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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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마가복음11:12-25)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11,075회 작성일 2000-11-23 22:18
♣들어가는 말
성전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난만큼이나 많은 수모와 변화를 겪었습니다.
성전의 시작은 출애굽 때,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셨던 「성막」이 시작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솔로몬' 왕 때, 비로소 예루살렘에 고정된 성전으로 지어졌습니다. 처음 성전은 웅장하고 찬란하여 위엄이 넘치는 대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주전 586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번 수축되었고, '스룹바벨'에 의하여 재건되었으나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수리아인과 로마인들에 의해서 또 다시 부분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있던 성전은 바로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치적 입장에서 수축한 성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주후 70년에 있었던 독립전쟁 때에 유대인들이 성전을 마지막 진지로 싸우다가 진멸되었습니다. 그때 성전의 외부건물이 유대인에 의해 소실되었고, 성소 자체는 로마인에 의해서 소실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하드리안 황제가 쥬피터를 위한 신전을 건축했으나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주후 691년 예루살렘이 사라센 족에 의해 점령되었을 때, 성전 터 위에 돌로 지은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바로 그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본문이 포함 된 마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오가시면서 몇 가지의 일들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핵심은 「성전」이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두 번째 날 아침부터 세 번째 날 아침까지이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시는 때였습니다. 마가복음의 기록자인 마가는 이 두 날의 이야기를 아주 의미 있게 재구성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 정화'라고 부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라고 불리는 이야기입니다. 마가는 의도적으로 성전 정화 사건을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넣어서 의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12-14절에서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를 기록했습니다. 바로 이어 15-19절에서 성전 정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20-22절에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 사건을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동문서답과 같은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시는 치밀한 의도 속에 편집되었습니다. 이는 무화과나무와 성전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곧장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첫째 날은 성전을 둘러보기만 하시고 숙소인 '베다니'로 돌아오셨습니다. 다음 날, 두 번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길에 시장하셔서, 마침 길옆에 있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첫 번째 단락에서 문제점이 하나 발견됩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하면서, '그 때가 무화과 철이 아니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는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만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왜 그 나무를 책망하셨습니까? 분명히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문제삼으신 때는 유월절이 가까운 4월이었고, 무화과의 초기 수확기는 6,7월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이치로서, 무화과나무는 입과 나무가 거의 동시에 돋아난다는 것입니다. 즉 잎이 무성하다는 말은 아직 익지는 않았지만 열매가 달려 있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예수님을 만난 무화과나무가 적절하게 때를 맞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적절한 이유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교훈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막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말씀은 준비되지 못한 자에 대한 책망입니다. 주님의 요구는 항상 현재성을 띠고 있습니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묻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백성들이 지금 어떠한가를 묻습니다. 열심을 내어도 지금 해야 하며, 영생에 대한 준비도 지금 되어 있어야 하며, 사랑을 하고, 헌신을 하고, 봉사를 하고, 선행을 해도 지금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신 때에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열 처녀의 비유'에서 다시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 마25:1-13, 10,"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리고 마가는 이어서 두 번째 단락을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곧장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첫째 날과는 달리 이번에는 성전의 입구에서부터 과격한 행동을 나타내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기구를 가지고 성전을 가로질러 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성전의 기능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행해져서는 안 되는 일들을 몰아내신 것입니다. 성전은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은 특정한 사람들의 이익만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멀리서 예배하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소와 양과 비둘기 등의 제물을 팔았으며, 이방의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전에서 통용되는 화폐로 웃돈을 받고 바꿔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장사꾼들은 모두가 대제사장의 승인을 얻어야만 성전에서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성전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성전을 시장터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장사꾼들이 강도들이요, 시골로부터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반(反)로마 활동의 기지로 바꾼 정치적 활동가들이 강도들이었습니다. 성전은 시장터도 아니요, 정치적인 무대도 아닙니다. 정작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들어갈 수도,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할 수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의 기구들, 즉 제사용 그릇을 포함하는 모든 기구들 마저 성전 안에서 지나다니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동은 대제사장들과 당시 지도자들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으니, 어찌 그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돈줄이 끊어지는데 말입니다.
- 18절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서 세 번째 단락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과격한 행동이 있은 다음 날, 즉 예루살렘 입성 후 삼일 째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데, 제자들이 어제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가 말라죽어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종말을 보여주는 예시였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이 본업인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는 것이나,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본업인 성전이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둘은 모두 저주를 받아 멸망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 본업입니다. 이것이 빠져버린 모든 행사들은 교회의 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누구든지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 앞에서 항상 현재적인 열매가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전혀 엉뚱한 방법으로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베드로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가 말랐음을 상기시킬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과 기도와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상징이자 외식적 신앙의 형상인 성전을 친히 폐쇄하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믿음과 기도와 용서, 참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며, 교회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시면서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그 사실을 믿는 믿음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요 교회로서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열매가 지금 준비되어 있습니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부터 준비하십시오. 그래서 언제 어디서 주님을 만나더라도 책망이 아닌, 충성된 종의 칭호를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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