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합시다(에스라3:1-7)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43회
작성일
2001-06-05 16:40
Datum No 1114 / 2001년 6 월 3 일
Title 회복합시다. / Scripture 스3:1-7 / Object 주일저녁예배(일반공통)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을 짧게 표현하라고 한다면, ‘회복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거듭난 이후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를 ‘성화(聖化)’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길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창설자인 「윌리엄 펜」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매우 친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에 대한 호의와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인디언들은 농담으로 하루 동안에 도보로 통과하는 모든 지역을 다 그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윌리엄 펜」은 해가 지평선에 떠오르자마자 걷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걸었습니다. 그의 여행이 끝나자 인디언들에게 찾아와 그 땅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윌리엄」이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행한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가 통과한 땅을 모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필라델피아시의 일부분이 된 것입니다. 윌리암 펜은 단순하게 인디언들의 말대로 실행함으로써 광대한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한 말씀이라도 어기는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 ꁾ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신실하신 하나님은 역시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사실은 본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독의 후손인 「예수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독」의 후손으로써 「요사닥」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독’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유일한 대제사장 가문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신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 가문은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시절, 그리고 본토 귀환 때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들 가문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받은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1. 사독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근동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바벨론도 신흥 제국인 바사 제국의 힘에 밀려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사국의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하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귀환 길에 나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바벨론에서 닦아둔 삶의 터전에서 그대로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것이 엉망인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미 일구어 놓은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평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아는 형제 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대인의 포로 귀환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예수아는 총독인 스룹바벨과 함께 1차 포로귀환의 인솔자요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1차 귀환자는 42,360명이었습니다(2:64). 이들은 죄악 된 이방 땅에서의 일시적인 평안보다는, 비록 황폐하였을망정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의 삶을 원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의 즐거움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을 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비천하고 황폐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참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시편84:10절에서 고백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관건은 우상이든지 하나님이든지 상관이 없었으며, 자신들의 눈에 확인되는 것과 편안한 쪽을 따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별천지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은, 눈앞의 일들이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본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은 자》라는 그루터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사독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법을 준행했습니다.
예수아를 비롯한 사독의 후손 제사장들은 본토로 귀환하자, 가장 먼저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을 했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예루살렘 성은 완전한 폐허였습니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성전은 아예 돌 하나도 돌 위에 얹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황무지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권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6:33절에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으며, 고린도전서10: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백하게 우선권을 명하셨습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핍박을 피해서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던 청교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당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집을 지었습니다. 삶의 우선권을 안 그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회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성도의 자세입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해도 제단만 쌓고, 제사만 드리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또한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만 합니다. 다음의 구절을 보십시오.
- ꁾ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제단을 쌓고,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번제를 드리며, 상번제를 회복했습니다. 비록 성전은 아직 재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최선의 힘을 다하여 예배를 회복한 것입니다.
예배의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강조하신 것입니다.
- ꁾ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5:7-9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 사1:1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나님의 이러한 탄식은 당시의 예배자들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환한 사람들은 그 악조건 속에서도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습니다. 이처럼 사독의 가문은 사독의 신의와 그 후손들의 신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하게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세상의 것이 더 화려하게 보이고 내 앞의 길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2) 모든 삶의 우선권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그 일을 행하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평생의 삶이 이와 같아서 하나님의 은총을 대대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Title 회복합시다. / Scripture 스3:1-7 / Object 주일저녁예배(일반공통)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을 짧게 표현하라고 한다면, ‘회복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거듭난 이후부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를 ‘성화(聖化)’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 회복의 길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창설자인 「윌리엄 펜」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매우 친했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에 대한 호의와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인디언들은 농담으로 하루 동안에 도보로 통과하는 모든 지역을 다 그에게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윌리엄 펜」은 해가 지평선에 떠오르자마자 걷기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걸었습니다. 그의 여행이 끝나자 인디언들에게 찾아와 그 땅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인디언들은 「윌리엄」이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행한 것을 알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가 통과한 땅을 모두 주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필라델피아시의 일부분이 된 것입니다. 윌리암 펜은 단순하게 인디언들의 말대로 실행함으로써 광대한 땅을 차지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한 말씀이라도 어기는 일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 ꁾ신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신실하신 하나님은 역시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사실은 본문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사독의 후손인 「예수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사독」의 후손으로써 「요사닥」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독’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의 유일한 대제사장 가문을 형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신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이 가문은 유다 왕국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시절, 그리고 본토 귀환 때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들 가문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받은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1. 사독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근동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바벨론도 신흥 제국인 바사 제국의 힘에 밀려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사국의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환하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귀환 길에 나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바벨론에서 닦아둔 삶의 터전에서 그대로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마도 모든 것이 엉망인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미 일구어 놓은 자리에서 안주하는 것이 평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아는 형제 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대인의 포로 귀환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예수아는 총독인 스룹바벨과 함께 1차 포로귀환의 인솔자요 지도자로 활약했습니다. 1차 귀환자는 42,360명이었습니다(2:64). 이들은 죄악 된 이방 땅에서의 일시적인 평안보다는, 비록 황폐하였을망정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의 삶을 원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의 즐거움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삶을 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비천하고 황폐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참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시편84:10절에서 고백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의 관건은 우상이든지 하나님이든지 상관이 없었으며, 자신들의 눈에 확인되는 것과 편안한 쪽을 따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당장 눈앞에 별천지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러했다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은, 눈앞의 일들이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본국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은 자》라는 그루터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사독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법을 준행했습니다.
예수아를 비롯한 사독의 후손 제사장들은 본토로 귀환하자, 가장 먼저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을 했습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예루살렘 성은 완전한 폐허였습니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성전은 아예 돌 하나도 돌 위에 얹어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황무지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권이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태복음6:33절에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으며, 고린도전서10:31절에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백하게 우선권을 명하셨습니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핍박을 피해서 아메리카 대륙을 찾았던 청교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당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각자의 집을 지었습니다. 삶의 우선권을 안 그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회복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성도의 자세입니다. 그저 아무렇게나 해도 제단만 쌓고, 제사만 드리면 되지 않느냐? 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또한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만 합니다. 다음의 구절을 보십시오.
- ꁾ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예수아와 제사장들은 율법의 규례를 따라서 제단을 쌓고, 초막절 절기를 지키고, 번제를 드리며, 상번제를 회복했습니다. 비록 성전은 아직 재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최선의 힘을 다하여 예배를 회복한 것입니다.
예배의 여러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토록 강조하신 것입니다.
- ꁾ사29:13,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5:7-9절에서 인용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 사1:1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나님의 이러한 탄식은 당시의 예배자들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환한 사람들은 그 악조건 속에서도 조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충실했습니다. 이처럼 사독의 가문은 사독의 신의와 그 후손들의 신실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하게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세상의 것이 더 화려하게 보이고 내 앞의 길이 고난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2) 모든 삶의 우선권은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그 일을 행하되,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평생의 삶이 이와 같아서 하나님의 은총을 대대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