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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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열정으로 사십시오.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558회 작성일 2023-03-26 19:56

*** 후회 없는 열정으로 사십시오. / 베드로전서 4:7-11

 

베드로전서 4:7-11,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좌우명이 있습니까?

제게는 목양신념, 좌우명, 가훈 등이 있습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 하루 후회는 없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등입니다. 사람은 일평생 크고 작은 많은 후회를 남깁니다. 어떤 사람은 그 후회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애의 마지막 결산 때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후회할 일이 있었더라도 만회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잘못하고 죄를 범하여 후회된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회복해야 하며, 사람에게 잘못하여 후회한다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화목을 이루어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후회는 영의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표 되는 예수님의 두 제자가 있습니다. 둘 다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한 사람은 그 후회를 회개하여 만회했지만, 다른 한 제자는 그 후회를 죽음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바로 자기 생명을 위하여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던 가룟 유다입니다. 같은 후회지만,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자신의 삶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매일 매 순간 자기 생활을 돌아보며 바로 잡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고 하시며, 에베소 교회에는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마음 쓰며 살아야 합니까? 용서와 회개를 통한 회복으로 사랑을 이루고, 후회 없는 삶을 이루는 것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깨어있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유포된 글입니다.

때가 진실로 가깝습니다. 지난주 나이지리아를 여행 중이던 어느 목사님이 바람 부는 황량한 길을 홀로 걸어가시던 어떤 노인을 차에 태워드렸습니다. 조금 가던 중에 차 안에서 그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어젯밤에 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목사님은 이 노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차를 급하게 세우고는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국에 무슨 일이 있었다니요? 어떻게 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십니까?” 하고 노인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밤 천국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잔인함과 타락함에 너무 화가 나셔서 천사들에게 ‘심판의 나팔을 불라.’라고 하셨답니다. 천사들은 일제히 나팔을 들었고, 하나님 심판의 나팔을 불려고 하는 순간,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던 성자 예수께서 ‘저의 흘린 피를 기억하소서.’라고 하시며, 길이 참으시는 성부 하나님께 간청하셨었소. 성부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성도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과 악한 자들의 악을 더는 참으실 수가 없으셨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소.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 그리고 성자 예수께서는 수많은 천사에게 명령하시기를 ‘너희들은 세상으로 내려가서 나의 심판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며,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웠다 증거하라.’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이 목사임을 아는 듯한 노인의 말에 놀라운 마음으로 “선생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나는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그 천사 중 한 명이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메시지를 전하시오. 낭비할 시간이 없소, 부탁드리오.” 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정말 곧 오십니다. 제발 회개하십시오.”

 

※ 후회가 없으려면, 정산(精算)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있습니다. 세상의 일에도 그러하겠지만, 영의 일에도 준비가 되어 있다면 후회하지 않게 되겠지요. 준비라고 하면,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도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4:1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예수께서는 말세에 관한 준비를 언급하신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비유가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 이렇게 세 비유가 가진 공통된 주제는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특히, 열 처녀의 비유에서 열 명의 처녀들이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신랑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등에 기름이 다하여 꺼져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즉시 등에 기름을 보충하여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했고, 혼인 잔칫집은 문이 닫혔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비유는 불신자가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대상입니다. 문제가 된 ‘여분의 기름’은, ‘믿음의 삶’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관한 신뢰와 생활에서의 실천’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 비유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실천적 신앙의 삶’을 언급하십니다.

 

이렇게 매일, 생활 속에서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한다고 완전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기도 하며, 말이나 행동에서 실수하고 잘못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열 처녀 비유에서는 ‘졸며 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깨어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때를 대비하여 매일 생활을 정산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이 말씀이 ‘생활의 정산(精算)’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때도, 반드시 생활의 정산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우리의 삶을 결산하는 날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반드시 해야 할 일을 가르칩니다. 본문 7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에서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건전한 마음이 되다.’ 혹은 ‘정신이 온전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근신하여”라는 말은 ‘분별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두 단어의 공통된 의미는 ‘술 취하지 않다.’라는 뜻인데, ‘영적 감각이 둔하여지고 분별력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세대가 이렇게 술에 취한 듯하여 분별력이 없고 영적인 감각이 둔해진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라는 것은, 이렇게 영적으로 둔하고 혼란한 때, 나 자신이 올바르게 행동하는지를 살피라는 권면입니다.

 

※ 후회가 없으려면, 열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우석대학교 문예 창작 교수이자 작가인 ‘안도현’ 시인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있습니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에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음식을 조리하거나 방을 따뜻하게 하는 주된 연료가 연탄이었습니다. 연탄이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태워 열을 내고 남은 것이 연탄재입니다. 이 연탄재가 길거리나 밭 모서리에 쌓여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심심풀이로 발로 뻥 차서 부수거나, 화가 난 사람은 화풀이로 차고 밟고 부수는 그야말로 동네북인 연탄재였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너는 연탄처럼 다른 사람에게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해 보았느냐?’라고 묻습니다. ‘연탄처럼 다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고 봉사해보지 않았다면 연탄재를 발로 찰 자격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비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도 그 사랑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은 뜨뜻미지근 하게 열정 없이 그저 그렇게 삽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이렇게 뜨뜻미지근하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교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도 요한에게 특별한 편지를 보내라고 하신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 중에 마지막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인데, 흔히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나타낸다고 봅니다. 계시록 3:15-16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버리리라.” 예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차갑든지 뜨겁든지 의미 있게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열정의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 8-11전반절에서 거듭 강조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 이 말씀은 열정의 삶을 요구합니다.

 

본문 8-10절을 현대어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허기지고 잠잘 데 없는 사람을 보거든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개역 성경에서는 “열심으로 사랑하라.”라고 번역했고,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번역했고, 현대어 성경에서는 “깊이 사랑하라.”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은 ‘열렬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쉽게 표현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사랑을 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실천에 있어서 더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특별한 능력)를 활용하여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둘을 연결하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며 섬기며 봉사하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3절에서 주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고, 10:11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최고의 사랑, 최선의 사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아시는 주님 앞에서 진실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사실이 믿어집니까? 사실 지금 그리스도인 중에 이렇게 진실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아예 예수님의 재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을 봅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노아가 배를 만드는 백 년 동안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지만,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가 멸망 당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도,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즐겼습니다. 우리는 이같이 어리석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생전에 주님이 오지 않으실 수 있으며, 또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해서 손해 볼 것 없습니다. 저는 매일 자주 먼 하늘을 바라봅니다. ‘언젠가는 저 공중으로 주님이 오실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설교든지, 강의든지, 회의든지 준비를 철저하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 갑자기 ‘말씀을 전해 달라.’라고 요구해도 할 수 있도록 여분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으면, 두려움도 염려도 없으며, 담대하고 당당하게 됩니다. 후회 없는 열정의 삶을 위하여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봉사하고, 본이 되는 생활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준비된 행복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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