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언젠가는 거둘 때가 옵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02회 작성일 2005-07-05 11:06
*** 언젠가는 거둘 때가 옵니다. / 갈라디아서 6:6-10

*** 들어가는 말

갈라디아서 6:6-10,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지금이 구약시대라면 일 년에 세 번, 반드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예배해야 하는 세 절기 중의 두 번째 절기가 됩니다. 이 절기는 ‘칠칠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하며, 봄에 곡식을 수확하고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지키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신명기 16:9-11, 14-17절을 봅시다. “9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이 말씀은 왜 절기를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방법까지 가르치십니다. 여호와의 특별한 절기는 선민 공동체 전체가 서로 돌아보며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민의 삶을 돌아보시고 복을 주시며 또한 계속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삶에 찌들어 잊고 있던 지체들을 절기를 통하여 돌아보며, 함께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기에 드리는 예물은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절기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와 섬김과 봉사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겁게 자원하여 행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오셨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예물을 준비하셨습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까? 오늘 감사절에는 이 땅에서의 기쁨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이어지는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방식을 재정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의미하는 바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언젠가는 거둘 때가 옵니다.” 이 주제는 거둘 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삶을 의미 있게 가꾸어야 함을 말합니다. 즉 영원한 행복과 즐거움을 위하여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고 따라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형식적인 행사로서의 절기나 예배, 헌신에서 벗어나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시대에 탄식하시던 그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사야 1:11-14절입니다. (현대어성경)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가 바치는 짐승의 제물이 역겨워 죽을 지경이다. 더 이상 그런 것들을 내게로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가 바치는 살찐 숫양에 나는 질려 버렸다. 너희가 잡아서 바치는 제물의 피는 보기도 싫다. 12 범죄한 것은 뉘우치지도 않는데 누가 너희의 희생제물을 달갑게 받겠느냐? 너희가 내게 살라 바치는 향불도 내 코에는 악취일 뿐이다. 너희가 거룩하게 지키는 초하루와 안식일과 특정한 날에 모이는 금식 기도회가 아무리 경건한 모임인 체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다 사기 행각이 아니냐? 나는 그런 것들과 더 이상 상관도 하기 싫다. 13 (12절과 같음) 14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미워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보기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절기를 지키는 것은 ‘보이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라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뿌린 삶을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영원한 삶을 위한 추수가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마태복음 3:12절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내가 뿌린 삶을 거둘 때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자신이 머물 삶의 자리와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자리입니다. 왜 이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께 예배하도록 정하신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이 하나님께 예배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이자 때입니다. 사람들의 사는 매 순간마다 머무는 삶의 자리가 있고 기회 위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21:8절에서 성도의 머무는 자리와 때의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웠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고 하셨으며, 뿐만 아니라 로마서 12: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이며,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중국의 해군 제독이 ‘카론’에서 친구들과 함께 부흥 집회에 참석했으며, 설교를 통하여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독은 목사님이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며 결신카드를 주자 그 카드에 ‘나는 나의 개인적인 구주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라고 쓰고서 서명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함께 갔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뭘 그렇게 서두르고 있나? 좀더 여유를 갖고 생각하지 그래.”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제독은 결신카드 제출하는 것을 보류했습니다. 그날 집회가 끝나고 교회당 문을 나설 때 제독은 저격병이 쏜 총에 맞아 생명을 잃었습니다.

제독은 좋은 자리를 찾았지만 친구의 충고로 인하여 때를 분별하지 못하여 그 좋은 자리에 머물지 못했으며, 생명의 기회마저 잃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수많은 기회를 지나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지나가지만 깨닫지 못하여 잡을 생각조차 못한 채 지나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근신하며 깨어있으라.”고 하셨으며, 시편 첫머리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깨어 있어서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잘 분별하는 자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또 여러분이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가 생명의 자리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안에 있습니까? 우리가 머무는 삶의 자리와 일을 행하는 기회라고 하는 것은 둘 다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조건입니다. 열 처녀 비유의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한 번 기회가 지나가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생명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깨어 있읍시다. 가룟 유다처럼 한갓 지나가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자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간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를 심고 있습니다. 이렇게 심고 뿌린 것들은 우리가 거두게 됩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생애 동안에 거둘 것도 있으며,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거둘 것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12절에서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고 하시며, 본문 7-8절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과수원에서 유실수의 어린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그 마을 청년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어르신, 뭐하시려고 이제 그 어린 묘목을 심으십니까?” 노인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지.”라고 당연한 듯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열매를 거두시려면 아마 칠팔십년은 있어야 할 텐데 그 때까지 사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쓸모없는 일을 한다는 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설래 설래 저으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없지.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 열매가 풍성했었네. 그건 우리 할아버지께서 심으셨던 것이며, 나는 지금까지 그 열매를 먹으며 살았지. 지금 내가 나무를 심는 것도 같은 이유라네.”

우리가 심고 뿌리는 것들은 우리 자신에게만 유익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를 심는 것보다 더 훌륭한 유산은 없습니다. 선행을 심으면 우리와 자녀들의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반대로 악을 심어도 우리뿐만 아니라 자손의 때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37:25절에서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삶에 유익한 것을 부지런히 심고 뿌려야 합니다. 전도서 11:6절에서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신 것처럼 부지런히 뿌려야 합니다.

다만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뿌리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조금은 있겠지요. 세상에 사는 동안에 육신이 조금 편하고 쾌락을 누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이 살져서 지옥 불에 던져진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문 8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다는 것”은 ‘육신의 일을 심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과 계획에 의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반대로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나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방법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십니까? 아이들이 부담스럽도록 학원에 보내고,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백배 나은 것이며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에 하루만 음식을 먹고 일주일을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까? 병들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지요?

3. 하나님을 의지하고 꾸준히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0:36절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15절에서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셨고, 21:19절에서는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9절에서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기다림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내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헤치는 심각한 질병은 ‘조급함’입니다. 며칠 기도해보고 안 되니까 포기해 버리고, 조금 봉사하고, 조금 희생해 보고 포기한다면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요셉은 17년을 억울한 고통과 아픔을 견디며 기다렸고, 아브라함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위하여 25년을 인내하며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80년을 기다렸습니다. 신앙은 곧 기다림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렇지’라고 생각되십니까? 이런 예를 현실에서 들어보라고 한다면 오늘 종일토록 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8절에서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로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심는 모든 믿음의 행위는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종합합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우리 자신이 뿌린 삶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의 삶이 거둘 때를 생각하는 진실한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와 때를 잘 분별하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부지런히 심고 뿌립시다. 그리고 심은 것은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읍시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물질과 능력을 허비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깨어 있읍시다. 일년 52주 내내 감사절이 되게 합시다.

강철 왕 카네기가 자기 사무소의 직원을 채용하면서 묘한 시험을 냈습니다. 그는 응시자들에게 포장된 화물을 하나씩 주면서 그 포장을 벗기라고 했습니다. 응시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방법으로 포장을 뜯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밧줄을 꼼꼼히 차례로 끄른 응시자는 모두 불합격이 되었고, 칼로 썩썩 잘라 버리고, 신속하게 푼 사람들이 합격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카네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세상은 스피드 시대인데, 밧줄 끄르기에 시간을 다 보내면 다른 사무는 언제 본단 말인가? 나는 그런 비능률적인 사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잠시 지나가는 세상일에 정성을 들이지 말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효과 있는 삶으로 좋은 열매로 가득한 삶을 만들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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