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주인의 뜻을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 주인의 뜻을 아는 것이 능력입니다. / 누가복음 12:42-48
누가복음 12:42-48,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하면서, 교육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짧은 시간에 큰 발전과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기적적인 성장에 관하여 세계가 궁금해하며, 놀라워합니다. 그런데, 미국 팬실베니아 주립대 사회학 교수인 ‘샘 리처드’ 교수, 예일대 동북아시아 전공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그의 강의에서 “한국의 성장은 기적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보전해 온 지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와 전쟁으로 말미암아 뜻을 펼 기회가 없었으며, 기회가 주어지자 그 저력이 반세기 만에 큰 성장으로 나타났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안다는 것, 즉 지식과 지혜는 힘과 능력이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영적인 일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7:3에서 예수께서 기도 중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시며,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3:18에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뜻을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라고 부릅니다. 이 비유는 본문 말씀 앞쪽의 35절부터 본문 말씀으로 이어지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깨어 있는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자 베드로가 ‘그 비유를 누구에게 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하여 ‘지혜 있는 청지기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는 물음으로 비유가 시작됩니다. 이 비유를 하신 목적은 ‘지금까지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비유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즉 모든 청지기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의 중심 주제는 47절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이 주제는 우리가 지금 우리의 삶에서 수행해야 할 것으로, ‘주인의 뜻을 알고 순종하라.’라는 것입니다.
청지기라는 직분은 ‘주인이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맡겨주신 일과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맡은 모든 직분자’를 청지기라고 부릅니다. 청지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청지기를 향한 주인의 뜻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인데, 그 자세한 내용을 봅시다. 에베소서 4:11-14을 봅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일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에서 “봉사”라는 말은, diakoniva(diakonia)인데, ‘집사직’을 뜻합니다. 청지기가 해야 할 일을 쉽게 요약하면,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활동을 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충만하게 자라게 하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청지기는 항상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맡겨주신 직분을 통하여 충성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42-43절에서 이런 청지기를 ‘복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반대로 직분에 대하여 충성되지 못하면, 본문 45-46절에서 ‘주인이 이를 때에 엄하게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사람이 받는 벌을 받게 된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청지기인 우리가 가장 먼저 마음에 두어야 할 내용이 ‘주인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 주인의 뜻을 조금 더 살펴봅시다.
우리가 먼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내용은 ‘주인이 청지기라고 부른 사람들이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본문 42-43절을 읽어봅시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에서 베드로가 질문한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내용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직접적인 대상은 ‘청지기’들입니다. 청지기는 집주인이 자기 종들과 재산을 관리하고, 때로는 주인의 후계자 교육까지 맡긴 사람입니다. 이들이 지금 시대에 있어서 누구를 말합니까? 마가복음 13:37입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야 할 사람은 “모든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어떤 일이든지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 시대를 분별하면서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사람은 모든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는 왜 ‘청지기’라고 특별한 직분을 지칭했을까요? 그 이유는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렇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일을 부여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맡은 청지기들이 특별히 깨어 있어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3:34을 봅시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기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맡기신 일이 있으며, 그 일을 수행할 권한과 능력을 부여받은 청지기들입니다.
다음으로, 살펴야 할 내용은 청지기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일도 있지만, 각 사람에게 맡기신 일이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예컨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선한 일에 봉사하는 일 등. 이들은 모든 성도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일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은사(달란트)를 따라서, 가르치고, 구제하고, 위로하고, 다스리며, 병을 고치고, 직분대로 행하는 일 등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대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하려면 주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잠언 9: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라고 하시며, 호세아 6:6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는 인애(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을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먼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자기 마음에 늘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주어진 은사(달란트)를 알게 하며,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하고자 하는 일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예컨대, ‘나는 어려서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어서 노래하고 싶었는데, 부모나 주변 사람들에 의하여 사무직을 하고 있지만, 늘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한다면, 그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라고 반문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내가 잘하는 노래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환경 탓만 하면서 자기 은사를 썩히고 있다면, 한 달란트 맡았던 종처럼 하나님 앞에서 설 때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여러분 자신의 은사를 잘 활용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 주인의 뜻을 아는 청지기의 행동은 어떠해야 합니까?
주인의 뜻을 아는 청지기는 일단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잠든 사람과 깨어 있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의식(意識)이 있으면 깨어 있는 상태이며, 의식이 없으면 잠든 상태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의식(意識)을 ‘각성(覺醒)하여 정신이 든 상태에서 사물을 깨닫는 일체.’라고 풀이했습니다. 꿈은 무의식의 산물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잠든 사람과 깨어 있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일단 영의 생명이 있음을 전제로 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잠든 사람은 영적인 깨달음이 없는 상태입니다. 즉 세상의 일에 마음이 빼앗겨서 주님이 지시하시는 것과 보여주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 중에서 가시 떨기 밭과 같습니다.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마 13:22)라고 하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48절의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맞을 짓을 행한 종”입니다. 만일 영적인 깨달음이 있는 상태 즉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잠든 것이 아니라 ‘불복종’이며 ‘거역’입니다. 이들을 본문 말씀 47절에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영적인 깨달음이 있지만 순종하지 아니한 것도 역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한 부분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매일의 자신의 삶에서 주님과 교통하며 주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여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42-43절에서 말씀하시는 사람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즉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혹은 부르실 때까지 주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미국에서 사역하는 ‘켄트 필폿(Kent Philpott)’ 목사의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한 여인 곁에서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지금까지 세상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해 왔으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어떤 설득에도 여인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그녀의 어머니를 병실로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어머니를 통하여 딸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도 울먹거리며 딸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 가야지.’라고 말했지만, 딸은 그저 무표정하게 들을 뿐이었습니다. 한참 엄마의 말을 듣고 있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엄마도 지금까지 나와 별다를 게 없이 살았잖아요!”
여인의 엄마는 딸에게 신앙의 본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마치 자식 게가 옆으로 걷는 것을 본 어미 게가 ‘애야 걸음은 이렇게 앞으로 똑바로 걸어야지’라고 하면서, 자신도 옆으로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인의 뜻을 아는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성실하게 순종하는 삶으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삶의 기본은 ‘본을 따르며, 본을 보이는 삶’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14-15입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처럼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렇게 주님 말씀에 순종하던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했으며,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 대로 주님을 따르는 본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7입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우리도 주님과 믿음의 선조들의 본을 따라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생활 속에서 본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혹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우리에게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아서, 신실하고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도록 말씀을 읽고 들으며, 기도로 주님과 교통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올해는 신실한 청지기에게 내리시는 주님의 칭찬과 은혜와 사랑으로 덧입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