞은 것이다. 메이시는 거실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길 때문에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연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야만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당시 '메이시'는 여섯 살로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는 언제나 밤이 되면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렀다. 뒷문으로 나가려면 아버지는 안에서 질러진 빗장을 열기 위한 특별한 자물쇠를 가지고 다니셨다. 그러니, 열쇠가 없는 메이시는 진퇴 양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앞문으로는 불길 때문에 갈 수 없었고, 뒷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주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 드리며, 메이시는 있는 힘을 다해 아빠를 불렀다. 공포가 엄습해 오려는 순간, 메이시는 어둠 속에서 아빠의 손이 복도 아래로 메이시를 이끌어 뒷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인도해 주어 무사히 빠져 나오게 되었다. 아빠는 메이시를 마당까지 데려다 준 후, 다시 사라졌다. 메이시는 겁이 나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섰다. 바로 그 때, "메이시, 메이시!" 엄마가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메이시에게 달려 왔고, 엄마와 메이시는 집 앞으로 갔다. 거기에는 아빠가 아기 동생 <켄트>와 세 살 짜리 여동생 <에이미>를 데리고 서 있었다. "메이시, 무사했구나!" 라고 아빠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널 데리러 가려는데 불길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었어." 아빠는 메이시를 불길 속에서 꺼내 주지도 않았고, 뒷문을 열어 마당까지 데려다 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가 이 신앙 고백을 하기 12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때의 따스한 손길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위기 관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판단이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 그러나 현실은 괴로운 것이다
본문1-3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당면한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탄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감싸던 평안과 위로는 사라져 버렸고, 영혼은 불안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간절한 심령으로 부르짖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2절).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다.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기도는 끈질기게 해야 함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 창32:24-29(천사와 씨름한 야곱), 눅18:1-8(재판관의 선처를 부탁하는 과부의 끈질긴 요청)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응답을 얻는 기도는 ①흔들림이 없는 믿음(의심치 않음) ②목적이 분명한 기도(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③끈기 있게 인내하는 기도 ④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바라는 기도이다.
그러나, 시인의 이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고, 평안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기도의 공전은 시인으로 하여금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했다. 여러분들도 때때로 응답이 없음으로 인하여 기도에 지칠 때가 있지 않는가? 본문의 시인은 응답이 없어서 괴로운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뢴다.
2. 괴로운 현실에서의 생각과 물음은 무엇인가?
본문4-9절에서 시인은 이 당면한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영적 고민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겪는 고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고민은 죽음의 서곡이요, 다른 한 고민은 생명의 서곡이다.
-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고민은 영의 삶에 대한 근심이며, 육신의 삶에 대한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근심이다. 시인은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문7-9절,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영적인 환경마져 답답할 때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회개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이렇게 가면 그 끝은 어디일까? 등등. 그러나 이러한 것은 내 영혼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스스로의 점검인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하여 시동을 걸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몇 번 계속 재시동을 걸다가 그래도 안되면, 번 네트를 열고 이것저것 점검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의 삶도 이와 같다. 신앙의 삶에 무엇인가 제동이 걸리고 적신호가 들어오면,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재점검을 해야 한다. 왜 이런 고통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고통을 통하여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의 점검은 낙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검 때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이는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통하여 현실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 신앙적인 회의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본문10-15절에서 시인은 이 극심한 고통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더욱 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의 용기를 되살리고 있다.
그렇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영적인 회의', '삶의 근심'을 이길 수 있는 첫걸음은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는 과거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온갖 삶에서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지금도 역시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사람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는 사람의 목숨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교훈을 전해 주는 것이다.
구 소련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냉동 회사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은 그 냉동 회사에서 고기의 육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청년이 어느 날, 퇴근길에 실종되었다.
