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이 있는 삶(렘17:7-8 / 골2:6-7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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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3-18 20:49
* 들어가는 말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는 삶의 목적이며, 다른 하나는 목적을 위한 생활입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삶의 목적을 주셨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한 주간 동안의 휴가를 얻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조그만 집을 하나 빌려 쉬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갖가지 공해로 찌든 도시를 떠나 있으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면서 지났습니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한가롭게 하고 싶은 일을 즐기고, 날이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전화도 없고, 신문도 배달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늘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잠을 잘 수가 없게 되고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숲 속을 걸으며 산책을 했습니다. 외로운 생각까지 들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껏 쉬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이지 아마 우리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무인도에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그의 세계를 즐기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시간과 자리에서 주어진 목적을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셨으며, 사도 바울의 생애도 그러했습니다.
ꁾ요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성도들의 결실,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실이 있는 생활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66회 나오고, 열매의 종류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열매는, 무화과, 포도 등과 같은 자연의 식물 열매입니다. 두 번째 열매는, 생물학적인 열매로써 자손들입니다. 세 번째 열매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열매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5:8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증거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자녀로 삼으신 이유이기도 하며, 자녀로서의 모든 것을 공급받기 위함입니다.
ꁾ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주님의 제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결실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1.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살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되 깊고 넓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로는 ‘삼나무’나 ‘참나무’, ‘아카시아’등이 있는데, 참나무의 뿌리를 펼쳐 놓는다면 수백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특히 바나나 나무는 거의 없애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나무의 밑동까지 잘라내고 잘게 썰어버려도 금세 다시 자라며, 불을 질러서 태워버려도 금방 다시 자란다고 합니다. 바나나 나무를 없애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뿌리가 필요하고, 왜 필요합니까? 구약본문인 예레미야17:7,8절을 한 번 읽어봅시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잠언12: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먼저, 뿌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견디며 결실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즉, 환난과 시련, 고통의 시기를 견딜 뿐만 아니라, 그런 때에도 결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뭄의 때,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삶이 메말라버리는 때에는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친구나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오는 때, 바로 그 때가 더위의 때이며 가뭄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뿌리가 깊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구아로’라는 선인장은 무려 130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 선인장은 사방으로 15-20M나 되는 뿌리를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뿌리란 무엇을 말합니까?
신약본문인 골로새서 2:6,7절을 읽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의 뿌리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악조건과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부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면서,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탄식조로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18:25-27). 불가능이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ꁾ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마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믿음’이 뿌리이며, 천국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에는 ‘믿음’이 기초이며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을 확보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신뢰심이 확보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며, 나의 사정이 하나님께로 잘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통한 영적인 교통’입니다. 사도신경에도, 축도 속에도 ‘교통’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는 것과 무시로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풍성한 삶을 위한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다음으로 결실을 위하여 분명히 해야 할 것은,
2. 방해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8:11-14절을 읽어봅시다. “씨 뿌리는 비유”에는 네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길 가, 돌짝밭, 가시밭, 옥토 이 네 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온전한 열매를 맺도록 한 것은 옥토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세 종류의 밭은 모두 방해꾼들로 인하여 발아하지도 못하거나, 조금 자라다가 타서 죽어버리거나, 잡초로 인하여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길 가’와 ‘돌짝밭’은 아예 싹트지도 못하거나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시밭’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기는 했지만, 기운이 막혀져 제대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가시밭은 잡초가 무성한 밭입니다. 잡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입니다. 잡초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하며 번식합니다. 이 잡초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해 보아서 잘 아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시가 돋친 풀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잡초’가 있습니다. 이 잡초들은 성도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며, 결실이 없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방해꾼들이며, 잡초들입니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다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기운을 막고 침체시키는 모든 것이 방해꾼이며 잡초입니다. 이 방해꾼들은 우리의 시간과 힘과 돈을 헛되게 사용하도록 하는 이생의 관심과 흥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종류의 방해꾼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근심입니다. 이는 날마다 찾아오는 걱정과 염려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입니다. 직장의 일이나 재물을 모으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방해꾼입니다. 세 번째는 쾌락입니다. 즐거운 생활 자체가 방해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의 쾌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분명히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과 잡초들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고 있을 때입니다. 부지런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방해꾼들을 제거하십시오.
