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2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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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12-12 00:42
***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2 / 사9:6-7, 요14:;27
*** 들어가는 말
이사야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의 ‘오심’을 감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시며, 영원한 영광의 삶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늘 감사하며 살아도 오히려 부족할 것뿐인 망극지은(罔極之恩, 더 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저는 20년이 넘도록 성탄 장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외부 장식과 내부 장식의 일부를 했습니다. 저는 ‘나의 생명의 주님께 감사하는 작은 표현으로’ 최선을 다하여 성탄 장식을 해왔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장식만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한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선전하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소망이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며, 사랑과 기쁨을 주시는 지상최대의 사건입니다. 이것을 마음껏 누리며 선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첫 번째 주제로 ‘기다림’ 즉 소망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두 번째 자세로서 ‘평화’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세계는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모슬렘들이 성전(聖戰)이라는 명목으로 세계를 향하여 테러를 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연합 세력들도 평화라는 명목을 걸고 있지만, 모슬렘들의 항거도 역시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게도 세상은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평화를 원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입니다. Gospel song에도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이렇게 노래합니다.(찬미예수 906)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중국의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변경을 방위하기 위해 축조한 대성벽으로써 보하이 만(渤海灣)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지도상의 총연장은 약 2,700km이나, 실제는 약 6,400㎞(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일반주택 건물로 따지면 3, 4층 높이가 되는 6∼9m나 됩니다.
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엄청난 재정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이토록 긴 만리장성을 쌓았겠습니까? 목적은 적국의 침략을 막는 것, 즉 자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리장성도 평화를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복음송 가사처럼, 세상의 평화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평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구약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예고하면서,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약본문에서는 주님 당신께서 친히 ‘평화’라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평화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가장 먼저 전해진 소식이 ‘평화’였습니다. 누가복음 2:13-14절을 봅시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의 성육신을 전하는 천사들의 소식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평화’였습니다. 평화란 걱정과 염려가 없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평화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신약본문을 같이 읽어봅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나의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인 ‘나는 …이다.’라는 자신의 주권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 자신께서 ‘평화’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루시는 평화는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잠깐 동안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환경과 여건에 관계없이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으로부터 샘솟듯이 솟아나는 평화입니다.
C.C.C. 총재인 ‘빌 브라잍’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대통령 조찬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학교 때 절친한 친구를 26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는 해군장관이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그 친구의 가정이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여러 가지를 다 갖추었는데 가정 분위기가 불안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친구의 막내아들이 병으로 죽은 직후여서 그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한 후 헤어졌습니다.
몇 개월 후에 다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딸이 임파선 암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은 “얼마나 슬픈가?”라며 위로의 말을 했는데, 친구는
“아니야, 내가 내 딸을 생각할 때는 심히 슬프고 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지만, 이 어려운 때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을 내게 주셨다네.”
라고 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평화가 바로 주님이 이루시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고귀한 평화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불안해하고, 생활을 염려하며,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봅니다. 평화이신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하십니다.
2.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왕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은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평화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길을 소외된 이웃에게 돌리고, 아직도 어두움의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우리도 이와 같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5:18-19절입니다. 현대어성경/ “18 이 새로운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과 화해하시고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할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사절들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는 자신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진정한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목을 생활로 전하는 평화 전령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의 생활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안을 누린다면 그들도 우리를 따라오고 싶어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4절에서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으며, 4:20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실제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1:5절입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통하여 본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안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으로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생활로 인하여 근심이 쌓이고 염려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으로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믿음으로 의지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신약본문 바로 앞 구절인 26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을 통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평안을 지속적으로 누리게 하시려고 장래의 모든 일까지도 알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봅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십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령께서 때를 따라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복음15: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요한복음15:7절을 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렇게 되면 우리가 불안하거나 염려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번 주간은 대강절 두 번째 주간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돌아봅시다. 내 자신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평화로운가? 우리가정은 주님 안에서 평안한가? 내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인가를 돌아봅시다.
오늘 우리들에게 맡겨진 일이 바로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우리들이 역시 평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머무는 곳에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 평화의 계절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 삶에 평안을 이루며,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평화 전령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사야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의 ‘오심’을 감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시며, 영원한 영광의 삶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늘 감사하며 살아도 오히려 부족할 것뿐인 망극지은(罔極之恩, 더 할 수 없이 큰 은혜)입니다.
