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상투적 대화와 신선한 동행(요한복음14:6-14)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81회 작성일 2000-12-23 22:46
♣들어가는 말

대강절에 생각하는 말씀 시리즈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보는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아마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오는 가운데 부담스러운 것 몇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하루에 일정한 시간 이상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또는 '기도를 쉬는 것은 죄이다' 등등.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가르쳐 왔습니다. 주님께서도 끊임없이 가르치시는 것이 기도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연중에 '기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새벽에 일어나기가 너무 피곤하여 새벽 기도를 빠진다거나, 하루 일과를 마치고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제 시간에 기도를 했을 때는 의무를 수행했다는 안도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감에 의한 기도는 사실 율법적 행위에 속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의 기도 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적인 행위에 구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부담스럽지 않는 기도로 신선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방법 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대강절 말씀을 통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것과 성령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한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즉 성령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의 주제인 부담스럽지 않는 기도로 신선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방법도 여기에 길이 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도 역시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실 새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대뜸 끼여들었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빌립이 끼여들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답답한 심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아,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믿음 없는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탄식 어린 말씀이십니다. 그런 이후에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해답이 있습니다.

1. 의식의 틀을 바꿉시다.

제자들은 지금까지의 율법적인 의식에 습관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형식의 틀을 원했습니다. 눈에 보이게 제물을 드려서 예배를 하고, 길도 분명히 보여주고,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등, 율법적 형식의 감각에 의존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분명히 주님과 함께 하고 있었지만, 길도 하나님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제자들은 자신이 만든 종교의 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눅11: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 형식 등의 어떤 틀을 고집합니다. 예컨대, 틀에 박힌 문장과 딱딱한 수식어들을 사용합니다. 오늘도, 다음날도, 다음 주일도 … 똑같은 내용이 똑같은 문장으로 반복됩니다. 만약 이러한 기도 내용을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대화로 나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듣기 거북한 상투적인 내용이 될 것입니다. '듣기 좋은 말도 한 두 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상투적인 높임, 상투적인 찬양, 상투적인 요구 같은 말이 얼마나 듣기 거북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간결한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참조 ;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성경은 한문성경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번역 자체가 딱딱한 문어체입니다. 그러나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은 문어체와 구어체가 잘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4: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도는 일주일 분의 회개와 감사를 한꺼번에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한 것이 있을 때, 다음 예배나 기도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감사할 일이 있음에도 다음 기도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합니까? 주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데, 왜 다음 시간까지 미뤄야 합니까? 이것도 예배나 기도라는 형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꿇어앉아서 비통한 어조로 해야하고, 감사는 어떤 물질적인 표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틀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덧없음을 '안개'로 표현하셨습니다. 또한 호흡만 끊어지면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 순간을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의 대화거리를 모아 두었다가 어떤 틀에 맞추어 한꺼번에 하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대화를 요청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기꺼이 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신앙적 양심을 통하여 대답을 들려주십니다.

한가지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듣고는 '그렇다면 정기적인 기도 시간은 필요가 없겠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골방이나 교회당에서나 어떤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시간에 하는 정기 기도시간은, 집중적이고 더욱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관계라 할지라도 단 둘만의 진지한 대화의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정기적인 기도 시간은 주님과의 일상적인 대화를 더욱 원활하게 해 줍니다.

2. 생활의 틀을 바꿉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교훈과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고기 잡는 어부이거나, 세리, 어떤 조직원들이었지만, 지금은 주님을 따라다니는 제자 공동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험하고, 배웠지만, 주님과 생활을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생활을 나눈다는 것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생활에 실천하면서 주님과의 공유면적을 넓히는 것입니다.

배들의 항로를 단축시키기 위하여 내륙에 뱃길을 열어놓은 것이 '운하'입니다. 운하 중에는 바다와 수면의 높이가 다른 곳이 있습니다. 수면의 높이가 다르면 배가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운하와 바다의 수면을 맞추기 위하여 바다와 운하 사이에 큰 도크를 만들고 수문을 만듭니다. 수면이 낮은 쪽에서 배가 도크로 들어옵니다. 배가 완전히 들어오면 낮은 쪽의 수문을 닫고 수면이 높은 쪽의 수문을 조금씩 열어서 도크와 수면이 같아지게 합니다. 수면이 같아지면 수문을 완전히 열고 배가 운하로 전진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성도 사이에 영적인 수면의 차이가 생기면 제자로서의 삶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많은 교훈과 체험을 갖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과 성도의 영적인 공유면적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더디 깨닫는 제자들의 영적인 공유면적을 넓히기 위하여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까지 본을 보이셨습니다.
-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곧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즉 겉사람과 속사람의 생활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과 일반 생활에 너무나 많은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일반 사회 생활에 비하여 교회 생활이나 신앙적인 행위를 할 때는 거의 가면을 쓴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스스로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생활에서 나타나는 실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하고, 가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사회생활에서 또 다른 모습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같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치되는 생활을 위하여 주님께서 가르치신 몇 가지를 꼽아보겠습니다.

1) 용납하는 생활입니다. 주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받아 주실 때, 어떤 조건을 제시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용납하라고 하셨습니다.
- 엡4:1-2,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2) 끊임없는 훈련입니다. 육신적인 복종훈련과 더불어 영의 경건 훈련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명령과 주입식이 아니었습니다. 생활 속에서의 반복 훈련이었습니다.
- 막8:17-18,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딤전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3)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공적인 영의 삶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란, 주님의 개입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 막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육신과 더불어 영의 생활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영의 생활이 육신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영의 생활은 결코 나 홀로는 해 나갈 수 없습니다. 영의 소유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 때 영의 생활이 가능해집니다.
-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만 의식하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늘 의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생활을 공유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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