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신실하신 하나님(시89:1-18)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446회 작성일 2001-03-18 21:02
*들어가는 말

본 시편의 큰 주제는 위기에 처한 다윗의 후손들이 하나님께 다윗의 언약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다윗에게 확실한 은혜를 예고하셨습니다. ꁾ삼하7:8-16(8-9, 16)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견고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시인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결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1-4절에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5-18절에서, 이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대한 사람의 진실한 응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기도 시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기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불어오던 날 밤, 주일 저녁 예배를 위해서 교회에 들어서던 목사님은 텅 비어 있는 교회당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대여섯 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이없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밀실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목사님이 교회에 가 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신이 나서 ‘우리 모두 찬송을 부릅시다.’라고 하면서 찬양을 인도했습니다. 한참 열심히 부르는데, 문득 피아노 반주 소리도, 찬송 소리도 들리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오직 어린 한 소녀의 찬송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목사님은 잠을 깨었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과 진실로 하나님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배하는 사람의 숫자에 있어서는 사람이 보는 것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는 다릅니다. 요한복음4:23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어떤 것임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시인을 통해 밝히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어떠한지 살펴봅시다.

본문1-4절을 봅시다.

시인이 먼저 초두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노래하는 것은 아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향하시는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불변합니다. 그래서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행하십니다.
ꁾ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 찬양의 제목입니다. 즉, 우리에게 약속하신 언약과 그 약속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 시117:1-2)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하심은 본문에서처럼,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일어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은밀한 섭리하심을 ‘씨가 자라는 비유’와 ‘누룩 비유’등을 통하여 가르치셨습니다.
ꁾ마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막4:26-27,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처럼 비록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시인은 여기서 우리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1절을 보십시오.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이는, 단순히 ‘입으로 선포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알게 하겠다.” 즉,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깨달아 납득하여,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도록 실행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따르는 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신실한 자세를 먼저 가져야 합니다. 비록 현실이 위기 상황이고 고통과 좌절감이 엄습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생활은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신실함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대대에 자녀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본문5-13절을 봅시다.

시인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섬김과 찬양의 대상이지 인간의 판단이나 비교의 대상이 아님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찬양 받으실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피조물 중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의 主이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목을 업으로 하고 있는 유대인에게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기 때문에 위태로운 일을 만날 때나, 대적들을 만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위험에서 건지시고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즉 <엘 샤다이, Almight>라고 불렀습니다. (<엘 샤다이>는 ‘山地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많다. 즉, 유목 생활을 하던 시대의 유목민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이다. )
ꁾ창17:1,7(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출6:2-3(모세 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

본 시편의 상황으로 보아, 당시에 주어진 형편이 힘들고 어려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이루어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의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시인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천사나 인간이나, 위대한 자연조차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에서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1) 창조의 손입니다.
ꁾ11절, “하늘이 주의 것이요 … 세계와 그 중에서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오늘날,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도 능력의 천사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인간과 같이 어떤 것도 스스로 창조할 수 없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참된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있습니다.
2) 능력의 손입니다.
ꁾ10절, “주께서 라합을 … 능력의 팔로 흩으셨나이다.” ‘라합’이란?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괴롭혔던 애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겸손하고 온유한 자, 그리고 상처 입은 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입니다. 그러나, 강퍅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는 가장 두렵고 강력한 심판의 손입니다.
3) 구원의 손입니다.
ꁾ13절, 하나님의 오른 손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능력의 손이 높이 들렸다’ 함은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본문14-18절을 봅시다.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 본 시의 배경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어두운 상황입니다. 즉, 유다 왕국이 멸망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즐거운 소리’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신약의 복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환경은 비록 암울하지만, 다윗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대를 결코 끊어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즉, 다윗의 언약을 체험으로 믿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혹은 동행하는 삶을 삽니다. 15하-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저희가 주의 얼굴 빛에 다니며,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성도는 환경과 여건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도는 당면한 현실이 어떠하더라도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주의 얼굴 빛, 즉 imago Dei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 어떠하겠습니까?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17절),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롬12:12의 말씀처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뢰하며, 높이는 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고 높여 주십니다.
ꁾ본문16-18절, 벧전5:6-7

여러분이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십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주를 찬양하며 기뻐하며 높이시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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