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씨앗 그리고 기쁨(시126:1-6)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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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9-14 23:25
Title 눈물과 씨앗 그리고 기쁨 / Scripture 시126:1-6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많이 있지요? 저는 오래 전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며, 거의 기도할 때마다 아뢰는 간절한 소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내용이 복음성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의 본문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인하여 감격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포로 생활에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격 어린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있지만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낙심하지 않고, 포로에서부터 구원받을 때의 감격을 회상하면서, 본토가 반드시 재건되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시편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절대불변의 수확법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수확의 법칙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더욱 생생하고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그야말로 자신이 행한 그대로 보응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해서 심고 노력한 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삶에 대하여는 그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나 봅니다. 옛 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고 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등.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수할 것이 있기 위하여 기회가 있을 때 무엇이든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심는 것이기는 합니다. 결과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본문1-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포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의 꿈꾸는 듯한 큰 기쁨과 감격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말씀에는 무엇인가 깊은 안타까움을 안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등, 수많은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70년이 다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키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긍휼하심에 근거한 구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육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악과 불순종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회복을 위하여 아무 것도 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심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거두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역대상17:7-14절에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애쓰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고, 아들인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는 결코 일어설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죽어버린 고목을 베어 버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고목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실을 6: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 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남은 그루터기인 ‘거룩한 씨앗’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시면서 남겨놓으신 영적인 씨앗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를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귀환을 인도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등.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거룩한 씨앗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우리 성도들의 기쁨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엡2:8-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새 언약이 우리의 소망이며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지속하려면 씨를 뿌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은 분명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고국으로 귀환한 후부터 뼈를 깎는 듯한 각고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로 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이제부터는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라할지라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절대명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영적인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지만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에게는 남다른 고생과 슬픔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삭과 열매를 거두는 일보다 씨를 뿌리는 일이 더 힘듭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돌과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거름을 뿌리고, 흙을 부드럽게 썰고, 정성스럽게 씨앗을 뿌립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자라기까지 계속 돌보아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모두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이 땅에서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씨를 뿌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통이 따르지만 기쁨으로 성령을 위하여 영적인 씨앗을 뿌립니다.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길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기 때문에 종종 눈물과 슬픔이 따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길이기에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로마서8: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지속하기 위하여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눈물로 씨앗은 추수의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만 약속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며 뿌린 씨앗을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사야55: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갈라디아서6:9절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추수하는 기쁨은 고통의 눈물과 수고로움으로 씨를 뿌리고 가꾼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농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씨를 뿌리고, 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면서 정성껏 돌본 대가로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도 추수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씨앗을 뿌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과 여건과 환경을 만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취지는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 된 사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유대인들은 캄캄한 지하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깜깜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뢰가 그 핍박과 고난의 밤을 이기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위하여,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부름에 응답하겠습니까? 편안한 환경을 바라며 게으른 마음 자세로는 부름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추수 때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눈물과 수고로움을 이기고 씨를 뿌리는 신실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의 가장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많이 있지요? 저는 오래 전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며, 거의 기도할 때마다 아뢰는 간절한 소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항상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내용이 복음성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의 본문이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인하여 감격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포로 생활에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격 어린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그토록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있지만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낙심하지 않고, 포로에서부터 구원받을 때의 감격을 회상하면서, 본토가 반드시 재건되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앞으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시편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절대불변의 수확법칙’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수확의 법칙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더욱 생생하고 무서운 선언을 합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그야말로 자신이 행한 그대로 보응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해서 심고 노력한 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삶에 대하여는 그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나 봅니다. 옛 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고 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등.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추수할 것이 있기 위하여 기회가 있을 때 무엇이든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도 심는 것이기는 합니다. 결과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쁨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본문1-3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포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의 꿈꾸는 듯한 큰 기쁨과 감격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말씀에는 무엇인가 깊은 안타까움을 안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등, 수많은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70년이 다하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이키실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긍휼하심에 근거한 구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육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악과 불순종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회복을 위하여 아무 것도 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심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거두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역대상17:7-14절에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애쓰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고, 아들인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는 결코 일어설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죽어버린 고목을 베어 버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고목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실을 6: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 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남은 그루터기인 ‘거룩한 씨앗’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시면서 남겨놓으신 영적인 씨앗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기도를 기억하시지요? 그리고 귀환을 인도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등.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거룩한 씨앗들이 있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은 우리 성도들의 기쁨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며(엡2:8-9),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새 언약이 우리의 소망이며 큰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지속하려면 씨를 뿌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된 것은 분명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고국으로 귀환한 후부터 뼈를 깎는 듯한 각고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로 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했던 것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이제부터는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라할지라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절대명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영적인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하지만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에게는 남다른 고생과 슬픔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삭과 열매를 거두는 일보다 씨를 뿌리는 일이 더 힘듭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돌과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거름을 뿌리고, 흙을 부드럽게 썰고, 정성스럽게 씨앗을 뿌립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자라기까지 계속 돌보아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모두 씨를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이 땅에서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씨를 뿌립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고통이 따르지만 기쁨으로 성령을 위하여 영적인 씨앗을 뿌립니다.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리는 길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길이기 때문에 종종 눈물과 슬픔이 따릅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길이기에 고통과 눈물이 있습니다. 로마서8: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기쁨을 지속하기 위하여 우리는 씨앗을 뿌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눈물로 씨앗은 추수의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만 약속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되며 뿌린 씨앗을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사야55: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갈라디아서6:9절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추수하는 기쁨은 고통의 눈물과 수고로움으로 씨를 뿌리고 가꾼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농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씨를 뿌리고, 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면서 정성껏 돌본 대가로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농부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도 추수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씨앗을 뿌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과 여건과 환경을 만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비록 태양 빛이 우리에게 비취지는 않지만,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사랑이 지금 내게 느껴지지 않지만, 저기 진실 된 사랑이 있는 것을 믿노라.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 가운데 계시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노라.”
유대인들은 캄캄한 지하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깜깜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이 신뢰가 그 핍박과 고난의 밤을 이기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위하여,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부름에 응답하겠습니까? 편안한 환경을 바라며 게으른 마음 자세로는 부름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추수 때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눈물과 수고로움을 이기고 씨를 뿌리는 신실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