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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소망을 가지려면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74회 작성일 2023-04-11 21:10

*** 부활의 소망을 가지려면 / 로마서 6:6-11

 

로마서 6:6-11,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들어가는 말

 

기독교의 가장 큰 명절은 부활절이며,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소망은 부활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절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사는 일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고린도전서 15:17-19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부활 소망을 갖지 못한다면 이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켜가는 힘은, 영원한 천국의 삶인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말씀이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진정으로 믿고 소망하게 되면,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레오 톨스토이’는 50세가 지나서 기독교로 회심했습니다. 그는 불후의 명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발표한 후, 그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허무한 삶에 대하여 정신적인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과학, 철학, 예술 등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지만 얻지 못하고, 결국 기독교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는 ‘나의 회심’이란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년 전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나의 전 생애가 변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이전에 구하지 않던 것들을 갈구하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지 않게 보이고, 대수롭지 않게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중요한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나는 소위 행운의 무지개를 좇아 살았는데 그 허무함을 알게 되었다. 거짓으로 나를 꾸미는 것이나 여인들과의 타락한 생활이나 술 취해 기분 좋은 것이 더이상 나를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톨스토이는 예수님을 만난 후, 과거에 좋았던 것,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벗어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배설물’로 여겨졌습니다. 과거의 사상들을 벗어내고 새로운 사상들이 자리 잡게 되었고, 목적 있는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새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육신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내는 결단이 생활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예수께서 지셨던 십자가, 그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이 사건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6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에게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나의 옛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8절에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이 나에게 어떻게 관계가 되는지를 말씀합니다. 즉 주님의 부활은 곧 나의 부활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11절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내용을 요약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지금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 부활의 소망을 가지려면,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포함하는 로마서 6장에서 가장 강조되는 단어가 ‘연합’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의미를 포함하는 -“합하여” “연합하여” “함께” “안에서”- 이러한 단어들이 거의 모든 절에서 사용됩니다. 이는 예수님과 성도들 사이의 관계가 ‘혈족처럼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었으며,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연합의 신비를 예수님은 요한복음 15:4-5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지 않으면 죽은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 연합되어 있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가지려면 당연히 예수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 10-13절을 봅시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말씀이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라는 의미를 잘 보여줍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육체를 지배하는 세상적인 죄가 더는 우리를 다스리지 못한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라고 하십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도 예수 안에서 살아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한 사람은 예수님의 지체로서 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는, 육체의 사사로운 욕망을 벗고, 예수님의 심정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벗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지적한다면 ‘기복주의’, ‘세속화’, ‘이론적 신앙’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모두 사사로운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80년 여의도에서 ‘세계 복음화 대성회’가 열렸습니다. 백만이 넘는 성도가 한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당시 실황 중계를 보면서 ‘놀랍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당시에 한국교회가 놀라울 정도로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전 세계가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73년에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끄는 대성회가 있었고, 1년 뒤에는 ‘엑스 폴로 74’, 그리고 77년에는 ‘민족 복음화 대성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대규모의 집회를 통해서 ‘한국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라는 소식은 전 세계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 후속으로 열렸던 1980년의 ‘세계 복음화 대성회’에는 전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대규모 복음 사절단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세계 복음화 대성회에 참석한 후,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자기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글로 발표했습니다. 그는 ‘백만이 넘는 성도가 한자리에 모여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통성으로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고 대단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나는 결국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깊이 실망했다. 왜냐하면,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보았다는 말입니까? 그는 집회가 끝난 후의 모습을 이야기했습니다. 집회 장소에 널려 있는 신문지 조각과 휴지들, 집회가 끝나자마자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밀고 당기며 우왕좌왕하는 무질서한 모습, 특히 시내버스에 먼저 올라타겠다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고 당기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모습이 집회 이후에 여러 매스컴을 통하여 보도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세상에서의 삶을 나누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수많은 설교를 듣지만, 듣는 것과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제각각입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바로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되었다는 것은 ‘육체의 욕심을 따르던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것입니다. 6절 첫머리에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죄에 대하여는 죽어서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옛사람을 죽이려고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 순간에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죽었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 믿음대로 행동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2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하셨으며, 골로새서 3:9-10상반절에서는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갈라디아서 5: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더는 세상이나 악한 영들이 나를 다스리지 못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심판까지도 벗어났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5: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는 지금 영의 생명이 회복되어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라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신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한 마을에 노점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난했습니다. 복장은 허름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있어서 한 눈에도 고생을 많이 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하지만 얼굴에는 항상 은은하게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노인을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나 보지요?” 할머니는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게는 행복의 비결이 하나 있지요.”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 나이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저는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의 새벽을 맞지 않았습니까? 저는 어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흘만 기다리자.’라고 다짐합니다. 그때부터 제 삶이 한결 행복해졌답니다.”

 

할머니가 누리는 행복의 근원은 부활의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그때 믿음으로 인내하며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하여 살아온 성도들은 행복한 부활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여러분도 어려움이 닥칠 때 이렇게 속삭여 보십시오. “사흘만 기다리자.”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세상적으로 살던 옛사람이 죽었으며,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으로 새 신분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옛사람의 행실을 벗어버리는 것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부활과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님과 소통하며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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