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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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바라보자.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785회 작성일 2023-04-30 20:50

*** 예수를 바라보자. / 히브리스 12:1-8

 

히브리서 12:1-8,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 들어가는 말

 

오늘은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근본 중의 근본을 재조명하려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당연하면서도 당연해지지 않는 주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잘 생각하고, 면밀하게 계산해보고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5-33절에는 ‘제자가 되는 길’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같은 의미가 있는 두 비유가 나옵니다. ‘쌍동이 비유’라고 부르는 ‘망대를 세우는 사람’과 ‘출전하는 왕’에 관한 비유입니다. ‘망대를 세우려고 계획하는 사람은 당연히 건축 비용을 계산해보고 시작해야 한다.’라는 것과 ‘전쟁을 하기 위해 출전하는 왕이 대적을 이길 승산이 있는지를 가늠하고 시작해야 한다.’라는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사람은 먼저 ‘내가 끝까지 다를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신앙의 길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여러분은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기를 결심하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 힘든 고난을 겪으면서도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히브리서는 로마 황제인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있었던 65년 이후에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내용이 신약의 다른 서신들과는 많이 달라 독특한 문제들을 다룹니다. 내용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배교(背敎)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온전하게 하심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본이 되심을 말씀합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지켜야 할 큰 의무에 관하여 말합니다. 이 의무는 예비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와 온전해지기 위하여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예비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는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이란, 육체와 이 세상의 삶과 세상에 관한 과도한 관심과 사랑을 뜻합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는 ‘우리가 당면한 환경, 우리의 관습, 매일의 만남을 통하여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온전해지기 위하여 수행해야 할 의무는 ‘인내하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경주는 우리보다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이 본을 보인 그 경주입니다. 즉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우리를 부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달리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느냐 하면, 주님이 우리의 목표이자, 우리를 격려하시고 끝까지 달리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길은 큰 고난을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서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십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고통을 많이 당하였고, 고난도 많았지만, 아직은 그렇게 심한 편이 아니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도들을 더욱 강하게 하시려고 시련을 통하여 더 큰 고난을 대비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면한 고난에 찌들지 말고, 고난을 통하여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깨달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 예수를 바라본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출발한 고속버스가 잠시 휴식을 위하여 휴게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버스 기사는 졸고 있는 승객들에게 안내 방송을 했습니다.

“잠시 후 이 차는 여러분의 목적지인 부산을 앞두고, 휴게소에서 15분간 쉬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버스의 번호를 잘 기억하셔서 승차하시기 바랍니다.”

기사의 안내 방송을 들은 승객들이 모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부산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광주로 갈 차가 왜 부산으로 가요?” “여기가 어디예요?” “나는 광주 가는 사람인데?”

승객들의 소동에 당황한 고속버스 기사가 휴게소에서 내려 차 앞에 붙은 행선지 표지를 보았습니다. 그 표지에는 ‘광주행’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황한 기사가 말했습니다.

"이런 내가 차를 잘못 탔네!”

 

정말 황당한 상황입니다. 이 기사는 서울과 부산 노선을 운행해야 했기 때문에 분명히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차를 잘 못 탔습니다. 이런 것을 영적으로 말하면, 죄입니다. 죄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 과녁을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히 자신의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임을 알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행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황당한 기사처럼 방향을 잘못 정하여 세상적인 경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바른 목적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5-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곳이 있습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그리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이 두 말씀은 모두 바른 방향과 바른 목적을 말씀합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결승점을 잘 못 알고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살며 신앙생활을 하는 방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하는 영적인 믿음의 경주입니다. 이 사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 싸워야 하는 길입니다. 인생의 모든 일은 ‘결과를 얻을 때까지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옛말에도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인생의 삶도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해버리고, 일도, 직장도, 공부도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것을 포기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여깁니다. 육신의 삶은 영원한 삶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6절에서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길은 주님이 먼저 본을 보이셨으며, 우리는 인내하며 끊임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 삶의 모든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해야 합니다.

 

※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삶을 방향을 주님께로 향했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삶이 이룰 때까지 지키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양보하고 빼앗긴다고 할지라도 영의 생명은 지켜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좀 세속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피가 터지도록 싸워서라도 영원한 생명을 지켜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면서 바늘만한 틈만이라도 생기면 눈 깜박할 사이에 우리 영 안으로 스며들어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라고 하십니다. 조금 힘들고 어렵다고 세상을 두리번거리면 안 됩니다. 이렇게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나아가려면 세상의 무거운 죄의 짐들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죄의 짐을 벗어버린다는 것은, 세상을 향하던 관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짐을 벗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스가랴 4:6절에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우리는 작은 습관 하나 바꾸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내 육체의 습관을 벗겨내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며,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로마서 8:13-14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 말씀은 저 자신도 어떤 일을 행할 때마다 생각하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영의 생명을 지킬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날마다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어떤 중년의 부인이 30년 만에 수영장에 왔습니다. 이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웠지만, 아직도 제대로 물에 뜨지를 못했습니다. 부인은 소녀 시절에 수영을 배운 이후 30년 동안 물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늘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물에 뜨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부인을 수영 코치가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과 싸우지 말고, 물이 당신을 받쳐 줄 것이라고 믿고 물에 몸을 맡기세요.” 그러면서 수영 코치는 그녀가 ‘가라앉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품지 않도록, 손으로 배를 받쳐주었습니다. 이 부인은 코치의 말대로, 몸에서 힘을 빼고 편안하게 물에 몸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정말 몸이 가라앉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수영을 잘하십니까?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의 방향을 지키며, 끝까지 가려면 이렇게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어려운 삶을 자기 힘으로 헤쳐가려고 애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질 뿐입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야 할 사람이 세상을 의지하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경각심을 일깨우십니다. 잠언을 인용한 구절인 본문 5-6절입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이렇게 징계로 일깨우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죽음의 길로 가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고, 도중에 멈추려고 하면 징계로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거나 육체의 욕망을 따라가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말씀과 기도로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이 길은 세상적으로는 외롭고 힘든 길입니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절제하고, 희생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이 일은 눈물 없이는 못 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길을 좁은 문으로 나아가는 좁은 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평안하게 갈 수 있는 넓은 길을 택합니다. 좁은 길에는 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의 목적지에 이르는 그 날까지 끝까지 주님 바라보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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