이 청년이 실종된 다음 날, 다른 회사 직원이 냉동 컨테이너를 열었을 때, 실종된 청년이 죽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죽음을 조사하던 경찰이 컨테이너의 벽에 쇳조각으로 긁어서 써 놓은 글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청년이 죽어 가면서 쓴 것 같았다. "점점 숨이 막히고 손발이 저려 온다. 이제 곧 산소도 없어지고, 나는 얼음 덩어리로 변해 버리겠지.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로구나…"
경찰은 이 청년이 퇴근길에 냉동 컨테이너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살펴보려고 들어갔다가 문이 잠기면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냉동고는 이미 오래 전에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조사 결과 산소는 충분했고, 실내 온도는 겨우 16℃ 정도로 약간 쌀쌀한 정도였다.
성도가 믿음이 약해지고 고통의 현실에 매달려 좌절이 깊어지면, 육신과 영혼의 모든 삶이 위태로워진다. 현실에 집착하면서 자신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 점점 더 깊은 절망감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본문의 시인처럼, 현실의 고통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도 동일한 역사가 가능함을 믿는 믿음의 행위이다. 그래서 앞서 가신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 히12:2절을 다시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당면한 현실이 비록 암울하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4. 성도에게는 확신하는 믿음이 절대 필요하다
본문16-20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지금도 동일한 은혜를 소망하고 있다. 이 역사는 출애굽 때의 사건을 노래한 것이다.
이 출애굽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의 체험이었다. 본 시인도 지금의 상황에서 인도하실 참 인도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능력을 절대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언제나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우리는 환경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다스리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의 약속의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자. 그리하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증거하는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한다.
이 시간의 본문인 77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다시 간구하는 기도이다. 옛말에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한다'고 했다. 사람이면 누구나 위기의 순간에는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을 구하게 된다.
신앙의 체험 수기로 가득한 "가이드 포스트(Guideposts)"라는 월간 잡지에 실린 체험 수기이다.
어느 남 밤, '메이시'는 천둥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가려고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니 이미 그곳은 불길이 번져 연기가 가득했다. 메이시의 집이 벼락을 맞은 것이다. 메이시는 거실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길 때문에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막연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야만 살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당시 '메이시'는 여섯 살로 「미국 오클라호마 시」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는 언제나 밤이 되면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렀다. 뒷문으로 나가려면 아버지는 안에서 질러진 빗장을 열기 위한 특별한 자물쇠를 가지고 다니셨다. 그러니, 열쇠가 없는 메이시는 진퇴 양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앞문으로는 불길 때문에 갈 수 없었고, 뒷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주님, 도와주세요!" 라고 기도 드리며, 메이시는 있는 힘을 다해 아빠를 불렀다. 공포가 엄습해 오려는 순간, 메이시는 어둠 속에서 아빠의 손이 복도 아래로 메이시를 이끌어 뒷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인도해 주어 무사히 빠져 나오게 되었다. 아빠는 메이시를 마당까지 데려다 준 후, 다시 사라졌다. 메이시는 겁이 나서 다시 집으로 되돌아섰다. 바로 그 때, "메이시, 메이시!" 엄마가 부르고 있었다. 엄마는 메이시에게 달려 왔고, 엄마와 메이시는 집 앞으로 갔다. 거기에는 아빠가 아기 동생 <켄트>와 세 살 짜리 여동생 <에이미>를 데리고 서 있었다. "메이시, 무사했구나!" 라고 아빠는 안도의 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널 데리러 가려는데 불길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었어." 아빠는 메이시를 불길 속에서 꺼내 주지도 않았고, 뒷문을 열어 마당까지 데려다 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때가 이 신앙 고백을 하기 12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때의 따스한 손길의 감촉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위기 관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판단이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 그러나 현실은 괴로운 것이다
본문1-3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당면한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탄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감싸던 평안과 위로는 사라져 버렸고, 영혼은 불안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잠을 이룰 수도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더욱 간절한 심령으로 부르짖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기 전에는 결코 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2절).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다.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기도는 끈질기게 해야 함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 창32:24-29(천사와 씨름한 야곱), 눅18:1-8(재판관의 선처를 부탁하는 과부의 끈질긴 요청)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응답을 얻는 기도는 ①흔들림이 없는 믿음(의심치 않음) ②목적이 분명한 기도(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③끈기 있게 인내하는 기도 ④하나님의 응답을 끝까지 바라는 기도이다.
