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꺼져가는 등불(이사야42: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659회 작성일 2000-11-06 20:31
★들어가는 말
갓 태어난 아기는 눈은 떴어도 물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 물체의 색깔을 구분하고 아빠, 엄마를 알아보는 통찰력이 자라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면 우리의 속 사람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영적 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건전한 영적 기능이 성숙되어 가면서 사물과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즉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를 믿은 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숙제는 신앙 성숙에 관한 문제이다. 믿고는 있으나 믿는다는 사실이 그 자신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마땅히 성장할 때가 지났음에도 성장이 없다. 주기도문과 사도 신경을 외우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사실임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불신자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구태여 차이를 찾는다면 단지 신앙의 형식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스스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자.

질문1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이 말씀들에 공감하는가? 공감한다면 왜인가?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 공감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질문2 부모를 순종하는 것이 옳은가? 그 순종이 무엇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인가? 윤리적 차원에서인가? 윤리적 차원이라면 그것은 또한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이해와 납득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신앙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에든지 믿음으로 대처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분명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공감하고 있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이론적인 신앙이라고 한다. 이론적인 신앙의 특징은 신앙이 생활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약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앙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결단코 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 딤후3:5-9,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9,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인간의 적은 지식으로 하나님을 저울질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면 결단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오늘의 신앙인들이 무능하게 변한 것도 이해와 납득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모양은 갖추었으나 내용은 인간의 산물인 지식을 더 의지하고 추구한다는 말이다.
여러분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다 이해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해되는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구약 성경의 욥기에는, 욥이 고난 중에서 그의 세 친구들과 변론하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지혜로 항변하는 내용이 나온다. 침묵하시면서 욥을 감찰하시던 하나님께서 욥에게 질문 공세를 펴신다. 욥이 똑똑하다고 하니까, 세상의 이치에 대하여 38장에서부터 41장까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모두 이해하느냐고 물으신다. 물론 욥은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40:4)라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세상의 만물의 이치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이치가 잘못되어진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신앙은 인간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을 원한다.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은 "너희는 상한 갈대이고 너희는 꺼져가는 등불이다"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단순히 불쌍한 존재로, 연약한 존재로 생각하라는 의미로 하신 것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현 주소를 밝혀 주는 말씀이다.

1. 우리의 신앙 기초는 '상한 갈대'이다.

갈대가 피어나는 땅은 황무지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버려진 땅, 저주받은 땅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갈대가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겠으나,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지겨운 잡초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다 그 갈대가 꺾여 있으니 가장 저주받은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상한 갈대는 하나님을 떠나서 저주받은 자리에서 썩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상한 갈대'라고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부러뜨려 뽑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불신자의 현실이라면 신자의 현실은 그 다음이다. '꺼져 가는 등불'이라고 하셨다. '꺼져 가는 등불'은 기름이 마르고, 마지막 심지가 타고, 그 다음에 꺼지는 것이다.

등불은 방안을 밝혀 두기 위해 걸어 두는 것인데, 심지가 탈 때에는 불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연기만 나는 법이다. 그래서 도움을 주기보다 냄새가 나고 눈을 아프게 하는 매연으로 피해만 줄뿐이다. 바로 그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 놔두기만 해도 꺼져 가는 심지를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살인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성도인 우리를 보시고,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심지'라고 하신다. 또한 성도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소금이요 빛인 성도들에게, "너희는 상한 갈대요, 너희는 꺼져 가는 등불이니라"고 하신다. 서로 연결시킬 수 없는 두 극단이다. 만일 우리가 '상한 갈대고, 꺼져 가는 심지'라면, 하나님의 요구는 성취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풀어야 할 것이 바로 이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명령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도 이 말씀은 지당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의 윤리나 도덕을 기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신앙은 멀리 떠나가 버리고 만다.
신앙이란, 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며, 갈등하는 사람에게서 살아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사람인 내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는 깊은 고민 속에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사모하는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이다.
- 롬7:21-25(바울의 갈등),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렇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나 자신이 무능한 인간임을 철저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하나님을 의지할 생각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서 또는 설교를 들으면서, 모두 자신 있게 실천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결승점에 도달을 해야 한다. 가긴 가야겠는데, 길은 멀고 힘은 없고, 포기해 버릴까! …,마음의 갈등은 쌓여만 가고,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신앙을 불러오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앙은 두 갈래 길로 갈라지게 된다. 하나는 참된 신앙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타협의 길이다.

2. 우리의 신앙에는 두 길이 있다.

겔33:30-33,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와 자신들의 할 수 있는 부분을 적당히 요리해서 타협을 시도한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갈등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신앙에 대한 갈등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것이 정말일까?"하는 <기대감>이라든지 <불안감>이 없다. 내가 정말 이렇게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회의도 품지 않는다.
-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영적인 고민은 절대 외면하지 말고 부딪쳐야 하는 싸움이다. 내가 비록 꺼져 가는 등불이요, 상한 갈대라 할지라도 타협보다는 싸움을 택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은 일종의 시합과도 같다.
- 고전9:24-27(달음질, 격투)

모든 시합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다. 동일한 출발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출발점이 없는 골인 지점은 없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이 오해하는 것은, 우리의 출발 지점이 어디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것 때문에 모두가 신앙 생활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면 영적인 삶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영적인 삶의 출발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와 죄사함을 통하여 거듭나며, 성도로서 천국에 합당하도록 성화 되어 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살인도, 간음도, 윤리적 이유에서가 아닌 믿음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 도덕성 때문에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시요, 대장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이해나 납득이 아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틀린 것처럼 생각되어도 하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틀렸다고 하시면, 내 생각에 아무리 옳아도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꺼져 가는 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상한 갈대이고, 꺼져 가는 심지라 할지라도 좌절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잡고 있는 한 그분에게서 나를 빼앗아 갈 사람도 역시 없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출발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솔직히 사람인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여러분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목표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인가? 아니면, 오르지 못할 나무라서 포기했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사는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믿음이다.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데, 하라고 하시는 분이 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지'라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믿음>이다.
-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자리, 즉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출발한 사람은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 출발이어야 끝까지 달릴 수 있다. 왜냐하면, 죽어 버린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길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의 길로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능력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신앙의 출발점은 어디이고 현주소는 어디인가?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믿음으로 의지하라. 그리하여 세상을 호령하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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