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지금은 ...?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717회 작성일 2003-10-18 22:18
♡♥♡ 지금은 ... ? / 계22:10-15

*** 들어가는 말

본문은 계시록의 일곱 복 중에 마지막 일곱 번째의 복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한글 킹 제임스 역본)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의미를 알고 나면 지금의 세상을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이고 성도로서의 자신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말하기를 ‘전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엔가 홀린 듯이 쾌락을 쫓아다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아직 확실하지도 않는 내세에 대한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이야기쯤으로 여깁니다. 교인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교회에 소속은 되어 있고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여전히 세상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인 1945년8월6일08시15분, 미 공군 ‘폴 티베츠’ 대령의 지휘 하에 B-29폭격기 ‘에노라게이’호는 히로시마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히로시마 원폭투하의 결과로 7만8000명이 사망하고, 1만 명이 실종 되었으며, 3만7000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보다 더 큰 재앙은 방사선의 후유증입니다. 원자폭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방사능으로 인하여 죽어갔으며,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건물 9만여 채 가운데 6만 2천 채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45년8월9일11시20분, ‘나가사끼’에 제2의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시가지 45%를 날려버렸습니다. 희생자 수는 7만3000명.
두 개의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습니다. 한 마디로 두 도시는 지구상에서 날라 가버렸습니다. 폭발되는 순간 도시 상공에 형성된 불덩어리 속의 열이 무려 섭씨 3만 도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큰 재앙이 이르기 며칠 전에 이미 도피하라는 경고가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군 비행 편대가 경고문을 담은 삐라를 뿌렸던 것입니다. 경고문의 내용은
“히로시마 시민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오전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고를 믿고 도피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증언한 사람들이 바로 그 경고를 믿고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로 심판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창세기19:14절에서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증언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세에 일어날 일을 이 사실에 비유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7:27-29절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저나 여러분이 혹시 지금 이러한 시점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어떤 시대인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 지금은 말씀이 열려진 때입니다.

본문10절을 봅시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씀의 의미가 열려져 있음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깨달을 수 있도록 열어놓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열어놓았습니까? 이유는 마지막 심판의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읽고, 깨달아서 생명을 얻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들이 마지막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 성경책이며, 설교들이며, 이해하기 쉽도록 해석해 둔 주해서들과 생활 속에서 체험한 간증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눈감고 더듬어서도 찾을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이 길은 주님이 열어두셨습니다. 요한복음10:9절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찾아 헤매어도 찾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아모스8:11절을 보십시오.

(현대어 성경)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그날이 오고 있다! 그때에는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밥이 없어서 당하는 굶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요, 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당하는 기근이다.”

여기에서의 “그 날”이란,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형벌의 날’을 말합니다. 즉 형벌의 날의 고통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는 말씀을 거두신다.’는 것입니다. 이 고통은 영적인 고통입니다. 이어지는 12절에서 이 사실을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구약 시대의 말기인 ‘말라기’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마지막 때에 다시 이러한 고통의 때가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준비입니다.

이런 때가 오기 전에, 지금 말씀이 열려져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길이 열려져 있는 때에 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계속되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2. 지금은 구별의 때입니다.

본문11절 말씀을 봅시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한글 킹 제임스 역본)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에 있게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러움에 있게 하라. 반면에 의로운 자도 그대로 의로움에 있게 하고, 거룩한 자도 그대로 거룩함에 있게 하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별’, ‘분리’를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열려져 있는 두 길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향하는 길도 열려있으며,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생명의 길도 열려있습니다. 모든 인생들은 이 두 길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으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분리되고 구별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버려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형벌의 곳인 지옥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2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고 하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쾌락을 따라간다고 당장 벼락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방법과 요령으로 사는 사람들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다윗 시대의 찬양 대장이었던 ‘아삽’은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에 대하여 이렇게 탄식합니다. 시편73:2-5절(한글 킹 제임스 역)입니다. “그러나 나로 말하면, 내 발은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번영함을 보았을 때, 어리석은 자를 시기하였음이니이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들의 힘은 강건하며, 다른 사람들처럼 고난에 처하지도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같이 재앙을 당하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을 행하는 일에 더욱 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쓰며, 성실하게 살고 봉사한다할지라도 당장 모든 일이 형통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건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고난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도중에 낙심하게 되고 그만 세상으로 돌아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당연합니다. 디모데후서3:12절에서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셨고, 로마서8:17절(한글 킹 제임스 역)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알곡을 거두어들이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알곡이 되고 싶으면서도 행동은 가라지처럼 한다면 그 결과는 아궁이에 던져지는 비참함일 것입니다.

3. 지금은 두루마기를 빨아야 할 때입니다.

본문14절입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한글 킹 제임스 역)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입니다. 계시록19:8절을 봅시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십니다. 즉 지금은 성도가 자신의 행동의 정리할 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를 살피고 정리해야 합니다. 은혜의 자리, 생명의 자리로 옮겨야 할 때입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 위함’입니다. 만일 이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성 밖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배를 마쳤을 때에 성도 중의 한 여인이 다가오더니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일 목사님이 내일 밤 12시에 죽게 되어 있다면, 남은 시간에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 웨슬리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더니,
“여기에 적혀있는 원래의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삶이 준비된 사람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자신과 확신이 있습니까?

이렇게 준비된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준비되지 못했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솝우화 중에 “이빨 가는 산돼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봄날, 여우가 굴에서 나와 숲 속 길을 혼자 거닐고 무엇인가 가는 듯한 소리를 듣고는 소리를 따라 바위 밑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산돼지 한 마리가 바위에 자신의 이빨을 갈고 있었습니다. 산돼지는 여우가 오는 것도 본체만체 계속 이빨만 갈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이렇게 좋은 봄날 놀지 않고 이빨만 가느냐?”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산돼지는 들은 체도 않고 계속 이빨만 갈아서 이빨이 날카롭게 빛이 났습니다.
여우는 다시 “왜 놀지 않고 이빨만 가느냐?”고 잔소리를 하자 산돼지는 귀찮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여우, 자네는 내가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줄 아나?”
“그야 쓸데 없는 일이야 아니지만, 이런 평화로운 날 무기를 갈고 있는 건 우습단 말일세. 그런 건 뒷날로 미루고 조용한 날에 낮잠을 자거나 나처럼 소풍이라도 하는 게 좋지 않느냐 말이야.”
“자네도 좀 생각을 해 보란 말야. 그래 내가 사냥꾼에게 쫓길 때나 사자와 싸우게 되었을 때 이빨을 갈아야 하겠나? 그러다가는 내 목숨은 사냥꾼이나 사자의 것이지 내 것은 안 될 걸세. 그저 이 조용한 날 이빨을 갈아 두어야 위험한 날에 쓸 수가 있다는 말일세.”

준비는 시간이 있고, 여유가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지금은 ‘말씀이 열려 있는 때’이며, ‘구별하는 때’이며, ‘행동을 정리할 때’임을 기억합시다. 그리하여 준비된 사람으로서 확신과 담대한 생활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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