저는 20년이 넘도록 성탄 장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외부 장식과 내부 장식의 일부를 했습니다. 저는 ‘나의 생명의 주님께 감사하는 작은 표현으로’ 최선을 다하여 성탄 장식을 해왔습니다. 이처럼 외적인 장식만이 아니라, 주님을 영접한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선전하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의 소망이며, 평화를 이루는 것이며, 사랑과 기쁨을 주시는 지상최대의 사건입니다. 이것을 마음껏 누리며 선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는 첫 번째 주제로 ‘기다림’ 즉 소망에 대하여 상고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두 번째 자세로서 ‘평화’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세계는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쟁을 중심으로 모슬렘들이 성전(聖戰)이라는 명목으로 세계를 향하여 테러를 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연합 세력들도 평화라는 명목을 걸고 있지만, 모슬렘들의 항거도 역시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서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irony)하게도 세상은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평화를 원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없는 것입니다. Gospel song에도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이렇게 노래합니다.(찬미예수 906)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중국의 만리장성은 중국 역대 왕조가 변경을 방위하기 위해 축조한 대성벽으로써 보하이 만(渤海灣)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지도상의 총연장은 약 2,700km이나, 실제는 약 6,400㎞(중간에 갈라져 나온 가지를 모두 합하여)에 걸쳐 동서로 뻗어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목공사 유적입니다. 성벽의 높이는 일반주택 건물로 따지면 3, 4층 높이가 되는 6∼9m나 됩니다.
왜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엄청난 재정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이토록 긴 만리장성을 쌓았겠습니까? 목적은 적국의 침략을 막는 것, 즉 자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만리장성도 평화를 지켜주지는 못했습니다. 복음송 가사처럼, 세상의 평화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평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구약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예고하면서,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약본문에서는 주님 당신께서 친히 ‘평화’라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은 평화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가장 먼저 전해진 소식이 ‘평화’였습니다. 누가복음 2:13-14절을 봅시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의 성육신을 전하는 천사들의 소식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평화’였습니다. 평화란 걱정과 염려가 없고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와 같은 평화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신약본문을 같이 읽어봅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예수님께서 “나의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징인 ‘나는 …이다.’라는 자신의 주권을 선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 자신께서 ‘평화’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루시는 평화는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며 잠깐 동안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환경과 여건에 관계없이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으로부터 샘솟듯이 솟아나는 평화입니다.
C.C.C. 총재인 ‘빌 브라잍’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대통령 조찬기도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학교 때 절친한 친구를 26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는 해군장관이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그 친구의 가정이 사회적인 지위도 있고 여러 가지를 다 갖추었는데 가정 분위기가 불안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친구의 막내아들이 병으로 죽은 직후여서 그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한 후 헤어졌습니다.
몇 개월 후에 다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딸이 임파선 암으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빌은 “얼마나 슬픈가?”라며 위로의 말을 했는데, 친구는
“아니야, 내가 내 딸을 생각할 때는 심히 슬프고 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했지만, 이 어려운 때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을 내게 주셨다네.”
라고 하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사람의 입장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평화가 바로 주님이 이루시는 평화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평화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고귀한 평화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을 불안해하고, 생활을 염려하며,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봅니다. 평화이신 주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고 하십니다.
2.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평화의 왕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은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 평화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길을 소외된 이웃에게 돌리고, 아직도 어두움의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우리도 이와 같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5:18-19절입니다. 현대어성경/ “18 이 새로운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19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과 화해하시고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할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사절들입니다. 그래서 성탄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는 자신 안에서 평화를 누리며, 진정한 평화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목을 생활로 전하는 평화 전령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의 생활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평안을 누린다면 그들도 우리를 따라오고 싶어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4절에서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했으며, 4:20절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실제적인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1:5절입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바울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통하여 본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안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으로 우리 속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생활로 인하여 근심이 쌓이고 염려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말씀으로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믿음으로 의지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신약본문 바로 앞 구절인 26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을 통하여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평안을 지속적으로 누리게 하시려고 장래의 모든 일까지도 알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16:13절을 봅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십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령께서 때를 따라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됩니다. 요한복음15:10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평안을 누리는 길입니다. 요한복음15:7절을 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렇게 되면 우리가 불안하거나 염려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번 주간은 대강절 두 번째 주간입니다. 우리의 생활을 돌아봅시다. 내 자신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어 평화로운가? 우리가정은 주님 안에서 평안한가? 내 가까운 친척들과 이웃들에게 평화를 이루는 사람인가를 돌아봅시다.
오늘 우리들에게 맡겨진 일이 바로 평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평화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우리들이 역시 평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머무는 곳에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 평화의 계절에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로서 삶에 평안을 이루며, 세상에 평화를 전하는 평화 전령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