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개구리들과 하룻밤을 더(출8:8-15/ 빌2:12-13)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74회 작성일 2001-03-18 20:41
♣ 들어가는 말
옛날에 어떤 새가 살았는데, 별명이 "날만 새면"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이상한 별명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따뜻한 낮에 마음껏 먹고 놀던 새 가족은 밤이 되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새끼 새들이 아버지 새를 원망했습니다. "아버지 우리들도 남들처럼 집을 지어주세요. 밤이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요" 아빠 새가 대답했습니다. "오냐, 잘못 했다. 날만 새면 집을 지으마." 추운 밤을 오들오들 떨면서 지샜습니다. 그런데 정작 날이 새자 그만 집을 짓기로 한 각오를 잊어버렸습니다.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는데 다음이야 못 참겠느냐? 우선 편하게, 즐겁게, 재미있게, 멋지게 지내야지"그래서 자식들을 데리고 재미있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초조한 아들 새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후가 되었어요. 집을 지어야지요." "괜찮다. 해질녘에 지어도 늦지 않다."그러다가 정작 해질녘이 되자, 아빠 새는, “오늘 저녁은 어떻게 지내고 내일 날이 새면 집을 짓자”고 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추웠습니다. 오들 오들 떨면서, “날만 새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 집을 짓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날만 새면 다 잊어버리고 핑계를 대며 놀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밤만 되면, "날만 새면, 날만 새면"을 연발 할뿐, 날이 새어도 집을 짓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추위가 닥친 어느 날, 이 새 가족은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새를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전이나 변화보다는 지금의 환경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쌓아놓은 삶의 터전을 지키고, 그곳에서 안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유대 민족’을 해방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대로 ‘유대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을 200년이 넘도록 노예로 부리던 애굽 왕 ‘바로’가 순순히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의 재앙을 차례로 애굽에 내리심으로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고자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는 그 열 가지의 재앙 중에서 두 번째인 ‘개구리 재앙’을 통하여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의 근본적인 품성을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유대 민족을 내 보내줄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고집불통이었습니다. 첫 번째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물이 피로 변하도록 하셨습니다. 바로 왕은 관심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 하나님은 두 번째 재앙으로 애굽 땅을 온통 ‘개구리’로 뒤덮이도록 하셨습니다. 식탁에도, 침실에도, 온통 개구리였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통했습니다.
결국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좋다. 유대 백성을 보내 줄 테니, 개구리를 나와 내 백성에게서 떠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언제 이 개구리들을 하수에만 있게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바로의 대답은, “내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지긋 지긋한 개구리들을 ‘당장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든지, 아니면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징그러운 개구리들과 하룻밤을 더 지나겠습니까?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것이 좋은지 알면서도 그것을 미루려고 합니다. 아마도 지금 환경에 안주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너무 교만하거나, 완고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지 간에 우리는 늑장을 부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나, 따르고자 하던 사람들 중에도 그러했습니다.
ꁾ눅9:57-62,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예수님을 즉시 따르지 못한 것은 환경에 지배당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환경을 뛰어 넘을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당당하게 환경을 지배하고 뛰어 넘는 것입니다.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지배하려면, 계속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푯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변화시켜가야 할 품성으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제시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성품이 어떻게 이처럼 변화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의 성품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1) 변화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빌립보서 본문을 봅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 말씀 속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삶에 대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말씀합니다.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셨으며, 다음으로,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를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먼저 해야 하는 것을 살펴봅시다.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구원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지 않고,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한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보상’이 따르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일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루라”는 말은 ‘이미 주어진 것을 최상으로 발전시키고 계발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달란트를 나누어 주시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결산을 하셨습니다. 그 결산 때에 사람들은 자신이 일한 과정에 대한 보고와 결과물을 하나님 앞에 내 놓았습니다.
ꁾ마25:15-20,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ꀞ 24-25,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으로 자신을 계발하고 발전시키고 성장시켜야 합니다. 결산 때에 하나님 앞에 열매를 내 놓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가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이며,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변화되는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2) 변화시키시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성도를 그리스도인답게 만들어 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1)하나님은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디모데후서3:16-17절과 히브리서 4: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생명이며, 그리스도인들을 변화시키는 효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묵상’이란 단어와 동의어는 ‘숙려’입니다. ‘숙려’라는 말은 동물들이 ‘되새김질하여 씹는 것’을 말합니다. 초식동물들은 한 번에 질긴 풀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한꺼번에 먹어 두었다가, 후에 조금씩 다시 씹어서 완전히 소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묵상’은 생각의 소화입니다.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고, 또 그것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자신이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2)하나님은 환경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은 사람이 변화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고집은 쉽게 변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환경’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십니다.
환경이라 함은, 문제, 압박, 가슴 아픈 일들, 역경, 스트레스와 같은 것들을 말합니다. 이런 환경적인 요소들은 우리를 한 곳으로 집중하도록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경영이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할 때, 또는 교만하여 하나님의 의도를 벗어나 있을 때, 하나님은 때때로 고통의 환경을 주십니다. 로마서 8: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대부분 우리 자신의 잘못된 판단, 잘못된 결정, 그리고 죄로 인하여 오는 것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환경이든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주변의 환경을 모두 조절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의 앞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바른 마음의 자세만 가진다면, 그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기다리십시오.

열매가 익으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의 죄악 된 성품이 변화되는 것도 시간이 걸립니다. 어디에도 순간적인 성장이란 없습니다. 영적인 성장도 똑 같습니다. 성급하게 열매가 덜 익었을 때 따게 되면, 상품의 가치도 떨어지지만 맛이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의 열매를 익히기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에 협조적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을 즐거워하면서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좋은 표현입니다.
ꁾ시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잠20:22,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유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내일이면 늦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바로처럼, 개구리와 하룻밤을 더 지나면서 요행을 기다리지 말고, 변화하십시오. 주님께서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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