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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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10-04 16:33
♡♥♡ 지금 / 고후6:1-2
*** 들어가는 말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생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곧 시간이며 기회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기회는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며, 지금 곧 현재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지나간 과거는 소명된 영역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의 영역입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기회를 최선의 삶으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에 어떤 것보다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이 있지요? ‘아침저녁으로 뜯어 고친다.’는 말로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교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염소를 키워서 파는 염소장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자기 처가 갑자기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다.’면서 심방이 아닌 왕진을 급히 와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거절할 수 없어 서 따라갔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위급한 것 같아서 잠시 기도하고는 교회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진찰 결과, 복막염이 터져 큰일 날 뻔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협조로 위기를 넘기고 치료를 잘 받아서 퇴원했습니다. 건강을 찾은 부인은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다.”며 두어 달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차츰 교회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예배에 빠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부인은 “목사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그런데 요즈음 너무 바빠서요. 염소장사는 요즈음이 한철이거든요. 목사님, 한가하면 열심히 믿어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간사함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되어질 일도 다 모르면서 ‘내일’을 장담합니다. 야고보서4:13-14절(한글 킹 제임스)에서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느 성읍으로 가서 거기서 일 년쯤 지내며 사고팔아 수익을 올리리라. 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성실한 오늘이 없이는 내일의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믿음의 기름과 등불을 오늘,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의 삶인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내일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은 오늘, 매 순간의 성실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만약 구원받았다고 자만하며 지금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거나 세상일로 채우게 되면 영원한 삶의 즐거움은 보장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비유로서 이 사실을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24:45-51절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성도가 아직 확실하지도 않는 내일의 영원한 생명을 장담하면서 지금의 시간과 기회를 세상적인 소유와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구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만일 ‘오늘만 날이냐? 내일도 날이고 모레도 있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육신의 삶에 매어 있게 되면, 돌이킬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삶의 종말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3:11-14절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습성을 비웃는 씁쓸한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마귀들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예수를 믿어서 자신들의 지배를 벗어나고 있자 비상 총회를 열었습니다. 그 날의 주제는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보낼 작전 회의’였습니다.
한 마귀가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무신론자의 영이 되어서 ‘세상에 신은 없다.’라고 선전하면 될 것이다.” 그러자 다른 마귀가 일어나더니, “틀린 말이다. 사람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다가도 무슨 환난을 만나서 급하게 되면, 바다 가운데서도 회개하고 병상에서도 회개하고 실패에서도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임종시에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마니 그도 소용이 없는 말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지금 말한 것보다 훨씬 묘책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 엄한 분이고, 무서운 신이라서 인간으로는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다.”라고 생각하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마귀가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간다.’는 성경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 때에 한 편 구석에서 듣고만 있던 늙은 마귀가 회장을 부르더니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넣는 유일한 묘책이 있는데, 무엇이 그리 어려우냐?”고 하면서 “다름 아니라 ‘내일, 다음, 차차’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이 말을 제일 좋아하고, 안심하게 하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이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내일’로 미루고, ‘다음에 차차 하지’라고 미룹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올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로 미루고, 소중한 오늘의 시간과 기회를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거나, 별 가치도 없는 일로 낭비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노루 친 몽둥이 삼 년을 우린다.”고 했습니다. 즉 지나간 일들을 두고두고 되씹는다는 뜻이지요.
