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십자가! (갈2:20)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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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1-08-31 23:34
Title 아! 십자가! / Scripture 갈2:20 / Space 대복교회
*** 들어가는 말
오늘은 하나님께서 대복마을에 처음 교회를 세우신지 만 7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정확하게 1994년 9월 4일 주일에 대복에서의 첫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교회로 출발한 것이 대복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그러하겠지만, 대복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세상에 사랑의 삶을 나누기를 힘써왔습니다. 즉 입으로 또는 의식적인 행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어진 생활터전을 밝혀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모습도 많이 나타났고, 때로는 실망과 좌절감을 맛보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의 도전,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생애의 좌절을 안고 있던 사람, 병자들, 방황하는 신앙인들, 도피자들 등. 많은 사람들이 거처 갔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증거 된 말씀이나 뿌려진 사랑의 씨앗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는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대복교회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매일매일 주어지는 일들을 힘써 행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신 동안 최선을 다하여 충성할 뿐입니다. 즉 대복교회는 교회로 부름 받은 여러분들이 순종과 섬김, 증거의 생활을 통하여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합니다.
오늘 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형틀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난, 아픔, 핍박 등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대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교회 창립 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 보다 더 깊은 의미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지금까지 지나 온 길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십자가에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통 십자가는 모든 것이 끝나는 끔찍한 사형 도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보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숨겨지고 폐쇄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면서 이스라엘을 형성했고, 그 때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즉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제물로 삼아 하나님 나라로 연결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마시고 인류의 죄를 속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마태복음 27:50-5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통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구원의 길이며 영생의 길입니다. 또한 잃어버렸던 본향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기적과 같은 능력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과 같은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 ꁾ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는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2. 십자가는 내가 져야할 사명입니다.
교회의 상징물처럼 인식되어진 십자가는 사실 높이 세워져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걸이나 장식용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고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나만이 지고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세 번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뇌에 찬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상쇄시켜보려고 주님 곁에 있는 요한을 가리키며,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 대한 일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일축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이 각자의 몫임을 말씀합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에는 경이로움에 감격한 성도들이 많이 있지만, 나타나지 않는 섬김과 수고와 고통의 자리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외면합니다. 핍박이나 어려움, 고난이 닥치기 전까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 좌절에 빠지고 맙니다. 이처럼 좋은 것만 얻고 이름나는 곳에만 나타나기를 바라는 신앙의 원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즉 십자가를 알지 못하거나, 굳이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안다면 말없이 그 십자가를 지고 갈 결심이 되어 있습니까?
추운 겨울 날, 눈 오는 거리에서 한 소녀가 얇은 옷을 입은 채,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가던 젊은 크리스천이 격앙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대책이든 세워주셔야지요.”그러나 그 외침에 대꾸하는 음성은 들리지 않고 고요한 정적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청년은 스쳐 지나는 듯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대책을 이미 세웠었노라. 내가 너를 만들었노라.”
혹시 여러분은 가진 자와 사회 구조만 성토할 뿐,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를 위한 대책으로 보내셨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에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이 세대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16:9절을 통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으며, 33절에서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에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만일 그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피한다면 결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며 감격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사도 바울의 감격어린 고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본 사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더 이상 고난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있으며, 죄인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꺼이 죄와 진노의 잔을 마시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감격 없이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 크신 은혜를 입은 내가 십자가를 부끄러워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의 대가로 불리는 ‘스펄젼’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 적어도 90%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채워지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항상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루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묵상하다가 십자가 장면이 나왔는데, 제 마음속에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 왜 내 마음의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십자가의 이야기는 매일 듣고, 매일 읽어도 항상 새롭고 마르지 말아야 할 감격의 생수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향한 감격을 잃고 있다면 영적인 깊은 질병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없으면 죄 사함도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6: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사순절이나 고난주간, 성찬식 때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십자가는 핍박과 고난과 환난의 상징만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더 깊은 곳에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있고, 부르심의 사명이 있고, 생명과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항상 지고 가야할 삶입니다.
