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설교문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06회 작성일 2023-05-07 20:52

***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 로마서 7:14-25

 

로마서 7:14-25,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농부가 몇 마리의 돼지를 몰고 사과나무 옆을 지나다가, 돼지 한 마리를 들더니 사과를 따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한 마리씩 들어 올려 사과를 따 먹게 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 모습을 한참 보고 있다가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돼지를 들고 따 먹게 하는 것보다 나무를 흔들어서 사과를 떨어뜨리면, 힘도 덜 들고 시간도 절약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돼지를 들고 있던 농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시간 절약이라고요? 아니 지금 생각하고 말하는 거요? 돼지가 시간을 절약해서 뭐 하게? 돼지가 힘 아껴서 어따 쓸라고?” 지나가던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지나가던 사람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구경하던 사람의 생각 중심에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농부가 너무 힘들어 보이고 시간도 많이 드는 것을 보다 못해서 충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의 생각 중심에는 돼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각이 다르면 일을 보는 관점이 전혀 달라집니다. 자녀에게 마음을 두면 모든 일의 중심에 자녀가 있게 되고, 돈에 마음을 두면 모든 일은 돈은 모으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어떤 것에 더 마음이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한 곳에 고정이 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지만, 사람들은 선과 악을 따지기보다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과 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8-19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그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정작 생활에서는 오히려 악을 행한다고 고민을 토로합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고민이 지금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하여 지혜와 분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 본문 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봅시다.

 

본문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선과 악 사이의 갈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갈등은 크게 두 가지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직 거듭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삶의 갈등입니다. 다른 하나는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성화(聖化) 되는 과정에서 아직 불완전한 삶으로 말미암는 갈등입니다. 본문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후자가 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삶으로 말미암아 영적인 갈등을 겪는 것입니다. 본문 22-23절입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 말씀에서 “속사람”이라는 표현은 거듭난 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데도 이러한 영적 갈등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나타내겠습니까? 그 이유는 다음 장인 8장에서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해야 한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하여, 본문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5절에서 갈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등을 끝내게 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말씀이 8장에서 전개됩니다. 8: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렇다면 이렇게 죄에서 해방되어 영적인 자유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해답은 8장에서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8:13-14절을 봅시다. “너희가 육체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하나님을 닮은 영의 삶으로 육체의 욕망을 따르는 행실을 분리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마음을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라는 물음에는 로마서 8장에서의 답변처럼, 자신의 영적인 추구와 육체적인 현실을 분명하게 알고 분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분별하려면 우리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주관자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하나님은 선하시며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사람이 사는 이 땅의 권세를 가지고 주관하는 존재가 악한 영들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시적으로 사람이 사는 땅과 공중의 권세를 사탄의 세력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 4:5-7절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그리고 에베소서 2:2절에서는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고 하시며, 6:12절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한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탄과 악한 영들 이 세상의 영광과 쾌락과 부귀영화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욕망과 더러운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며 그것을 믿게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분노와 염려와 슬픈 감정들을 집어넣습니다. 사람이 악한 영들이 주는 감정에 사로잡히면 분노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염려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속에 침투한 악한 영들에 의한 죄가 그 원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 17-18절에서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라고 고백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자기 스스로가 혹은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하는 줄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깨끗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했으며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창세기 3:7-8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이것이 죄의 시작이며 사탄의 속임으로 인한 더럽고 악한 감정들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과 악한 영들이 주는 악하고 더러운 감정들을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악한 영이 내 삶을 더럽게 하고, 나를 통하여 악한 일을 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시험해보려고 한 가지 일을 계획했습니다. 도성에 사는 모든 백성에게 꽃씨를 나누어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사람에게 후한 상을 주겠다.’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사람들은 정성껏 화분에 씨를 심고 가꾸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싹조차 나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꽃씨를 구해서 키우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 아름다운 꽃씨를 찾아서 심고 가꾸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꽃이 필 무렵 왕은 ‘가꾼 꽃을 각자의 집 앞에 두어서 왕이 지나갈 때 볼 수 있도록 하라.’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드디어 왕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날, 거리는 집집마다 내놓은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한 집 앞에는 흙만 가득 들어 있는 빈 화분이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아이가 훌쩍이고 있었습니다. 왕은 그 집 앞에 멈추어서 아이에게 ‘왜 꽃이 없으며, 왜 울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른 집은 모두 아름답게 꽃이 피었는데, 내 꽃씨는 싹이 나질 않아요! 그래서 슬퍼요.”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아이에게 상금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백성들의 정직한 마음을 시험하려고 삶은 꽃씨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꽃을 ‘요화(妖花)’라고 합니다. 도깨비 꽃 즉 거짓된 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환경을 만나면 대부분은 ‘다른 것을 심어서라도 꽃을 피우겠다.’라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런 거짓된 유혹뿐만 아니라 시기심, 더러운 말이나 생각, 난폭성 등. 자신이 당면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려고 생각하는 순간에 악한 영들이 침투하게 됩니다. 이러한 순간에 악한 영들의 활동을 분별하려면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즉 주님의 자녀로서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거짓과 폭력, 음란함과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며, 진실한 사랑과 성실함과 부드러움을 싫어합니다. 예수께서 요한복음 8:44절에서 악한 영들의 습성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그래서 에베소서 4:25-3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새사람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를 가르칩니다. 25-27절을 봅시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그리고 31-32절입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하십니다. 즉 악한 영들이 부추기는 악한 마음을 잘 분별하여 거부하고, 하나님의 선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바친 제물을 받지 않으시자, 가인이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4:6-7절입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삶에는 항상 선과 악이 붙어 있음을 깨우치시며, 악을 따르지 말고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악, 즉 죄가 차지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의 자리 즉 영은 선이나 악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 마음은 빈자리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누가복음 11:24-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라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를 자기 수하에 두려고 끊임없이 미혹하고 도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면, 내 마음의 자리에 하나님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영, 즉 죄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는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 영이 잠들게 합니다. 잠들면 안 됩니다. 말씀으로 나를 깨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내 생활이 철저하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잠깐만 방심해도 악한 영이 나를 미혹하고 침범합니다. 이렇게 내 삶이 선과 악을 잘 분별하여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능력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Total 1,419건 8 페이지 RSS
설교모음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1314 설교문
표현하는 고백 - 아멘의 은혜
  • 늘푸른
  • 08-21
  • 1582
1313 설교문
많은 결실을 원하십니까?
  • 늘푸른
  • 08-06
  • 1219
1312 설교문
하나님이 마음에 두시는 사람
  • 늘푸른
  • 07-30
  • 1341
1311 설교문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 늘푸른
  • 07-23
  • 1342
1310 설교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 늘푸른
  • 07-16
  • 1296
1309 설교문
나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
  • 늘푸른
  • 07-11
  • 1737
1308 설교문
시험과 고난을 대하는 자세
  • 늘푸른
  • 07-02
  • 1434
1307 설교문
내가 있어야 할 자리
  • 늘푸른
  • 06-18
  • 1782
1306 설교문
거듭남의 비밀
  • 늘푸른
  • 06-11
  • 1556
1305 설교문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습니다.
  • 늘푸른
  • 06-05
  • 1520
1304 설교문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삽니까?
  • 늘푸른
  • 05-30
  • 1616
1303 설교문
지금은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 늘푸른
  • 05-30
  • 1411
1302 설교문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 늘푸른
  • 05-22
  • 1384
1301 설교문
내 마음에 근심이 있을 때
  • 늘푸른
  • 05-14
  • 1483
설교문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
  • 늘푸른
  • 05-07
  • 1707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