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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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안목(시편43:1-5)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067회 작성일 2001-05-23 11:26
*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을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기 원하시지만 우리가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얻고자 한다면, 먼저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복음서에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칭찬받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백부장 고넬료’,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등등. 그들은 한결같이 이성으로 조목조목 따져서 믿은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이 아니라 절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계산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미국의 기독교 간증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부흥사 중에 신유의 은사를 가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청을 받고 그 교회에 일찍 도착했더니 현관에 어떤 앉은뱅이 부인이 있었습니다. 부흥사가 말을 건넸습니다. “부인, 여기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십니까?” 그러자 그 앉은뱅이 부인이, “저는 앉은뱅이예요. 오늘 이 교회에 신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님이 오신다기에 그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목사님이 오시면 제일 먼저 병 고침을 받으려고 이렇게 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꼭 병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주위에는 동행자도, 휠체어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예, 아들의 차를 타고 왔지요. 그리고 제 아들이 그 차 속에 휠체어도 넣어 왔답니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저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도착한 즉시 그것들을 모두 보내버렸습니다.” “아니, 왜 보내셨습니까? 가실 때 어떻게 하시려고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제 목사님만 만나면 걸어서 혼자 집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휠체어가 필요합니까?”
목사님은, “자매님, 내가 바로 그 목사입니다. 꼭 나을 줄 믿습니다.”하고는 손을 잡아 끌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하니, 그 즉시 그 여인이 일어나 걸어 다니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시는 일에는 그 사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눈이란, 세상적인 환경이나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보는 눈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가 이룰 것을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사람 중에 꿈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저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다.’ 등등. 비록 빌어먹는 거지도 진수성찬을 꿈꾸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사람들은 앞날의 일을 궁금해 하며, 미지의 세계를 향한 희망을 가지고,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오늘보다 더 좋은 미래를 꿈꾸며 각자의 소망에 따라 안목이 다양함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에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바로 눈앞의 일들만 바라보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일정한 관점을 가지지 못하는 수시로 변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또한 현실을 외면하고 멀리 보이는 소망에만 집착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까?

본문에는 오직 하나님께 탄원하며 신뢰하는 성숙된 신앙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모습입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시인은 현실적으로 당면한 자신의 문제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2절 상반절을 보면,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어늘 …”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이 믿고 바라는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세상에서 받는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를 내버려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악인들로부터 멸시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고 확신하는 믿음의 눈입니다. 내가 당면한 문제도 급박하지만, 나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을 먼저 생각하고, 오늘 당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눈을 기도문에 담아서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6:9-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신앙의 안목은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고난을 돌이켜 주시기를 간구하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3,4절의 고백처럼, 오직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는 것과 하나님의 장막에서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빛과 진리는 성도를 인도하는 주체입니다. 즉 시인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를 의미합니다. 오늘의 성도의 입장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충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산과 장막은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단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단을 의미합니다. “나의 극락(極樂)의 하나님”이란, ‘기쁨 중의 기쁨이신 나의 하나님’이란 의미입니다.

이와 같은 시인의 고백은 성전이 단순한 의식을 행하는 장소가 아닌,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고 체험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많은 갈등과 고민을 겪은 끝에, 영혼의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할 수 있는 생수를 찾았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하나님을 만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오직 나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듣고서 아는 믿음과 직접 체험한 믿음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신앙을 성전 중심 신앙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모든 생활이 성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지 않아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 시대인 오늘에는 성전 중심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을 몇 곳 찾아봅시다.
ꁾ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성전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 곧 성전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성전이란 말이 아니라, 사람 속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계시므로 성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전 중심 신앙은 곧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사는 신앙을 말합니다. 예배도 중요하고, 봉사의 일도 중요하고, 헌신도 중요하고, 말씀 읽기, 기도하기 등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세상적인 생활일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스스로를 독려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안목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을 바라는 진실한 신앙의 안목으로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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