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난제7 - 위기를 만났을 때(사도행전27:9-26)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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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0-11-05 21:11
★들어가는 말
지난 걸프전쟁 때 찍힌 사진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 전투병 철모에 쓰인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는 글귀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위기를 느끼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된다. 임사호천(臨死呼天)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찬송가 405장의 작사자인 「존 뉴톤」도 그러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찾았고 살아났다. 이후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사람들에게는 크거나 혹은 작은 것이든지 누구에게나 일평생에 삶의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성경에서는 인생에 닥치는 위기를 크게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자신이 스스로 불러온 위기이다. 사사 「삼손」이 그 좋은 예이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법을 스스로 어겼으며, 그로 인하여 위기를 자초했던 것이다. 「다윗」도 역시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위기를 자초했었다(밧세바로 인한 위기, 인구계수로 인한 위기).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위기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게네사렛」을 향하여 갈릴리 호수를 한 밤중에 항해할 때에 일어난 폭풍(마14:22-33)과 같은 것이다. 또한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에 직면하여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닥쳤던 위기와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에 의한 위기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었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당면했던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 중에서 특히 자신의 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서나 하나님의 뜻에 의한 위기를 만났을 경우,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심이 두터운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나 위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위기는 닥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찾아보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죄수의 몸으로 로마행 배를 타게 하셨다. 바울은 항상 로마에서 하나님의 복음 증거하기를 학수고대했었다. 그런데 생애 말기에서야 그것도 죄수의 몸으로 겨우 로마행 배를 타게 된 것이다. 바울은 이미 겨울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므로 지금 머물고 있는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고 출발하자고 제의했다. 왜냐하면 겨울의 지중해는 큰 태풍들이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 선원들은 그레데 항구인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보내자고 했다. 그 배를 주관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배 주인의 말을 더 신뢰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남풍을 타고 배는 순조롭게 출항을 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여 그 배는 광풍을 만나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1. 먼저 그 배가 파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자
1)이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따랐다(11절). 우리가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잘못된 전문가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부장은 다수결을 택하였다(12절). 그리고 일시적인 환경에 집착했다(13절,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세상적인 면으로 볼 때는 이 결정이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과 기술을 소유한 선장과 선주의 말, 항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선원들의 지지, 거기에다가 목적지 방향으로 부는 남풍, 즉 환경까지도,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 듯 척척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 즉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던 것이다(10절).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그 권한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변화시키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추진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은 올바른 결과를 낳을 수 없다.
2) 이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옳지 못했다.
자신들의 계획이 잘 추진되는 듯이 보일 때, 위기가 소리도 없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배는 광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선원들은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갈 수밖에 없었다(14,15,17절). 물론 당시에는 나침반도 없어서 별을 보고 항해했는데, 그나마도 폭풍우로 인하여 별 마저 볼 수 없었으니 당연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 많은 사람들은 삶의 방향도 목표도 잃어버리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겨버린다. 자신을 감싸는 모든 환경의 탓을 하면서 말이다. 시대나 환경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흐름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러나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서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18,19절에서,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 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라고 했다. 이제는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짐을 버리고, 배의 기구를 버리고, 생명줄인 음식물마저(38절) 버린다.
사람들은 위기를 당하면 일시적인 충동을 받는다. 그저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된다. '지금 당장 죽을 판인데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야' 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시기에 가치가 되는 것들을 내어버리는 것이다. 꿈도 포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해버리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가치관들을 던져버린다.
그 결말은 절망이다. 20절에서,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라고 했다. 14일 동안 지중해를 떠다니던 조그마한 배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소망까지 포기한 채 절망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결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니다. 절대다수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한 사람의 담대함이 있었다.
2. 파선 중에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모두가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을 때에,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일어났다. 바울은 두려움의 기색도 없이 확신에 찬 담대함이 있었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도 위기 속에서의 바울의 담대함이다.
모든 것이 잘 되고, 기도가 응답되고, 건강하고, 수입이 많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고난이 있고, 삶의 위기가 닥칠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위기 관리 능력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상 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신앙이 자라는 사람들은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도 바울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본문23,24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 황제인 「가이사」앞에 세워서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실 뜻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행하실 계획을 이루시기까지 결코 생명의 해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 뜻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목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빌3;14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자신의 목표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바울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확신 있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문25절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성경 말씀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저주의 것이든지, 복의 것이든지 모두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실 것임을 확신하는가?
