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의 약속과 격려(스바냐3:11-20)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542회 작성일 2000-11-08 18:28
★들어가는 말
성경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언약(言約)》이라고 할 수 있다. 언약이란 문자 그대로 약속(約束)이다. 크게는 옛 약속과 새 약속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수많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언약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약속들 즉 언약은 인간의 구원이란 목적에서는 동일하지만 시대에 따라, 즉 구속사의 전개에 따라 각각 다양한 내용으로 제시되어 왔다. 순종에 따르는 구원과 복의 약속으로, 때로는 불순종에 대한 징계의 경고로 약속이 주어졌다.
특히 이 언약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과 맺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지고(至高)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 복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을 포함하고 있는 스바냐 서의 전체 주제는 "여호와의 날", 즉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다. 이 무시무시한 주제가 주어진 것은 남 유다의 부패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래에 대한 약속과 현실을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하시는 것이다.
왜, 멸망을 당해야만 하도록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약속과 격려를 하시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실 때의 언약 때문이며, 이 언약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에 기초한 것이다.
- 본문11-13(남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비록 죄악으로 인하여 징벌을 받아야 할 때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며, 결코 변함도 없으시고, 반드시 이루게 하시는 신실하심 때문이다.
- 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의 말이니라"

지금 「스바냐」 선지자에 의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은 이 말씀들이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은 멸망을 당한 것도 아니며, 멸망의 징조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문의 시대는 남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의 통치 때이며, 아직도 남 유다가 멸망하기까지는 70년이라는 세월이 남았을 때이니 당시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 같다.
백성들은 그 동안 60여 년의 세월을 이교 적이고, 난폭하고, 방탕한 왕이었던 「므낫세」와 「아몬」왕의 통치를 받아왔다. 영적으로는 피폐하여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며, 백성들의 생활도 제멋 대로였다. 어쩌면 방탕과 광포한 환경에 젖어서 자포자기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멸망이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선지자의 선포가 귀에 들렸겠는가?

오늘의 시대가 점점 이러한 환경을 닮아 가는 것 같아서 염려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육신적인 쾌락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인 질환이 많아지는 것이 그 증거이다. 오늘의 아이들을 살펴 보라. 신문 지상이나 보도들을 보면, 연일 N세대라고 부르는 현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염려스럽게 보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즐기는 것, 즉 《쾌락》이다. 서적이나 영화나 심지어 광고까지도 sex, 쾌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면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어진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기력증 환자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그냥 살아가고' 있다. 자신에게 능력도 있고, 자유도 있고, 승리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것을 생각지도 못해 보는 것이다. 이미 정신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러한 현상은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에 믿음을 걸지 못한다. 또는 내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들려지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을 운명으로 여기고 체념한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본문 16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하는 말은 '용기를 내라', '힘을 내라' 라고 하는 격려의 말이다. 즉, 삶을 두려워하고, 체념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내라'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하여 힘을 내도록 격려하시는 내용이 어떤 것인가?

1. 성도들의 죄를 용서하셨다.

본문14-15절,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왕이 아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쌓았음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를 촉구해도 그들은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습3:1-4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이 격려의 말씀은 마음이 강퍅한 백성들 가운데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형벌의 시대가 지난 후의 일이다.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형벌의 시대가 지날 때까지 남겨진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 본문12-13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형벌을 제하였다"고 하셨다. 이는 지난 죄는 모두 용서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죄사함이야말로 성도가 힘을 낼 수 있는 가장 큰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성도가 생활 속에서 때때로 위축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죄의식 때문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지 못했으며, 양심대로 떳떳하게 살지 못했다고 하는 죄의식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히면 용기를 상실하고 매사에 담대하지를 못하다가 결국은 자포자기하고 만다.
죄의식은 실질적인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죄의식의 대표적인 사람이 「가룟 유다」이다. 그는 죄 없는 선생님을 팔았다는 죄책감이 자신을 무섭게 눌러 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돈을 준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가서 돈을 돌려 줄 테니까 없었던 일로 하자고 제의했다.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결국 스스로 죽는 죽음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 마27:3-5

이것이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의 수법이다. 사단은 속삭인다. '너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야.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뭐?' 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대로 살다가 죽지' 라는 무기력한 생각을 가지게 하고, 새롭게 살려고 하는 생각을 무산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인간의 죄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형벌을 제하여 주는 은총을 베푸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잘못이 생각날 때는 지체 없이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죄의식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뿐이다.
-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2.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

본문17절을 보라. (복음 송으로 불러 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인가? 하나님께서는 돌아 온 인생이 사랑스러워 견디지 못하겠노라고 하신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니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라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가 의기 소침해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가 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성도들이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성도의 삶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흔히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만나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삶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다.
-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깊이 생각하며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여러 가지 주변의 정황 때문에 낙심되어 절망스러운 가슴을 안고 슬퍼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부인이 검은 상복을 입고 나타났다. 루터가 어이없어 하면서 '왜 상복을 입었느냐?' 고 물었다. 그때 부인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돌아가셔서요."
루터가 대노했다. "부인 그것이 무슨 망언이요. 어찌 하나님이 돌아 가신단 말이요." 라고 소리치자 부인이 태연하게 반문한다. "아, 나는 당신이 하도 낙심하고 절망하기에, 하나님이 돌아가신 줄로 생각했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데 왜 그리 낙심하느냐?>라는 격려를 지혜롭게 표현한 것이다. 이 말에 루터는 잠에서 깨어난 듯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추진하여 개혁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것도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말이다. 세계의 문호 「헤밍웨이」는 그의 자살의 유서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나는 전류의 흐름이 그치고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처럼 고독하다."
우리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자. 사람들의 가슴에 불이 켜지도록.

3. 회복시키신다.

본문20절. 불순종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아 실추된 명예와 괴로움과 고통을 회복을 시켜 주시며,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주어진 때는 아직 징계가 이르기 전이다. 정확하게 70여 년 후에 하나님의 징계로 남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포로 신세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회복을 약속하신 것은 징계가 시작되고 또 70년 후에 되어질 일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란? 적어도 14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 먼 약속을 지금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멸망을 기정 사실화 하셨다. 즉,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징계 중에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회복시키시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께 범죄 하였을지라도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 그리고 회복시키시는데,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시기에, 그리고 더욱 어려운 시기를 남겨 놓고 있는 때에, 이와 같이 성도들을 격려하신다. 우리 다시 힘을 내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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