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바란 광야(민14:20-30)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87회 작성일 2001-07-07 21:52
Title 바란 광야 / Scripture 민14:20-30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무엇을 볼 수 있는 눈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물을 볼 수 있는 육신의 눈이며, 둘째는 글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의 눈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영의 눈, 즉 믿음의 눈이 그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육신의 눈이 어두운 사람을 《장님》이라 하고, 지식의 눈이 어두운 사람을 가리켜 《문맹》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짐승》입니다. 창세기 6: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육체’란, 영이 없는 짐승의 몸을 말합니다.
특히, 성도라고 자처하면서도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맹신자》라고 합니다. 즉, 알고 깨달음으로써 믿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따르는 맹목적인 신자라는 뜻입니다. 바로 출애굽 하여 광야 여행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본문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모두가 불신의 지경에 처해 있을 때 환경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에게만 가나안 입성이 허락되었습니다. 나머지는 광야에서 고귀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해야 했습니다. 불신앙 때문에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일반 백성들과 달랐던 점은, 믿음의 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볼 수 있게 하고, 차지할 수 있는 길을 알게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볼 수 있는 영의 눈,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1. 먼저, 사건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2년 만에 「바란 광야」에 진을 쳤습니다. 바란 광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지척에 둔 광야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올라가서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정탐꾼을 보내서 미리 지형과 환경을 알아두자고 제의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각 지파 중, 두령을 뽑아서 12명의 정탐꾼으로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했습니다.
- 신1:21-24,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탐꾼을 파송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표시였습니다. 그들은 출애굽 직후, 홍해에 이르렀을 때부터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 이미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저것 계산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말씀만 믿고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볼 수 있는 육신의 눈을 더 신뢰했습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는 백성들이 생각했던 모든 꿈을 부수어버리기에 충분했습니다. 견고한 성벽, 거인 족, 엄청난 군사력과 철병거들 등. 사람의 계산으로는 그 땅을 차지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세상적인 계산으로 스스로 징계의 길을 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그 바란 광야로 들어가 봅시다.

2. 바란 광야는 희망의 땅입니다.

정탐꾼을 파송한 백성들은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로 모든 희망을 잃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 땅이 눈앞에 있는데 얼마나 차지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들의 희망을 안고 떠났던 12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왔고, 여러 가지 과실을 가지고 와서,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은 들떴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소망이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지금 신약 시대의 바란 광야에 서 있습니다.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척박한 광야를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살짝 엿보게 하셨습니다.
-계21:1-22:5

하지만 영원한 삶이 예비 된 하나님의 나라만 소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 땅에서도 성도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바란 광야는 불신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민수기13:28-33절을 봅시다.
희망이 솟게 하는 보고에 이어서 절망감이 엄습하는 부정적인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민수기13:25-29절까지는 정탐꾼들이 눈으로 확인한 일반적인 사실입니다. 이 사실에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만 더했더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소망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란 광야에서 부는 불신의 바람은 너무나 강력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지금 당장 올라가서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올라가자고 백성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절대 다수인 나머지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불가능하다’라고 자신들의 생각을 담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감정을 나타내었습니다. 백성들은 부정적인 다수 쪽을 신뢰했으며, 절망감으로 통곡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도 희망의 땅이었던 바란 광야가 절망감이 뒤덮인 통곡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들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웃의 잘하는 일에 대한 칭찬보다는, 잘못하는 일에 대한 험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전염성이 매우 강합니다. 한 사람의 흐느낌이 온 백성을 통곡하게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신의 바람, 유혹의 바람, 근심의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 닥치고 있습니다. 사단과 그의 동조세력들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성도들을 통곡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4. 바란 광야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세상에서 부는 바람이 거세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그 곳에도 함께 하십니다. 본문27, 28절을 읽어 봅시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의 두려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서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원망하는 말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미혹되어 자신들의 계획대로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마음대로 해석하고서 스스로 절망감에 빠진 그들을 향하여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망하는 말 그대로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거의 삼백만 명이나 되는 통곡 자들 앞에서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의 소리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망연자실(茫然自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바란 광야에서도 이 상황은 똑 같이 연출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환경에 대한 세상적인 해석과 스스로의 계획에 매인다면 하나님의 분노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기만 하십시오. 하나님의 능력은 거센 바람과 풍랑을 잔잔케 하시며,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시며, 죽은 자에게조차 생명을 부여하십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믿음의 눈을 잃지 않았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허락받았습니다.

바란 광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여 가는 길에 잠시 통과하는 삶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바란 광야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하여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결코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머무는 바란 광야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진정한 소망의 자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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