대복교회도 이제는 성숙하고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어린 아이의 습관과 행동을 벗어버리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갑시다. 이 길이 주님이 앞서 가신 길이며, 또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길은 약속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생명과 상급이 약속되어 있는 이 길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 들어가는 말
오늘은 하나님께서 대복마을에 처음 교회를 세우신지 만 7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정확하게 1994년 9월 4일 주일에 대복에서의 첫 예배를 드리면서 가정교회로 출발한 것이 대복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교회가 그러하겠지만, 대복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면서 세상에 사랑의 삶을 나누기를 힘써왔습니다. 즉 입으로 또는 의식적인 행위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어진 생활터전을 밝혀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모습도 많이 나타났고, 때로는 실망과 좌절감을 맛보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이단들의 도전,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생애의 좌절을 안고 있던 사람, 병자들, 방황하는 신앙인들, 도피자들 등. 많은 사람들이 거처 갔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증거 된 말씀이나 뿌려진 사랑의 씨앗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는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대복교회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한 일이 없습니다. 다만 매일매일 주어지는 일들을 힘써 행했을 뿐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신 동안 최선을 다하여 충성할 뿐입니다. 즉 대복교회는 교회로 부름 받은 여러분들이 순종과 섬김, 증거의 생활을 통하여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합니다.
오늘 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형틀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난, 아픔, 핍박 등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를 대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교회 창립 7주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그 보다 더 깊은 의미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지금까지 지나 온 길을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십자가에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보통 십자가는 모든 것이 끝나는 끔찍한 사형 도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보장되어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숨겨지고 폐쇄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면서 이스라엘을 형성했고, 그 때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즉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의 제물로 삼아 하나님 나라로 연결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마시고 인류의 죄를 속하시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셨습니다. 마태복음 27:50-5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문으로 통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구원의 길이며 영생의 길입니다. 또한 잃어버렸던 본향으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기적과 같은 능력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헬라인들은 철학과 같은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 ꁾ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는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가야할 길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2. 십자가는 내가 져야할 사명입니다.
교회의 상징물처럼 인식되어진 십자가는 사실 높이 세워져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목걸이나 장식용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고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십자가는 나만이 지고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세 번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뇌에 찬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상쇄시켜보려고 주님 곁에 있는 요한을 가리키며,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 대한 일은 상관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일축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사명이 각자의 몫임을 말씀합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위로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현장에는 경이로움에 감격한 성도들이 많이 있지만, 나타나지 않는 섬김과 수고와 고통의 자리는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외면합니다. 핍박이나 어려움, 고난이 닥치기 전까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 좌절에 빠지고 맙니다. 이처럼 좋은 것만 얻고 이름나는 곳에만 나타나기를 바라는 신앙의 원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즉 십자가를 알지 못하거나, 굳이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안다면 말없이 그 십자가를 지고 갈 결심이 되어 있습니까?
추운 겨울 날, 눈 오는 거리에서 한 소녀가 얇은 옷을 입은 채, 밥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지나가던 젊은 크리스천이 격앙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대책이든 세워주셔야지요.”그러나 그 외침에 대꾸하는 음성은 들리지 않고 고요한 정적만 흐를 뿐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청년은 스쳐 지나는 듯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대책을 이미 세웠었노라. 내가 너를 만들었노라.”
혹시 여러분은 가진 자와 사회 구조만 성토할 뿐, 하나님께서 나를 이 시대를 위한 대책으로 보내셨음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에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이 세대에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16:9절을 통하여,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으며, 33절에서는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자신이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에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만일 그 십자가를 외면하거나 피한다면 결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3.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이며 감격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사도 바울의 감격어린 고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본 사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십자가는 더 이상 고난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아닙니다. 십자가에는 죄인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있으며, 죄인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꺼이 죄와 진노의 잔을 마시며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감격 없이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 크신 은혜를 입은 내가 십자가를 부끄러워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의 대가로 불리는 ‘스펄젼’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에 적어도 90%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채워지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서 견딜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님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항상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루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조용히 묵상하다가 십자가 장면이 나왔는데, 제 마음속에 감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나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 왜 내 마음의 감격이 사라졌습니까?’”
십자가의 이야기는 매일 듣고, 매일 읽어도 항상 새롭고 마르지 말아야 할 감격의 생수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향한 감격을 잃고 있다면 영적인 깊은 질병에 들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없으면 죄 사함도 부활도 없고,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6: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사순절이나 고난주간, 성찬식 때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십자가는 핍박과 고난과 환난의 상징만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더 깊은 곳에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있고, 부르심의 사명이 있고, 생명과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항상 지고 가야할 삶입니다.
대복교회도 이제는 성숙하고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어린 아이의 습관과 행동을 벗어버리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갑시다. 이 길이 주님이 앞서 가신 길이며, 또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길은 약속의 길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생명과 상급이 약속되어 있는 이 길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담대하게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