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새로운 차원의 삶(요6:1-15)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604회 작성일 2001-03-18 21:05
Title 새로운 차원의 삶 / Scripture 요6:1-15 / Space 대복교회

***들어가는 말

이 시간,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이적 중의 하나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은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이적의 의미를 부여하는 예수님의 설교가 뒤따르기 때문에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사도 요한에 의하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70여년이 지난 후인, 주후 100년경에 다른 많은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기록했습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실과 육신적인 모든 부분이 이미 세 복음서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자신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적복음으로 기록했습니다(이 사실은 최초의 신약 성경 목록인 ‘무라토리안 정경’에 기록되어 있다.). 물론 모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이적을 <표적>이라고 부르고, 이 표적 뒤에는 설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기적들을 예수께서 과거에 행하신 사실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행하고 있는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어느 시대에나 동일하게 이러한 역사를 이루시며, 지금 이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사하심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인 오천 명을 먹이신 이적 다음에도 설교가 따르고 있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생명의 떡”에 관한 것입니다. 이 표적을 기록한 이유는 어느 날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는 단순한 사실을 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영과 육의 삶을 풍성하게 하실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하려는 것입니다.
ꁾ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은, 지금 우리에 대한 주님의 관심이 어떠한 것임을 보여주시고자 하심입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생활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도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약한 자, 자신의 문제를 알고 겸손하게 내어 놓는 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셨으며, 친히 그들을 돌보셨습니다.

‘월리엄 제임스’라는 심리학자의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러시아 상류사회의 어떤 귀부인이 어떤 극장에 오페라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오페라에 나오는 주인공이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운명을 보고 한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 그 극장 밖에서는 그 귀부인의 마차부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에 대한 관심은, 지금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관심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1. 주님은 우리 육신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이 기적의 외적인 목적은 인생의 육신적 필요를 채우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 피곤과 굶주림에 지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에서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ꁾ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어떤 성도들은 기독교가 마치 인간의 영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육신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필요를 생각하는 것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소작인들이거나, 주인을 모시고 있는 일군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가야만 집에 당도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굶주리고 지쳐 있는 이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육신의 음식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현실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육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도 성도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구제’는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이 힘써야 할 일로 가르치셨습니다.
ꁾ신15:9-11,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눅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돌보셨음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든지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 됩니다. 이 일은 주일(안식일)에도 허용될 만큼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ꁾ눅6: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ꊱ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W. Booth) 장군이 런던에서 구세군의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부스>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 일을 두고 어떤 사람들이 비난을 했습니다. “그런 일은 인간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책임을 맡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부스>는 이에 대하여, “발에 동상이 걸려 썩어 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만으로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습니다(약2:15-17).
ꊲ‘지스문트 겟치’라는 화가의 작품 중에, ‘버림받은 예수’란 그림이 있습니다.
‘성 바울 대성전’의 계단에 예수님이 서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스포츠 신문에 열중한 청년, 휴가 여행을 위하여 택시를 잡으려는 남녀, 길을 가면서도 시험관을 들여다보고 있는 과학자,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이 거기에 서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둔 사람은 없습니다. 신부 서너 명이 둘러서서 팔을 휘두르며 열렬히 토론하고 있지만 역시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한사람, 간호원 제복을 입은 여성만이 잠깐 멈추어 곁눈으로 예수님을 보는 장면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분명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부스 장군의 반문 속에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균형 잃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림받은 예수’의 그림은 신앙의 본질을 상실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는가? 나의 생활 전체로 볼 때 예수님은 아주 작은 존재가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직장의 일 때문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세상 일 보다 비중이 낮은 것입니다.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그러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아니면 ‘몇 십만 원을 벌 것인가?’ 그런 선택에서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 혹시 몇 만 원을 벌기 위하여 예수님을 멀리 젖혀 놓는 우리는 아닙니까?

이처럼 우리는 주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듯이, 우리의 세상 사람에 대한 관심과 주님에 대한 관심을 매일의 삶에서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2. 주님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주님은 어느 날, 예배가 있는 성전의 입구에서 사람들이 헌금을 넣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어떤 부자는 금화를 넣었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헌금을 함에 넣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과부가 드린 엽전 두 닢도 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날 가장 많은 헌금을 넣은 사람으로 엽전 두 닢을 넣은 가난한 과부로 꼽았습니다. 금화와 엽전 두 닢이 비교가 됩니까? 주님이 보시는 것은 물질의 양의 아니라, 드리는 이의 마음과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소유가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으로 뜻하신 바를 위해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어린아이의 작은 소풍 도시락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삶은 계란 반개만한 보리떡은 가장 맛없는 음식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습니다. 작은 물고지 두 마리 역시 볼품없는 반찬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이 그 도시락을 내놓았을 때, 그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긴 가뭄으로 양식이 고갈되어 죽어 가는 <사르밧 과부>에게는 밀가루 한 줌과 병 바닥에 고인 약간의 기름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내놓았을 때, 삼년을 먹을 수 있는 기적의 도구가 되었습니다(왕상17:10-16).

예수님은 결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보잘 것 없는 재능, 극히 적은 물질이라 할지라도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감사함으로 내놓는 것을 기뻐하시며, 바로 그것을 기적의 도구로 삼으십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자, 권력자, 부자 등. 특별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이라 할지라도 열심과 성실로 감당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ꁾ대하16:9상,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ꌀ”/ 고후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3. 주님은 새로운 차원의 삶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이제, 이 표적의 핵심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요한이 이 이적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에 대하여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요6:26-27).
사람들은 육신의 만족을 찾아 동분서주(東奔西走) 하고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의 만족이요, 영혼의 생명입니다. 생명을 잃으면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육신의 생활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하고 성도가 진실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영의 생명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는 한, 불만족은 항상 있게 되며, 무엇인가 항상 허전하게 비어 있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ꁾ시145:15-16,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사58:10-11,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만족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적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삶을 제시하십니다.
① 성도가 이루어 가야 할 삶의 기준을 제시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을 중심으로 한 지금까지의 삶으로부터 영원한 세계와 영원한 삶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 하십니다(빌3:8-9).
② 성도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십니다. 우리가 단순히 의무감이나,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나, 생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에서 일을 한다면, 불평불만과 짜증과 지루함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갈2:20, 빌2:3-4). 기쁨과 즐거움, 평안과 만족으로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③ 성도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삶을 제공하십니다(롬8:5-6, 13:11-14, 갈5:19-23).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주리고 목말라 하며, 사모하는 영혼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만족함으로 채우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향한 진실한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나를 향하신 깊은 관심을 깨닫고, 우리의 생활도 주님의 관심을 닮아서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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