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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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과 고난을 대하는 자세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441회 작성일 2023-07-02 15:58

*** 시험과 고난을 대하는 자세 / 베드로전서 4:12-19

 

베드로전서 4:12-19,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 들어가는 말

 

어느 꼬마가 ‘학교 앞 체육관에 다니는 운동선수들이 날마다 멋진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을 한 줄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멋있게 보였던 꼬마가 엄마를 졸라서 운동복을 샀습니다. 자기도 운동복을 입고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한 바퀴도 체 못 뛰고는 숨을 헐떡이며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거 입어도 선수가 안 되는구나.”

 

아마, 아이는 좋은 운동복을 입으면 금방 선수로 변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교인들도 모양만 갖추었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10년, 20년,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 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청년이 군에 입대하자마자 무기를 다루는 군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르게 걷는 훈련(제식훈련), 명령 복종 훈련, 무기에 관한 지식과 다루는 훈련, 전술 훈련 등. 여러 훈련과 시험을 통과해야 무기를 다루는 진정한 군인이 됩니다. 진정한 군인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훈련을 계속해야 군인으로서의 능력을 유지하고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말씀을 듣고 배우며 신앙 훈련을 통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갑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와 영성 훈련을 통하여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옛말에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라는 말처럼, 여러 시험을 겪고 헤쳐가면서 믿음이 든든하게 세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12-13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라고 하시며, 야고보서 1:2-4절에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시험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베드로 서신은 사도 베드로가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들 지방은 남부를 제외한 소아시아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흩어진 나그네”(1:1)라는 표현은, 유대를 떠나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 즉 디아스포라(Diaspora)를 말합니다. 이들은 로마에 의하여 박해와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점점 박해가 심해져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진리와 종말의 소망을 재확인시키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해 중에라도 신앙을 지키며, 올바른 생활을 유지하며, 복음을 전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합니다. 특히, 본문 말씀에서는 고난과 시험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본문 13절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이들이 당하는 시험을 “불 시험”이라고 했는데, 이는 시험 중에서도 고통스러운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 시험과 같은 신앙의 연단을 위하여 다가오는 시련을 인내로 이겨낼 뿐만 아니라, 성실하게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라고 가르칩니다(19절).

 

※ 왜 그리스도인에게 시험과 고난이 주어집니까?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흑인이 백인 집의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늘 흑인 하인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사냥하기 위하여 가는 길에 주인이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늘 고난을 당하고 시험당했다고 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도 없는데.” 하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화내지 마시고 제 물음에 대답해 주세요. 주인님이 지금 저 앞에 보이는 꿩을 쏘아서,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한쪽 다리가 맞아 살겠다고 절름발이가 되어 달아난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것을 먼저 가서 잡으시겠습니까?”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론 산 놈을 따라가 잡을 것이 아니냐?” 그때 흑인이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주인님은 이미 영이 죽었으니 마귀가 잡으려고 시험할 필요가 없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니, 마귀가 잡으려고 별별 시험을 다 할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어려움과 여러 가지 시련의 시험이 주어지는 것은 내 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더 나은 기회를 위한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영의 생명을 위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와 찬양과 섬김의 일을 잘 하지 않음에도 아무 가책도 어려움이 없다면, 사탄이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영이 쇠약해져 있음을 나타냅니다. 음식을 먹지 않음에도 배고프지 않고, 물을 마시지 않아도 갈증이 없다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 14-16절을 봅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산다는 것은, 고난과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을 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사탄이 그리스도인을 시험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시험이라는 헬라어는 peirazo 라는 단어인데, 영어로 tempt 혹은 try 로 번역했습니다. 의미는 ‘시험하다’ ‘유혹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죄의 유혹’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다가오는 시험은 ‘사람이 충성된 여부, 진실한 여부, 자격이 되는지 여부 등을 알아보는 시험인 시련’과 ‘죄에 빠뜨리기 위한 시험인 유혹’의 경우가 있습니다. 죄에 빠뜨리기 위한 시험(temptation)은 사탄의 전유물입니다. 시련은 연단이라고도 하는데, 더욱 큰 은혜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허용한 것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려고, 백 세에 주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시험이나 고난이 아니라 자격 심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고난은 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징계입니다.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내게 주어진 시험과 고난은 첫째, 사탄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미혹하기 위한 시험이 있습니다. 욥에게 주어진 시험이 그러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더 나은 은혜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려고 주시는 시련(test)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시험입니다. 셋째, 자기 죄로 말미암는 고난(징계)이 있습니다.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을 비롯하여 많은 왕과 백성들이 받았던 고난이 이에 속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험과 고난이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의 경우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9:2-3절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처럼, 고난이나 시험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고난이나 시험이 닥칠 때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원인을 잘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원인에 따라서 해결하는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고난과 시험을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처럼, 다가오는 시험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에 합당한 대비를 해야 합니다. 내게 다가온 고난과 시련이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자격 심사라면, 자격을 검증하는 시험이기에 아브라함처럼 당연히 잘 견디고 이겨내야 합니다. 자동차 운전시험이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피한다면 그는 평생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겠지요. 본문 12-14절을 봅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금속을 녹이는 것과 같은 무서운 불 시험이 올 때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이겨야 합니다. 이렇게 자격을 검증하는 시련을 잘 이겨내면 신앙은 더욱 성장하게 되고, 그에 걸맞은 은혜와 복을 주십니다. 마치 신앙의 영적 승진시험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잘 이겨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창세기 22:16-18절입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반면에 사탄의 시기로 말미암아 주어진 유혹의 고난이라면, 담대하게 맞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욥기 1:8-12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이러한 고난은 믿음으로 살려고 힘쓰는 성도에게 많이 다가옵니다. 사탄이 성도를 넘어뜨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무서운 유혹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험과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가 아주 엎드러지도록 시험하기를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런 고난이 다가올 때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해야 하며 반드시 이겨내야 합니다. 이기지 못하면 영의 생명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고난은 나의 죄로 말미암는 징계성 고난입니다. 이 고난과 시험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회계하여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계시록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람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의 무서운 경고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고난이나 시험일 때는 주어진 삶에서 감사하며 신앙의 삶을 계속 이어가면 됩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왕으로 선택될 때, 사무엘 선지자가 그를 만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돌려보내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사무엘상 10:6-7절입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사울이나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도 특별하게 행동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매일의 우리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위하여, 때로는 고난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영이 깨어 있어 즐거움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문 13절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즐거워하고 기뻐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잘 살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지 순례를 하러 가던 나그네가 지나는 마차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다리가 아파서 태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부는 기꺼이 태워주었습니다. 나그네가 마부에게 물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마부는 “이 정도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리지요.” 나그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30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다 왔나요?” 그러자 마부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1시간 거리입니다.” “아니, 아까 30분 거리라고 했고, 그새 30분이 지났잖아요?” 마부가 말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마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인생길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면 조금 늦더라도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빨리 가도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때때로 어려운 시련으로 인생길이 힘들고 더디게 여겨져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면 목적지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 됩니다(19절).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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