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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결실을 원하십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219회 작성일 2023-08-06 15:48

*** 많은 결실을 원하십니까? / 요한복음 12:24-26

 

요한복음 12:24-26,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들어가는 말

 

오늘 제목이 “많은 결실을 원하십니까?”라고 했는데, 괜한 물음이지요? 누구든지 자기 생활에서 많은 결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결실을 원하는 만큼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별 성과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즐겁거나 만족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혼자서 바쁘고 조급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그 이유는 많은 경우에, 자기중심적 가치관이 원인입니다. 좀 더 넓게 보지 못하고 바로 앞의 원인에 급급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신앙에서는 ‘근시안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11-13절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린도교회가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에 급급하여 니편, 내편으로 갈라서 다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금모래와 모래 금의 차이를 아십니까? 같은 말 같지만, 전혀 다른 말입니다. 금모래는 ‘금 같은 모래’로 금처럼 빛나지만 결국은 모래입니다. 모래 금은 ‘모래 같은 금’으로 모래처럼 잘지만, 사금(砂金)으로서 엄연히 금입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이나 패스트-푸드(fast-food) 매장, 대형 마트의 Food Court(음식점 코너)에 보면, 음식물 모형들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진짜 음식보다 더 맛깔스럽고 풍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짜 음식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그러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신앙의 사람 같지만, 영적으로 결실이 없고, 기쁨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삶의 결실이 없으면 무늬만 신앙이지 의미 없는 신앙일 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예수께서 많은 결실을 맺는 진정한 신앙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아주 짧은 본문 말씀은 짧지만 깊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입성하신 후,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하여 상징적으로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즉, 이제 곧 십자가 형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셔야 하는 그 일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역시 겪어야 할 일이며,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는 먼저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밀 한 알이 땅에 심어져서 자신의 몸이 썩어져서 그 양분으로 새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라고 하십니다. 다음으로는 영적인 생명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서,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결국 영생을 잃게 될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면 영생하도록 보전된다.’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미 여러 곳에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4-25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바로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생명과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는 길을 전하는 것입니다.

 

※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다는 것은 원인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代價)를 치러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27절입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도 모든 말씀을 결론지으시면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하십니다. 본문 말씀에서도 이런 원인과 결과라는 면에서 ‘삶의 많은 열매를 맺는 비결’, ‘영원하도록 생명을 보전하는 비결’, ‘하나님께 사랑받는 비결’ 등을 가르치십니다. 예수께서는 거의 같은 내용을 세 번에 걸쳐 연속적으로 강조하십니다. 그만큼 중요한 법칙이라는 뜻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점층법처럼 되어 있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삶의 결실을 위한 원인과 결과’를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 되기를 바라고,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정당하게 치러야 할 대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료들의 부정부패, 뇌물, 억지로 뺏고 강탈하려는 사람들, 이들이 벌이는 사기행각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바보처럼 여겨지는 어이없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그렇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 합세하면 안 됩니다. 세상이 혼란스럽고 위기가 올 때 영웅이 나타나며, 세상이 썩어가고 영적인 어두움이 내릴 때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1-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라.”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은밀한 일이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생각까지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장차 받게 될 영원한 생명과 영광스러운 상급을 생각하면서, 마땅히 치러야 할 대가를 기꺼이 치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하는 일에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대가(代價)가 따름을 생각해야 합니다.

 

※ 이처럼, 많은 결실을 원하면, 상응하는 대가도 치러야 합니다.

 

고등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직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연금이나 퇴직금도 있을 텐데 저런 일을…’ 이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의 친구가 콘서트 티켓이 생겨서 그분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가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독한 친구를 위해 휴일 없이 일한 지 3년이 되었다.”라고 하면서,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말기 암으로 올해를 넘기기 어려운 상황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병원비를 위해 휴일 없이 청소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이 힘들 때도 있지만, 내 힘으로 친구 하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난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은 예수께서 인정하시는 희생적인 삶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고 썩어져야 새로운 생명과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인의 희생을 통하여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과 교회와 나라가 살게 되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핵심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뿌려진 씨앗이 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생명을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며 귀하게 여김을 받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는 예수님을 섬기며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영광의 삶을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죽도록 고생하고 생명의 위기까지도 감수하면서 마련한 것을, 다른 사람이 그냥 가지겠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24-25절입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왜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겠습니까? 세상의 돈과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한 진리를 외면합니다.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그릇에는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다른 것을 담으려 한다면 먼저 있는 것을 비워내야 하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진리입니다. 에베소서 4:22-24절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내가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풍성한 삶으로 채움을 받고 싶다면, 세상의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알면서도 쉽게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누가 내 필요를 채워주지?’ ‘아이고, 나는 이것 없이는 못살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필요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도 일어나겠지요. “세상의 것 모두 손 놓으면, 하나님 믿는 신앙으로만 살 수가 있어?” 고린도전서 5:9-10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 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 말씀은 인간관계를 말하지만, 세상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것을 비우라는 말은, 세상의 재물이나 세상의 것들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어느 교회의 권사님은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사회에서까지 믿음이 좋기로 소문나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성도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도 넘치는 사랑으로 섬기며 봉사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으며, 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범으로 꼽혔습니다. 이런 권사님이 어느 주일에 예배에 오지를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권사님이 편찮으시지 않고는 예배에 빠지지 않으실 텐데?’ 라며 염려했습니다. 예배 후에 부교역자들이 권사님께 연락을 취했는데, 시내 대학병원에 있다고 했습니다. 담임 목사님과 부교역자들이 병원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병실에는 권사님의 아들이 병상에 누워 있었고, 권사님은 간병하고 있었습니다. 권사님 말로는 아들이 중한 질병에 걸려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조금 의아해하면서 “권사님, 잠시 간병인에게 맡기시고 교회에 오시지 않구요.”라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아들을 두고 어떻게요? 저는 아들 없이는 못삽니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권사님의 아들에게 병을 주신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도 예배와 믿음에 철저했던 권사님이었지만, 권사님에게는 아들이 우상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0:37-3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는 세상의 것이 전부여서 품고 삽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목적지가 바뀐 후에는 옛사람과 옛사람의 삶의 행태를 버리고, 새사람으로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아직은 세상의 삶과 영의 새로운 삶이 뒤섞여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삽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에서 콩나물이 자라듯이 우리도 새사람으로서의 결실을 향하여 날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골로새서 3:8-10절을 봅시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이 말씀처럼,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이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자라듯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도 사랑도 날마다 새로워지며 자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게 되면, 때가 이를 것이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즉 심은 것이 있어야 거둘 것도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거두기를 원하는 것이 크고 많을수록 치러야 하는 대가도 크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건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즉 옛사람을 버린 하나님의 새 사람으로서 믿음도 사랑도 건강하게 자라면, 때가 이르게 되고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조급해하지 말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성실하게 믿음이 자라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풍성한 열매를 삶에서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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