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삶의 한가운데서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378회 작성일 2003-10-04 16:31
♡♥♡ 삶의 한가운데서 / 요2:1-11

*** 들어가는 말

청년부 성경공부 중에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성품’이란 ‘성질과 품성’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자비하심, 인자하심, 선하심, 공의로우심, 사랑이 많으심 등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속성’이란 ‘사물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불변하심, 거룩하심 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대학생인 어느 청년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아픔이나 삶의 고통을 모르실 것인데, 어떻게 사람들의 고통이나 삶의 어려움 같은 것을 공감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그러면서 청년은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처지를 아시고 도우신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청년은 성경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아니면 구약에서 나타나는 전쟁과 피로 얼룩진 엄하시고 무섭고 두려우신 하나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도 어느 이단은 ‘구약의 하나님은 전쟁과 보복의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약성경 중의 일부만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약이나 신약에서나 동일하십니다. 다만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하여 죄의 대가를 지불하신 사랑의 이야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오히려 신약에서의 새 계명인 ‘사랑의 법’이 더 까다롭고 힘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바로 이 문제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즉‘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생활 가운데 함께하시면서 아픔과 고통, 기쁨과 즐거움까지도 함께 하시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34세에 ‘낭창’이라는 질병으로 죽은 ‘에디스 류스’라는 젊은 부인의 신앙고백 중 한 부분입니다. 이 글은 죽음 직전에 기록한 것입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우리의 십자가조차도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기쁨이다. 기쁨은 우리의 상황이 어떻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관여하신다는 것을 알고, 영혼의 깊은 평안함을 맛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할 때 기뻐하시며, 우리가 울 때 함께 우신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궁극적인 기쁨이 된다. 그것은 죽음이나 우울함, 의심, 그리고 낭창의 화염으로도 약화시킬 수 없는 강한 것이다.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겠는가? 나는 그 가능성에 대해 탄복하며 전율한다.”

이 부인의 고백이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히브리서4:15절을 봅시다. 현대어성경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가 당하는 이 시련을 몸소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단 한 번도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신 일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경험한 어떤 어려움과 고통과 고난보다 더욱 극심한 고난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으며, 갓난아기 때부터 생명을 노리는 사람들을 피하여 도망자 생활을 하셨고, 타향인 가난하고 작은 어촌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장남으로서 30세까지 성실하게 일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생애 3년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위태하셨고, 33년의 생애를 마감하는 자리는 고난과 멸시의 극치인 십자가였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런 어려움과 고통과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까? 그뿐입니까?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를 이렇게 죽음으로 몰아넣으시기까지 하시면서 인간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신분을 회복시키시려고 하셨습니다. 그 아픔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요한일서4:9-10절(한글 킹 제임스 역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그를 통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 사랑이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을 우리 죄들을 위하여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삶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은 많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이적인 본문의 내용을 통하여 살펴봅시다.

먼저, 본문의 내용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순탄한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서 난감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전셋집을 갑자기 비워야 할 때, 가정의 불화, 친구간의 오해도 그러하고,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많은 손님들이 들이 닥쳤을 때나, 손님들이 많이 올 줄 알고 음식을 많이 장만했는데 별로 없을 때도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이적인 ‘가나의 혼인잔치’도 이런 난감한 일에 속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예수님의 가정과 친분이 있는 집으로 보이는 갈릴리 가나의 어느 가정에서 혼인잔치가 열렸습니다. 물론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일주일 간이나 계속되는 잔치가 무르익을 즈음에 포도주가 바닥이 났습니다.