3.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2절을 봅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산가지들을 다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무가 더 튼튼하고 많은 결실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원사들이 나무를 전지할 때는 잔인할 정도로 과감하게 가지들을 잘라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실 때, 우리의 죄악 되고 외면적인 부분들, 우리 삶에서 죽어있는 부분들만 잘라내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볼 때 성공적인 같아 보이는 부분들까지도 잘라내십니다. 잘 되어 가는 사업,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건강, 자녀들 등등. 이런 부분들도 때로는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잘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우리를 많이 아프고 당황하게 하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가지치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우리의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 과정이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지치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가지치기는 결코 징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정결해지기 위하여 힘쓰며,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하나님께 대하여 신뢰심을 보이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듯, 요셉이나 다윗, 사도들이 그 고난의 시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순종하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당장 보기에는 흉합니다. 그러나 곧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무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ꁾ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 앞에는 지금 이 과정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우리가 영적, 육적 모든 삶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깊고 넓게 뿌리를 뻗으며, 적극적으로 방해꾼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는 의의 나무로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는 삶의 목적이며, 다른 하나는 목적을 위한 생활입니다. 아무리 미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삶의 목적을 주셨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한 주간 동안의 휴가를 얻었습니다. 그 사람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조그만 집을 하나 빌려 쉬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갖가지 공해로 찌든 도시를 떠나 있으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면서 지났습니다. 가슴이 시원할 정도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한가롭게 하고 싶은 일을 즐기고, 날이 어두워지면 잠자리에 들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전화도 없고, 신문도 배달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늘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니 잠을 잘 수가 없게 되고 마음에 동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숲 속을 걸으며 산책을 했습니다. 외로운 생각까지 들고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마음껏 쉬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이지 아마 우리도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무인도에서 살아야 한다면,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단순히 그의 세계를 즐기라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계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시간과 자리에서 주어진 목적을 위하여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셨으며, 사도 바울의 생애도 그러했습니다.
ꁾ요9: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살전2: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성도들의 결실, 열매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실이 있는 생활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66회 나오고, 열매의 종류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열매는, 무화과, 포도 등과 같은 자연의 식물 열매입니다. 두 번째 열매는, 생물학적인 열매로써 자손들입니다. 세 번째 열매는, 영적인 열매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열매입니다. 이것을 기독교 영성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5:8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증거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자녀로 삼으신 이유이기도 하며, 자녀로서의 모든 것을 공급받기 위함입니다.
ꁾ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주님의 제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결실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1.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나무가 살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내리되 깊고 넓게 내려야 합니다.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로는 ‘삼나무’나 ‘참나무’, ‘아카시아’등이 있는데, 참나무의 뿌리를 펼쳐 놓는다면 수백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특히 바나나 나무는 거의 없애기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나무의 밑동까지 잘라내고 잘게 썰어버려도 금세 다시 자라며, 불을 질러서 태워버려도 금방 다시 자란다고 합니다. 바나나 나무를 없애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떤 뿌리가 필요하고, 왜 필요합니까? 구약본문인 예레미야17:7,8절을 한 번 읽어봅시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잠언12: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먼저, 뿌리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더위가 오고 가무는 해”에도 견디며 결실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즉, 환난과 시련, 고통의 시기를 견딜 뿐만 아니라, 그런 때에도 결실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뭄의 때,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삶이 메말라버리는 때에는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친구나 건강을 잃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오는 때, 바로 그 때가 더위의 때이며 가뭄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는 뿌리가 깊어야 견딜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사구아로’라는 선인장은 무려 130도나 되는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이 선인장은 사방으로 15-20M나 되는 뿌리를 뻗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뿌리란 무엇을 말합니까?