과거에 받은 은혜, 자신의 성공담, 지나간 일들을 자랑하느라, 또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로 한숨짓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는 넘어진 자리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울고 탄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툭툭 털고 지나가버리면 될 텐데 말입니다. 이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오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지나간 일들은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즐길 것 다 즐기고,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내 영의 삶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는 것도 지갑을 여는 것도 벌벌 떨다가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선뜻 시간을 할애하고 선선히 지갑을 여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은 하나님께 헌신하기가 좀 힘들고, 앞으로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하십니다. 이는 은혜를 입는 것도 시간과 기회가 있고, 구원을 얻는 것도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때나,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입니다. 지금 합시다. 사랑도 지금하고, 헌신도 지금하고, 열심도 지금 냅시다. 그래서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는 복된 생애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생명’이라고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곧 시간이며 기회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기회는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며, 지금 곧 현재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지나간 과거는 소명된 영역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불확실의 영역입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지금’이라는 시간과 기회를 최선의 삶으로 채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에 어떤 것보다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조변석개(朝變夕改)라는 말이 있지요? ‘아침저녁으로 뜯어 고친다.’는 말로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교회 가까운 곳에 살면서 염소를 키워서 파는 염소장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자기 처가 갑자기 쓰러져 생명이 위독하다.’면서 심방이 아닌 왕진을 급히 와달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거절할 수 없어 서 따라갔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위급한 것 같아서 잠시 기도하고는 교회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진찰 결과, 복막염이 터져 큰일 날 뻔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협조로 위기를 넘기고 치료를 잘 받아서 퇴원했습니다. 건강을 찾은 부인은 “은혜를 평생 잊을 수 없다.”며 두어 달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차츰 교회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예배에 빠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부인은 “목사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그런데 요즈음 너무 바빠서요. 염소장사는 요즈음이 한철이거든요. 목사님, 한가하면 열심히 믿어 드릴게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간사함입니다. 사람들은 오늘 되어질 일도 다 모르면서 ‘내일’을 장담합니다. 야고보서4:13-14절(한글 킹 제임스)에서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느 성읍으로 가서 거기서 일 년쯤 지내며 사고팔아 수익을 올리리라. 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내일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하나니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성실한 오늘이 없이는 내일의 보장도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믿음의 기름과 등불을 오늘,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의 삶인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여전히 불확실한 내일입니다. 불확실한 내일은 오늘, 매 순간의 성실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만약 구원받았다고 자만하며 지금의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거나 세상일로 채우게 되면 영원한 삶의 즐거움은 보장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비유로서 이 사실을 경고하십니다. 마태복음24:45-51절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것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성도가 아직 확실하지도 않는 내일의 영원한 생명을 장담하면서 지금의 시간과 기회를 세상적인 소유와 즐거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구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만일 ‘오늘만 날이냐? 내일도 날이고 모레도 있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육신의 삶에 매어 있게 되면, 돌이킬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삶의 종말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3:11-14절에서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사람들의 잘못된 습성을 비웃는 씁쓸한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마귀들 세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예수를 믿어서 자신들의 지배를 벗어나고 있자 비상 총회를 열었습니다. 그 날의 주제는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보낼 작전 회의’였습니다.
한 마귀가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무신론자의 영이 되어서 ‘세상에 신은 없다.’라고 선전하면 될 것이다.” 그러자 다른 마귀가 일어나더니, “틀린 말이다. 사람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다가도 무슨 환난을 만나서 급하게 되면, 바다 가운데서도 회개하고 병상에서도 회개하고 실패에서도 회개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임종시에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마니 그도 소용이 없는 말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다른 마귀가 일어나서, “지금 말한 것보다 훨씬 묘책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너무 엄한 분이고, 무서운 신이라서 인간으로는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다.”라고 생각하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마귀가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 ‘예수의 보혈 공로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까지 나간다.’는 성경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그 때에 한 편 구석에서 듣고만 있던 늙은 마귀가 회장을 부르더니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넣는 유일한 묘책이 있는데, 무엇이 그리 어려우냐?”고 하면서 “다름 아니라 ‘내일, 다음, 차차’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사람들은 이 말을 제일 좋아하고, 안심하게 하는 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방법이 만장일치로 가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내일’로 미루고, ‘다음에 차차 하지’라고 미룹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입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올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내일로 미루고, 소중한 오늘의 시간과 기회를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거나, 별 가치도 없는 일로 낭비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노루 친 몽둥이 삼 년을 우린다.”고 했습니다. 즉 지나간 일들을 두고두고 되씹는다는 뜻이지요.
과거에 받은 은혜, 자신의 성공담, 지나간 일들을 자랑하느라, 또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일로 한숨짓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는 넘어진 자리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울고 탄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툭툭 털고 지나가버리면 될 텐데 말입니다. 이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오늘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지나간 일들은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내 할 일 다 하고, 즐길 것 다 즐기고, 쓸 것 다 쓰고 남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내 영의 삶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는 것도 지갑을 여는 것도 벌벌 떨다가도,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선뜻 시간을 할애하고 선선히 지갑을 여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은 하나님께 헌신하기가 좀 힘들고, 앞으로 좀 더 여유가 생기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고 하십니다. 이는 은혜를 입는 것도 시간과 기회가 있고, 구원을 얻는 것도 시간과 기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 때나,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은혜를 받을 수 있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입니다. 지금 합시다. 사랑도 지금하고, 헌신도 지금하고, 열심도 지금 냅시다. 그래서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는 복된 생애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