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의 기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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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12-26 22:49
*** 위기 속의 기회 / 렘42:1-14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42:1-14
“1 이에 모든 군대의 장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7 십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 장관과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가라사대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미국 미조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신발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브라운’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회자 한 분이 영업장을 방문했는데,
“어떻게 이처럼 크게 성공을 하였는지 사업비결이라도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브라운 씨는 아무 말 없이 목사님을 자기 사무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어둔 회사의 표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표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셋째는 구두!”
이것이 ‘브라운 제화’의 성공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르게 된 삶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2004년 한 해를 어떻게 사셨습니까? 이제 52번째 마지막 주일 예배에 임하고 있습니다. 내가 2004년 한 해를 지나온 삶의 길이 우선순위가 바르게 되었었는지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대화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이 시간에 읽은 말씀만 보면 그러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본문의 배경은 어둡고, 긴장되고, 기만적인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긴장되는 위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 유대인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배경입니다. 이 말씀을 상고하는 목적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피난처와 인도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과 전체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적인 배경은 B.C 586년경입니다. 바로 남 유다가 멸망한 해입니다. 예레미야 39:1-2절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 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 십일 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 마음대로 산 대가가 나라의 멸망이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로 별명이 붙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패망의 날을 경고하면서 눈물로 백성의 회개를 촉구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내셔서 유다를 철저하게 징벌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죽였으며,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버리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유다의 수많은 관리들과 군인들은 죽임을 당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가난한 농부들만 남겨두어 땅을 경작하게 했으며, ‘그다랴’라는 유대 관리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 때 들로 도망해 있던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의 몇몇 군대장관과 군인들과 백성들이 이 사실을 듣고는 그다랴가 있는 ‘미스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다랴는 그들에게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에서 평안히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암몬 왕 ‘바알리스’의 사주를 받은 ‘이스마엘’이 ‘그다랴’ 총독과 그다랴와 함께 한 유다 인들과 주둔군인 ‘바벨론 군사’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미스바에 남아 있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서 암몬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하난’과 군대장관들이 출동하여, 이스마엘에게 사로잡혔던 백성들을 되찾았습니다. 이스마엘은 몇 몇 사람과 암몬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요하난과 일행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신하기로 계획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요하난과 군대장관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와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본문2-3절을 봅시다.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을 보고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당장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다시 말합니다. 5-6절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여러분, 정말 진실한 신앙의 모습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설혹 자기들이 뜻한 바와 다르다 할지라도 결단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10일이 지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본문10-14절과 15절 하반절-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고 너희들의 생각대로 애굽으로 도망하면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쳐서 남을 자가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하난과 백성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생각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 인생의 위기의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본문의 2-3절, 5-6절은 기도의 훌륭한 모범입니다. 만일 남은 유다 인들이 그렇게만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것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마음을 아셨지만, 그들이 순종하기를 기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갈대아 인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너희 동족들도 돌아오게 될 것이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오기 전에 이미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께 길을 물어달라고 한 것은 자신들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승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애굽으로 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응답이 애굽으로 가라고 하시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되고, 다른 응답이 오면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단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위기 대처방법이 아닙니다.
‘애굽’은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세상에서 도움을 구합니다. 사람의 이성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가깝고 쉬운 쪽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는 손쉬운 것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운 쪽을 붙잡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도시락 하나로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일 수 있겠습니까? ‘이백 데나리온, 즉 천만 원어치의 떡을 사야겠다.’는 제자들의 계산이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야고보서4:13-17절에서 나오는 대로, 장사꾼들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이 계산한 천만 원어치의 떡은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을 한꺼번에 구할 수도 없었지만 그만한 돈도 당장 없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장사꾼들의 마음의 계획도 역시 말 그대로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가 일 년 동안 살아 있을지, 장사해서 본전이나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일이 도중에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그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4:14-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통이 있고, 위기가 닥쳤을 때, 여러분의 이성으로 계산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역사 속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 모두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인생의 위기의 때가 되면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6-7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길을 묻는 유다인들에게 두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길과 사람들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는 길, 이 두 방향입니다. 본문10-14절을 봅시다.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그런데 유다인들은 애당초 자신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해두었습니다. 본문 뒤의 20절을 봅시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이를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드러나는 행동만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읽으시는 분이십니다. 잠언21:2절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우리 생각대로 고집했던 방향이 있었다면 2005년에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방향으로 돌립시다. 하나님의 뜻이 비합리적이고,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종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29:11-13절입니다.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42:1-14
“1 이에 모든 군대의 장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7 십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대 장관과 백성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가라사대 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미국 미조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신발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브라운’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목회자 한 분이 영업장을 방문했는데,
“어떻게 이처럼 크게 성공을 하였는지 사업비결이라도 있으면 말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브라운 씨는 아무 말 없이 목사님을 자기 사무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벽에 걸어둔 회사의 표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표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셋째는 구두!”
