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3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794회 작성일 2004-12-12 00:44
***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3 / 요13:34-35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3:34-35 /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오심’을 감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대강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이 머무는 자리에서 평화를 이루며 사셨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소망이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며, 사랑과 기쁨을 주시는 지상최대의 사건입니다. 이것을 마음껏 누리며 선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번 대강절 기간에는 예수님의 오심이 의미하는 네 가지의 주제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미 첫 번째 주제인 ‘소망’과 두 번째 주제인 ‘평화’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세 번째 자세로서 ‘사랑’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가장 고귀하게 지음 받은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가장 총애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했습니다.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계약의 파기입니다. 이것을 죄라 합니다. 죄의 결과는 ‘분리’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그 결국이 멸망인 죄의 자리로 의 전락입니다. 이사야59:2절에서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셨으며, 로마서6:23절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면서부터 사람에게는 ‘상실’의 아픔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며, 생명을 잃는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마음에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한 공간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그 허전함을 메워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일에 미치기도 하고, 술에 빠지고, 마약에 빠지고, 사랑도 해보고, 자식에게 온 마음을 두기도 하고, 명예와 권력과 온갖 쾌락을 찾아보지만 그 어디에도 ‘만족’은 없습니다.  잠언27:20절에서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전도서5:10절에서는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살인도 하고, 도적질도 하고, 온갖 술수가 다 동원됩니다. 이 사실을 야고보서4:2절에서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사람 스스로는 죄를 돌이킬 수 없으며, 잃어버린 지위를 찾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신 로마서3:10절의 말씀처럼, 모든 인류가 죄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 때에 주셨던 그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회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말씀이 율법을 근거로 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율법은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절망감만 맛보았습니다. 사람의 행위, 사람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자식을 그래도 사랑하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서 죽음의 길로 가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죄의 값을 치르는 대속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마가복음10:4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사람을 죄의 자리에서 구원하여 본래의 자리로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일서4:9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도, 생명까지도 버리시면서 말입니다. 이 망극지은(罔極之恩)의 사랑이 우리가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랑입니다.

빈민촌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는 어느 목회자가 쓴 십대 소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녀는 큰 도시의 빈민가 출신이었습니다. 부모는 소녀가 어렸을 때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가 열 두 살 되던 해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며, 곧 환각제를 먹었고, 마약인 ‘헤로인’을 주사했습니다. 친구 따라서 몇 번인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모습은 자랄수록 더욱 비뚤어지고 난폭해졌습니다.
이 소녀가 그 여름에 청소년 사역자가 인솔했던 교회 수련회에 1주일간 참석을 했습니다. 소녀는 그 수련회에서 섬기는 사람들의 사랑에 마음이 녹아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소녀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걱정해주고 돌봐주던 그 모습 때문이었죠. 모든 사람들이 다 나와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보여주었어요. 지금까지는 아무도 날 그렇게 사랑해주지 않았어요.”

소녀는 전에 이미 복음을 들은 적이 있었으며, 여러 번 교회에 출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수련회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겠습니까? 소녀의 표현대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수련회에서 일주일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자신이 느낄 수 있도록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야고보서2:14-17절을 봅시다. (현대어성경) “14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믿음이 깊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남 돕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신앙으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15 여러분의 친구 한사람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합시다. 16 그런 사람에게 여러분이 `참 안됐구려. 따뜻하게 지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는 말만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그따위 신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17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믿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선한 행실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증명해 내지 못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믿음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죽은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믿음은 행동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함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소녀처럼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관심을 가져줄 때에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느껴지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강절을 지키는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내가 받은 사랑을 깊이 생각하며 감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지를 점검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대강절의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을 나타내고 실천할 수 있습니까? 프랜시스 쉐이퍼 목사님은 자신이 쓴 ‘20세기말의 교회’라는 책에서
“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죽어가는 이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를 주목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내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세상에 주고 계십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의 첫 번째는 ‘서로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성도들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21절에서 예수님은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봅시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있음을 세상 사람들이 느끼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고, 축복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하루가 멀다 하고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이 ‘행복한 가정’에 대한 강의를 한다면 누가 그 강의를 들으려 하겠습니까? ‘제발 너나 싸움질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혹시 ‘남을 먼저 사랑해야지, 우리끼리 사랑한다면 순서가 잘 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갈라디아서6:10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랑과 선행의 우선 대상은 믿음의 식구들입니다.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의 두 번째는 ‘화해’입니다.  ‘화해’는 막혔던 물길이 트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을 헐어버리신 ‘화해’를 이루신 것입니다. 에베소서2:14-15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 막혔던 담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없애셨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중보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해’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화해자’가 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먼저 자신의 주변을 가까운 곳에서부터 살펴보십시오. 관계가 막혀 있는 대상들은 없습니까? 먼저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화해자가 되는 길입니다. 디모데전서5:8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화해자로 서야 할 자리를 찾으십시오.

하나님과의 사이를 열게 하는 영적인 화해자로서, 또한 세상적인 감정으로 골이 깊은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생활의 화해자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가장 우선적인 일입니다. 가족간의 화해, 일가친척 간의 화해, 이웃간의 화해, 직장에서의 화해 등 우리가 이루어야 할 곳은 많습니다. 이 사랑의 계절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기리며, 그 사랑을 우리 삶에서 이루어갑시다.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 ‘세 가지 의문’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한 임금이 인생에서 풀지 못한 세 가지 의문의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첫째 의문은 “모든 일에서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 둘째 의문은 “어떤 인물이 가장 중요한 존재일까?” 세째 의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라는 것입니다.
왕은 국사를 행할 때 항상 이 세 가지 일로 결정을 내리는데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과 신하들이 별의별 해답을 제시하였으나 임금의 마음을 흡족케 할 대답은 없었습니다. 급기야 임금은 성인으로 잘 알려진 산골의 은자를 찾아 갔습니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 대답 없이 밭만 갈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숲 속에서 한 청년이 피투성이의 몸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임금은 자기의 옷을 찢어서 청년의 상처를 싸매주고 정성껏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청년은 임금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젊은 신하였습니다. 비로소 그 청년은 임금의 간호에 감격하여 원한의 감정을 풀고 더 충성스런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임금은 은자에게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은자는 ‘해답은 이미 나왔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사람이 지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존재는 자신이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지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의 삶에서 사랑이 가득하도록 생각을 고쳐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가정, 그리고 대복교회로 만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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