인생의 위기가 아무리 큰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를 파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롬8:35-39
여러분, 이 말씀을 믿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기를 소망하면서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라. 어두움이 지나면 동터는 새벽은 반드시 온다. 밝은 날에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하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지난 걸프전쟁 때 찍힌 사진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 전투병 철모에 쓰인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는 글귀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위기를 느끼게 되면 하나님을 찾게 된다. 임사호천(臨死呼天)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다. 찬송가 405장의 작사자인 「존 뉴톤」도 그러했다. 그는 아프리카 노예상인이었는데, 어느 날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찾았고 살아났다. 이후 그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도자의 삶을 살았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사람들에게는 크거나 혹은 작은 것이든지 누구에게나 일평생에 삶의 위기가 있기 마련이다. 성경에서는 인생에 닥치는 위기를 크게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자신이 스스로 불러온 위기이다. 사사 「삼손」이 그 좋은 예이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법을 스스로 어겼으며, 그로 인하여 위기를 자초했던 것이다. 「다윗」도 역시 자신의 죄악으로 인하여 위기를 자초했었다(밧세바로 인한 위기, 인구계수로 인한 위기).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위기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게네사렛」을 향하여 갈릴리 호수를 한 밤중에 항해할 때에 일어난 폭풍(마14:22-33)과 같은 것이다. 또한 오라비 나사로의 죽음에 직면하여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닥쳤던 위기와 같은 것이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에 의한 위기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었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당면했던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 중에서 특히 자신의 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서나 하나님의 뜻에 의한 위기를 만났을 경우,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심이 두터운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나 위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이상한 눈길로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위기는 닥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담대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지혜를 찾아보자.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죄수의 몸으로 로마행 배를 타게 하셨다. 바울은 항상 로마에서 하나님의 복음 증거하기를 학수고대했었다. 그런데 생애 말기에서야 그것도 죄수의 몸으로 겨우 로마행 배를 타게 된 것이다. 바울은 이미 겨울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므로 지금 머물고 있는 「미항」에서 겨울을 보내고 출발하자고 제의했다. 왜냐하면 겨울의 지중해는 큰 태풍들이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 선원들은 그레데 항구인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보내자고 했다. 그 배를 주관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배 주인의 말을 더 신뢰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남풍을 타고 배는 순조롭게 출항을 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여 그 배는 광풍을 만나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1. 먼저 그 배가 파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보자
1)이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따랐다(11절). 우리가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잘못된 전문가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백부장은 다수결을 택하였다(12절). 그리고 일시적인 환경에 집착했다(13절,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세상적인 면으로 볼 때는 이 결정이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과 기술을 소유한 선장과 선주의 말, 항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선원들의 지지, 거기에다가 목적지 방향으로 부는 남풍, 즉 환경까지도, 모든 것이 순풍에 돛단 듯 척척 들어맞았다. 그러나 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 즉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던 것이다(10절).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 그 권한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일순간에 변화시키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추진할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은 올바른 결과를 낳을 수 없다.
2) 이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옳지 못했다.
자신들의 계획이 잘 추진되는 듯이 보일 때, 위기가 소리도 없이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배는 광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선원들은 "배가 밀려 바람에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갈 수밖에 없었다(14,15,17절). 물론 당시에는 나침반도 없어서 별을 보고 항해했는데, 그나마도 폭풍우로 인하여 별 마저 볼 수 없었으니 당연했으리라 생각한다.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 많은 사람들은 삶의 방향도 목표도 잃어버리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겨버린다. 자신을 감싸는 모든 환경의 탓을 하면서 말이다. 시대나 환경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흐름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러나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서서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18,19절에서,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버리고, 사흘 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라고 했다. 이제는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짐을 버리고, 배의 기구를 버리고, 생명줄인 음식물마저(38절) 버린다.
사람들은 위기를 당하면 일시적인 충동을 받는다. 그저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받게 된다. '지금 당장 죽을 판인데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야' 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더 나은 시기에 가치가 되는 것들을 내어버리는 것이다. 꿈도 포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단절해버리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가치관들을 던져버린다.
그 결말은 절망이다. 20절에서,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라고 했다. 14일 동안 지중해를 떠다니던 조그마한 배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소망까지 포기한 채 절망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결코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아니다. 절대다수의 절망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한 사람의 담대함이 있었다.
2. 파선 중에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모두가 절망하여 주저앉아 있을 때에, 죄수의 몸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일어났다. 바울은 두려움의 기색도 없이 확신에 찬 담대함이 있었다. 우리가 배우고자 하는 것도 위기 속에서의 바울의 담대함이다.
모든 것이 잘 되고, 기도가 응답되고, 건강하고, 수입이 많을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고난이 있고, 삶의 위기가 닥칠 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위기 관리 능력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상 생활을 통해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급작스럽게 신앙이 자라는 사람들은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도 바울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본문23,24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바울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로마 황제인 「가이사」앞에 세워서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실 뜻을 가지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행하실 계획을 이루시기까지 결코 생명의 해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고 그 뜻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목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빌3;14에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자신의 목표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바울의 담대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확신 있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문25절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바로 성경 말씀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저주의 것이든지, 복의 것이든지 모두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실 것임을 확신하는가?
인생의 위기가 아무리 큰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자녀를 파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롬8:35-39
여러분, 이 말씀을 믿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기를 소망하면서 찬송과 기도를 쉬지 말라. 어두움이 지나면 동터는 새벽은 반드시 온다. 밝은 날에 부끄럽지 않도록 준비하자.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