신약본문인 골로새서 2:6,7절을 읽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의 뿌리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에게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는 악조건과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부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면서,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탄식조로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18:25-27). 불가능이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ꁾ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마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요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믿음’이 뿌리이며, 천국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일에는 ‘믿음’이 기초이며 뿌리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을 확보해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신뢰심이 확보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하며, 나의 사정이 하나님께로 잘 통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통한 영적인 교통’입니다. 사도신경에도, 축도 속에도 ‘교통’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는 것과 무시로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풍성한 삶을 위한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다음으로 결실을 위하여 분명히 해야 할 것은,
2. 방해꾼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8:11-14절을 읽어봅시다. “씨 뿌리는 비유”에는 네 종류의 밭이 나옵니다. 길 가, 돌짝밭, 가시밭, 옥토 이 네 가지입니다. 이 중에서 온전한 열매를 맺도록 한 것은 옥토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세 종류의 밭은 모두 방해꾼들로 인하여 발아하지도 못하거나, 조금 자라다가 타서 죽어버리거나, 잡초로 인하여 온전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길 가’와 ‘돌짝밭’은 아예 싹트지도 못하거나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시밭’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은 자라기는 했지만, 기운이 막혀져 제대로 결실하지 못했습니다.
가시밭은 잡초가 무성한 밭입니다. 잡초’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인한 생명력과 번식력입니다. 잡초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성장하며 번식합니다. 이 잡초에 대해서는 우리가 경험해 보아서 잘 아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시가 돋친 풀은 잡초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도 ‘잡초’가 있습니다. 이 잡초들은 성도의 영적인 성장을 방해하며, 결실이 없는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곧 죽음으로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방해꾼들이며, 잡초들입니까? 그것은 각 개인마다 다릅니다. 우리의 영적인 기운을 막고 침체시키는 모든 것이 방해꾼이며 잡초입니다. 이 방해꾼들은 우리의 시간과 힘과 돈을 헛되게 사용하도록 하는 이생의 관심과 흥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종류의 방해꾼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근심입니다. 이는 날마다 찾아오는 걱정과 염려입니다. 두 번째는 재물입니다. 직장의 일이나 재물을 모으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없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방해꾼입니다. 세 번째는 쾌락입니다. 즐거운 생활 자체가 방해꾼은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의 쾌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시간을 낼 수 없다면 분명히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과 잡초들이 나타나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고 있을 때입니다. 부지런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아가서에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방해꾼들을 제거하십시오.
3.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2절을 봅시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이 말씀은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산가지들을 다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나무가 더 튼튼하고 많은 결실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정원사들이 나무를 전지할 때는 잔인할 정도로 과감하게 가지들을 잘라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으실 때, 우리의 죄악 되고 외면적인 부분들, 우리 삶에서 죽어있는 부분들만 잘라내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있고, 심지어는 우리가 볼 때 성공적인 같아 보이는 부분들까지도 잘라내십니다. 잘 되어 가는 사업, 만족스러운 인간관계, 건강, 자녀들 등등. 이런 부분들도 때로는 더 나은 열매를 위하여 잘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우리를 많이 아프고 당황하게 하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의 가지치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우리의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이 과정이 주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가지치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가지치기는 결코 징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십시오. 그리고 더욱 정결해지기 위하여 힘쓰며,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십시오. 하나님께 대하여 신뢰심을 보이십시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듯, 요셉이나 다윗, 사도들이 그 고난의 시기를 받아들이고 어떤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순종하듯이 그렇게 하십시오.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당장 보기에는 흉합니다. 그러나 곧 이전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나무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ꁾ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우리 앞에는 지금 이 과정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우리가 영적, 육적 모든 삶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깊고 넓게 뿌리를 뻗으며, 적극적으로 방해꾼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며 그 뜻에 순종함으로써 좋은 열매를 맺는 의의 나무로 나타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