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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삽니까?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631회 작성일 2023-05-30 20:46

***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삽니까? / 빌립보서 3:7-16

 

빌립보서 3:7-16,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 들어가는 말

 

‘화석(化石)’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수성가하여 엄청난 재벌이 된 50대의 중년사업가입니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의 주치의가 수행비서에게 한 전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의 말은 ‘사업가가 말기 암이며 잘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절망감이 온 몸을 감싸서 자포자기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일구어놓은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토록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그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다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1년 앞두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지내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겼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옛 전우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말들도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 늘 들려주면서 예수 믿으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분투와 분주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별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는 인생은 먹고 살기 위한 삶 그 이상이며, 창조자가 준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예전에도 들려드렸던 이야기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아마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갈 것이며,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들일 것입니다. 일찍이 역사 속의 철학자들은 ‘사람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라는 질문들을 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목적에 대한 인간의 고민’들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아무런 목적 없이 산다면 영혼 없는 짐승들의 생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전도서 1:2-3절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라고 스스로 묻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본문 7절에서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죽도록 고생하며 힘겹게 살아야 합니까?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초청을 받고 유럽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교회입니다. 그 곳에서 얼마의 제자를 얻었지만 그 때문에 박해가 일어나 투옥되었습니다. 그 옥중에서 간수의 온 집안을 믿게 하는 등 여러 가지 기억할만한 일들이 있는 곳이어서, 바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 후 제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올 때도 들릴 만큼 빌립보 교회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에서는 물질적인 원조를 받지 않았지만 이 교회로부터는 기꺼이 받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하여 목회자인 에바브로디도를 통하여 선물을 보냈습니다. 바울은 먼저 이 일에 대하여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교회에서 일어난 교회내의 불일치와 유대율법주의자의 위험, 잘못된 신앙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이 내용이 1:27-28절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특히 ‘복음으로 말미암는 박해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나아가라.’고 권면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은 분명히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분명한 목적을 부여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 43:21절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향하여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성도의 삶의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거나 부모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습과 환경과 심지어 우리의 모든 신체적인 조건까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하여’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현대어성경) “선생님, 왜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맹인이 되었습니까? 그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이는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계획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사람은 고귀하고 위대한 본래의 목적을 잃어갔습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인생은 허무함과 절망감으로 고뇌했으며, 그 허전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하여 육신의 욕망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쾌락을 쫓아다니기도 하고, 부귀영화를 추구하고, 자식에 대한 희망을 쫓기도 합니다. 온갖 세상의 것들로 마음의 우상을 삼아 자신의 절망적이고 허무한 삶을 보상받아 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세상을 의지하는 삶을 ‘모두 해롭게 여기며, 배설물로 여긴다.’고 표현했습니다. 왜 세상을 따라가는 삶을 배설물이라고 했겠습니까? 요한일서 2:15-17절을 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 때에 잠깐 사용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배설물이고 헛된 것입니다. 만일 내세가 없다면 이 세상의 것들이 최고의 것들이겠지요.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의 것들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잠깐 있을 헛된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떤 목적으로 살아야 합니까? 세상의 지나간 인류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목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아니면 잘못된 목적을 향해 방황하다가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육체의 조건, 어떤 이들은 태어난 환경, 어떤 이들은 사회적인 지위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포자기 하고, 엉뚱한 욕망으로 자신을 채우며 소중한 생명을 무의미하게 보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철저하신 계획 아래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육체적인 조건과 삶의 모든 환경과 여건에 대한 불평과 원망은 그것을 계획하신 하나님께 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139:15-16절을 봅시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공동번역, “은밀한 곳에서 내가 만들어질 때, 깊은 땅 속에서 내가 꾸며질 때, 뼈 마디마디 당신께 숨겨진 것 하나도 없었습니다. 형상이 생기기 전부터 당신 눈은 보고 계셨으며, 그 됨됨이를 모두 당신 책에 기록하셨고, 나의 나날은 그 단 하루가 시작하기도 전에 하루하루가 기록되고 정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이 삶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방금 읽은 시편의 말씀 속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즉 나의 출생과 출생의 환경과 인종과 나라와 지역과 육체적인 조건과 매일의 삶과 죽음까지 알고 계시며, 그 길을 계획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고 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상황과 환경보다는 다른 사람의 상황과 환경이 더 좋아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동경하며 억지로 가지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과정에서 욕망이 발동하고 죄를 짓게 되며, 자신의 길이 아닌 엉뚱한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을 다 잘하고,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따라서 각 사람에게 재능을 주시고 물질을 주시고 환경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주어진 환경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하신 뜻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 10-14절입니다.(현대어성경)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내가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다만 나는 그리스도께서 왜 나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내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아직 나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는 데 내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과거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목적지까지 달려서 상을 타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상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 일을 바탕으로 하여 내리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 상을 주시려고 나를 하늘로 부르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의 이 표현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5-16절에서 ‘혹시 내가 이 말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면 이것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신 것이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설령 우리의 생각이 틀렸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바로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환경이 주어져 있습니까? 육체의 생김새나 건강에 대하여 불만입니까?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장에 대하여 불만이 있습니까? 어려운 생활이 불만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은 그 환경 속에 있습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노아도 욥도 다윗도 다니엘도 바울도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그것이 이룰 때까지 온갖 고통과 어려운 시험과 고난의 환경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마침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 고난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한다고 우리의 환경이 바뀝니까? 우리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희거나 검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는 빌립보교회에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야고보서 1: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5:11절에서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도 “인내는 쓰다. 그 열매는 달다.”고 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라고 고백한 시편기자처럼,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어진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해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달란트 비유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잠시 살다 가는 세상의 일에 마음 상해하거나 울고 웃지 말고, 하늘의 확실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영원한 보람을 위해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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