그러나, 시인의 이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응답이 없고, 평안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기도의 공전은 시인으로 하여금 더 큰 고통을 느끼게 했다. 여러분들도 때때로 응답이 없음으로 인하여 기도에 지칠 때가 있지 않는가? 본문의 시인은 응답이 없어서 괴로운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뢴다.
2. 괴로운 현실에서의 생각과 물음은 무엇인가?
본문4-9절에서 시인은 이 당면한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 영적 고민이 얼마나 심각했던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겪는 고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고민은 죽음의 서곡이요, 다른 한 고민은 생명의 서곡이다.
-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고민은 영의 삶에 대한 근심이며, 육신의 삶에 대한 근심은 죽음에 이르는 근심이다. 시인은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 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본문7-9절,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길이 다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 긍휼을 막으셨는가?"
일이 형통하지 못하고, 영적인 환경마져 답답할 때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회개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나를 버리셨는가? 이렇게 가면 그 끝은 어디일까? 등등. 그러나 이러한 것은 내 영혼이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한 스스로의 점검인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하여 시동을 걸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몇 번 계속 재시동을 걸다가 그래도 안되면, 번 네트를 열고 이것저것 점검을 하게 된다.
우리의 신앙의 삶도 이와 같다. 신앙의 삶에 무엇인가 제동이 걸리고 적신호가 들어오면,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재점검을 해야 한다. 왜 이런 고통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고통을 통하여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지 등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신앙의 점검은 낙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검 때에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이는 현실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통하여 현실의 일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3. 신앙적인 회의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본문10-15절에서 시인은 이 극심한 고통이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더욱 심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지난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의 용기를 되살리고 있다.
그렇다. 집요하게 따라오는 '영적인 회의', '삶의 근심'을 이길 수 있는 첫걸음은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는 과거로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온갖 삶에서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지금도 역시 함께 하심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사람이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옛말이 있다. 이는 사람의 목숨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교훈을 전해 주는 것이다.
구 소련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떤 냉동 회사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은 그 냉동 회사에서 고기의 육질을 검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청년이 어느 날, 퇴근길에 실종되었다.
이 청년이 실종된 다음 날, 다른 회사 직원이 냉동 컨테이너를 열었을 때, 실종된 청년이 죽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죽음을 조사하던 경찰이 컨테이너의 벽에 쇳조각으로 긁어서 써 놓은 글을 발견했다. 그 내용은 청년이 죽어 가면서 쓴 것 같았다. "점점 숨이 막히고 손발이 저려 온다. 이제 곧 산소도 없어지고, 나는 얼음 덩어리로 변해 버리겠지.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로구나…"
경찰은 이 청년이 퇴근길에 냉동 컨테이너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살펴보려고 들어갔다가 문이 잠기면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냉동고는 이미 오래 전에 고장이 나서 사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조사 결과 산소는 충분했고, 실내 온도는 겨우 16℃ 정도로 약간 쌀쌀한 정도였다.
성도가 믿음이 약해지고 고통의 현실에 매달려 좌절이 깊어지면, 육신과 영혼의 모든 삶이 위태로워진다. 현실에 집착하면서 자신 속으로 빠져들게 되면, 점점 더 깊은 절망감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본문의 시인처럼, 현실의 고통에서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도 동일한 역사가 가능함을 믿는 믿음의 행위이다. 그래서 앞서 가신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 히12:2절을 다시보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당면한 현실이 비록 암울하다 할지라도 지금까지 베푸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믿음과 용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4. 성도에게는 확신하는 믿음이 절대 필요하다
본문16-20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지금도 동일한 은혜를 소망하고 있다. 이 역사는 출애굽 때의 사건을 노래한 것이다.
이 출애굽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의 체험이었다. 본 시인도 지금의 상황에서 인도하실 참 인도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능력을 절대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언제나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후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우리는 환경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다스리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의 약속의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자. 그리하므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증거하는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