“포도주가 바닥난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식사, 특히 잔칫상에는 포도주가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수질이 좋지 않아서 물 대신으로 마시기도 했지만, 주로 양고기를 먹기 때문에 포도주는 반드시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포도주가 바닥이 났습니다. 손님이 예상보다 많이 와서 일찍 바닥이 났는지, 아니면 잔치음식을 얼마나 할지 대중을 잘못해서 너무 모자랐는지는 내용에 없으니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포도주를 구하지 못하면 혼인잔치는 도중에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가문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나서서 예수님께 문제 해결을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자신을 나타낼 시기가 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관여할 일도 아니라고 하시며 사양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잔칫집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지시대로만 하라고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책망하시거나 다시 거절하지 않으시고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이적’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 이적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 인생의 삶의 한가운데 주님이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멀리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 우리를 바라만 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 계시면서 그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죄악으로 만연한 소돔과 고모라 성을 살피시기 위하여 친히 강림하셨으며, 얍복 강가에서 인생의 위기 앞에서 고민하며 부르짖는 야곱을 만나주셨습니다. 인생의 그늘진 곳에서 질병과 가난과 소외됨으로 고통 하는 사람들을 찾아주시고, 병을 고치시며, 먹이시고, 위로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포도주가 다하여 낭패를 당한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계셨습니다. 그들이 아직 주님의 능력을 알지 못했으며,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잔칫집 주인이 예수님의 능력만 알았던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지금 자신의 집에 계신다는 사실만 알았던들 낭패로 인하여 고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11:4-5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어보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전해 들으시고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 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례 요한도 잘 아는 말씀으로 이사야61:1절에서 ‘메시아가 오셔서 하실 일을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내가 곧 메시아이니 다른 사람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대답입니다. 세례요한조차 생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주님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이처럼 깨닫지 못하거나 잘 알지 못할 때는 세례요한처럼 의심이 일어나며, 사는 것이 고통스럽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주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아플 때에는 함께 아파하시고, 기쁠 때에는 함께 기뻐하시고, 삶의 어려움으로 고통하며 지쳐 있을 때에는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도우시며, 죄악에 빠져 있을 때에는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면서 돌아서도록 깨우치십니다.

2. 우리 삶의 한가운데 계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나의 잔칫집은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아니었으면 능력의 주님이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낭패를 당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이치에 어긋나는, 그래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순종하라.’는 특별한 당부입니다.

마가복음5장에는 병들어 죽어가는 딸을 둔 회당장이 예수님께 와서 딸의 병을 고처 달라고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던 도중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라고 회당장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는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예수님께서 살리신다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믿어지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길입니다. 즉 나의 삶의 한가운데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절대 의지해야 합니다.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 때에 성공적인 무역업자 한 사람이 중요한 대사직을 임명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큰 명예를 베푼 여왕에게 감사했지만, 이 직무를 면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몇 년 동안 외국에서 대사직을 하는 동안 자기의 사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고,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여왕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외국에 나가 나의 일을 돌보시오. 그 동안 내가 그대의 일을 돌보리다.”
여왕의 말을 듣고 무역업자는 대사직을 수락하고 몇 년 동안 외국에서 대사직을 수행했습니다. 그가 직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여왕이 약속한 대로 그의 사업을 아주 잘 돌봐 준 것을 그는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일을 경영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마나한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6: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면, 우리 육신의 삶의 위한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경영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의 변두리가 아니라 한가운데 계시며, 나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주님께 나의 생애를 맡기고,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들을 오직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내가 주님을 높이면 주님께서는 나를 높여주시고, 내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께서 나의 일을 맡아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활 중심에 주님이 계심을 알고, 오직 그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순종합시다. 그리하면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감동적인 신앙의 시 한편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미국 켄터키 주 ‘아이솜’에 있는 한 어머니에게 월남전에 참전하고 있는 아들 ‘라리 매가드’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 내용 중의 놀라운 시를 읽는 중에 아들이 전사했다는 전보를 받았습니다. 그 시의 내용입니다.
“주 하나님! 이전에는 한번도 당신께 말씀드린 적이 없지만 지금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보같이 나는 그것을 모두 믿었습니다. 그런데 간밤에 구멍 난 창구를 통해 당신의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거짓말쟁이들임을 깨달았습니다. 왜 그동안 당신이 만드신 것들을 볼 시간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젠 제 손을 잡아 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얼굴을 직접 대하기 전에 이 지옥 같은 곳에 온 것이 재미있습니다. 오늘 당신을 뵌 것이 무척 기쁩니다. 곧 0시가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가까이 계심을 안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을 만난 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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