이것이 ‘브라운 제화’의 성공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르게 된 삶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2004년 한 해를 어떻게 사셨습니까? 이제 52번째 마지막 주일 예배에 임하고 있습니다. 내가 2004년 한 해를 지나온 삶의 길이 우선순위가 바르게 되었었는지요?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의 대화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이 시간에 읽은 말씀만 보면 그러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본문의 배경은 어둡고, 긴장되고, 기만적인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긴장되는 위기 속에서 탈출구를 찾는 유대인들의 겁에 질린 모습이 배경입니다. 이 말씀을 상고하는 목적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피난처와 인도하시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먼저, 말씀의 배경과 전체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적인 배경은 B.C 586년경입니다. 바로 남 유다가 멸망한 해입니다. 예레미야 39:1-2절입니다. “유다 왕 시드기야의 구 년 시월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 십일 년 사월 구일에 성이 함락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 마음대로 산 대가가 나라의 멸망이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로 별명이 붙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패망의 날을 경고하면서 눈물로 백성의 회개를 촉구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서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내셔서 유다를 철저하게 징벌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죽였으며,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 버리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유다의 수많은 관리들과 군인들은 죽임을 당했으며, 나머지 대부분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가난한 농부들만 남겨두어 땅을 경작하게 했으며, ‘그다랴’라는 유대 관리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했습니다.
이 때 들로 도망해 있던 ‘요하난’을 비롯한 유다의 몇몇 군대장관과 군인들과 백성들이 이 사실을 듣고는 그다랴가 있는 ‘미스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다랴는 그들에게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기에서 평안히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암몬 왕 ‘바알리스’의 사주를 받은 ‘이스마엘’이 ‘그다랴’ 총독과 그다랴와 함께 한 유다 인들과 주둔군인 ‘바벨론 군사’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미스바에 남아 있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서 암몬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하난’과 군대장관들이 출동하여, 이스마엘에게 사로잡혔던 백성들을 되찾았습니다. 이스마엘은 몇 몇 사람과 암몬으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요하난과 일행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피신하기로 계획하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찾아왔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배경입니다.
요하난과 군대장관들과 백성들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와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하나님께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본문2-3절을 봅시다.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는 것을 보고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당장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다시 말합니다. 5-6절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는 우리 중에 진실 무망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청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여러분, 정말 진실한 신앙의 모습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설혹 자기들이 뜻한 바와 다르다 할지라도 결단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10일이 지났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본문10-14절과 15절 하반절-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바벨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고 너희들의 생각대로 애굽으로 도망하면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쳐서 남을 자가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하난과 백성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숨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의 생각까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말씀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 인생의 위기의 때에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본문의 2-3절, 5-6절은 기도의 훌륭한 모범입니다. 만일 남은 유다 인들이 그렇게만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는 것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하는 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거짓된 마음을 아셨지만, 그들이 순종하기를 기대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갈대아 인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너희 동족들도 돌아오게 될 것이다.”고 약속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오기 전에 이미 애굽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께 길을 물어달라고 한 것은 자신들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승인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애굽으로 갈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응답이 애굽으로 가라고 하시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되고, 다른 응답이 오면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단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위기 대처방법이 아닙니다.
‘애굽’은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위기가 닥쳤을 때, 세상에서 도움을 구합니다. 사람의 이성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가깝고 쉬운 쪽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눈에 보이는 손쉬운 것을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려운 쪽을 붙잡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도시락 하나로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배불리 먹일 수 있겠습니까? ‘이백 데나리온, 즉 천만 원어치의 떡을 사야겠다.’는 제자들의 계산이 더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야고보서4:13-17절에서 나오는 대로, 장사꾼들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이 계산한 천만 원어치의 떡은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을 한꺼번에 구할 수도 없었지만 그만한 돈도 당장 없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의 장사꾼들의 마음의 계획도 역시 말 그대로 상상에 불과합니다. 그가 일 년 동안 살아 있을지, 장사해서 본전이나 찾을 수 있을지, 어떤 일이 도중에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그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4:14-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여러분의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통이 있고, 위기가 닥쳤을 때, 여러분의 이성으로 계산하기 전에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성경의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 역사 속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 모두가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인생의 위기의 때가 되면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55:6-7절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길을 묻는 유다인들에게 두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길과 사람들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는 길, 이 두 방향입니다. 본문10-14절을 봅시다.10 너희가 이 땅에 여전히 거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니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 두려워하는 바벨론 왕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여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 말라. 12 내가 너희를 긍휼히 여기리니 그로도 너희를 긍휼히 여기게 하여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복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말하기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식물의 핍절도 당치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결단코 들어가 거하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그런데 유다인들은 애당초 자신들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해두었습니다. 본문 뒤의 20절을 봅시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고하라 우리가 이를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과 드러나는 행동만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읽으시는 분이십니다. 잠언21:2절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우리 생각대로 고집했던 방향이 있었다면 2005년에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방향으로 돌립시다. 하나님의 뜻이 비합리적이고,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종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29:11-13절입니다.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