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앞에서 서야 할 방향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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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6-01 22:55
*** 문제 앞에서 서야 할 방향 / 이사야 38:1-8
** 들어가는 말
이사야 38:1-8, “1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8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 가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비탄에 잠겼습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애끊는 기도를 했습니다.
“제발 아들을 단 5분만 만나보게 해주세요. 단 5분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들을 5분 동안 만나게 해주겠다. 그러면 아들의 언제 모습을 보고 싶으냐. 어머니의 품에서 재롱을 피우던 모습인가?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인가?”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뒤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제게 용서를 빌던 모습니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제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눈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감정 표현의 수단입니다. 눈물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강심장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물 앞에서 노를 푸시고 긍휼히 여기심을 봅니다. 악한 왕이었던 ‘아합’, 다윗, 히스기야, 예레미야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사도 바울, 향유를 부은 여인 등. 모두가 눈물로 긍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시편56:8절에서 자신의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며,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눈물’에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는 좋은 방법도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 좋은 예가 오늘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서 문제가 닥칠 때 어떤 방향으로 향하여야 할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남 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는 국제정세가 대단히 불안하던 기원전 726년, 나이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비교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통치를 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젊었을 시기에 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본문 말씀은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와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유언을 해라. 네가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하라”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대국(大國)인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침략을 해 와서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유다로서는 그 막강한 앗수르를 도무지 상대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히스기야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하나님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산헤립이 보낸 선전포고의 편지를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라고 하시며,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모두 시체가 되게 했습니다. 니느웨성으로 도망간 산헤립은 아들들의 손에 죽게 하셨습니다.
나라에는 승리의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히스기야 왕에게 죽음의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였습니다. 이제는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안심할 그 때에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히스기야 왕은 절망적인 문제 앞에 섰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했던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향하여야 할 방향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 문제 앞에서 섰던 방향입니다.
1.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왜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습니까? 벽은 막다른 골목이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히스기야는 탈출할 수 있는 문, 즉 세상을 뒤로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섰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역대하 16:9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全心)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포기하는 그 시점에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반면에 성경은 세상 쪽으로 향한 사람의 이야기도 증언합니다. 남 유다의 3대 왕이었으며 41년을 통치했던 ‘아사’왕입니다. 아사 왕도 선한 통치를 한 왕이었습니다. 통치 35년까지는 나라 안의 우상들을 제거하며 비 신앙적인 모든 것을 개혁했습니다. 그러다가 통치 36년이 되던 해에 북 이스라엘이 침략해오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왕 벤하닷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책망하는 하나니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결국 통치 39년에 발에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역대하 16:12절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것이 아사 왕의 비참한 종말을 고하는 마지막 표현입니다. 그는 인생의 막다른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 세상을 향했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않고 세상 쪽으로 향합니다.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을까?’ ‘어느 병원이 좋을까?’ ‘저 의사가 잘 한다고 하던데’ ‘이런 약이 좋다고 하던데’ 하다가 하다가 도저히 길이 없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46:3절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하시며, 잠언 3:5절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 30: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세상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이런 환경만 조성되면 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2. 문제 앞에서는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되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통곡”이란 ‘눈물이 넘쳐흐르도록 심한 울음’을 말합니다. 이는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곡한 부르짖음입니다. 다윗이 신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을 때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는 ‘침상이 눈물에 뜨도록 울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표현할 때에 자신의 옷을 찢고, 재위에 앉아서 재를 뒤집어쓰고, 걸음도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표현보다 더 강렬한 표현은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항복의 표시이며, 긍휼을 구하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이사야 66:2절을 봅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시며, 다윗은 시편 51:17절에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자신의 온갖 더러운 죄악과 허물들을 씻어내고 영혼을 순수하게 만들었습니다. 통회의 눈물은 세상으로 가득 찼던 자리에 주님으로 채우는 작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이사야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본문5-6절을 봅시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응답을 보십시오. 눈물의 기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명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주실 뿐만 아니라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또한 안전하게 보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성도의 눈물은 천국 가는 고속도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성도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 부딪칠 때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눈물로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3: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3. 장래의 일을 위하여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절의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을 봅시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공적을 나타내거나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14년간의 자신의 행적에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행했던 일들을 생각하셔서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4절을 봅시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이어서 22절을 봅니다.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그리고 31절입니다.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이 내용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총독으로 일했던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습니다. 평상시에 항상 성실하게 살며 준비하는 것이 미래의 우환을 없애는 길입니다. 막상 일이 터졌을 때에 준비하려면 이미 늦게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이 사실을 교훈합니다. 평상시에 믿음을 준비해 둔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해두지 못하고 일이 닥쳤을 때에 준비하려고 한 다섯 처녀는 준비하러 간 사이에 이미 상황이 끝나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기자를 통하여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오늘, 지금’뿐입니다. 장래에 닥쳐 올 일을 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오늘을 성실하고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입니다.
말씀을 종합합니다.
인생길에는 항상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인생의 어려운 때의 일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평상시에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고 열심 있고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닥쳤을 때는 세상에서 도움을 기대하며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쏟아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로 아뢰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원한 행복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오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사야 38:1-8, “1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7 나 여호와가 말한 것을 네게 이룰 증거로 이 징조를 네게 주리라. 8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 가니라.”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비탄에 잠겼습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애끊는 기도를 했습니다.
“제발 아들을 단 5분만 만나보게 해주세요. 단 5분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들을 5분 동안 만나게 해주겠다. 그러면 아들의 언제 모습을 보고 싶으냐. 어머니의 품에서 재롱을 피우던 모습인가?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상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인가?”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뒤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제게 용서를 빌던 모습니다. 아들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제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눈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감정 표현의 수단입니다. 눈물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강심장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눈물 앞에서 노를 푸시고 긍휼히 여기심을 봅니다. 악한 왕이었던 ‘아합’, 다윗, 히스기야, 예레미야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사도 바울, 향유를 부은 여인 등. 모두가 눈물로 긍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시편56:8절에서 자신의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며, ‘주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눈물’에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는 좋은 방법도 여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 좋은 예가 오늘의 본문 말씀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서 문제가 닥칠 때 어떤 방향으로 향하여야 할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남 유다의 13대 왕인 ‘히스기야’는 국제정세가 대단히 불안하던 기원전 726년, 나이 25세에 왕이 되어 29년 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그는 비교적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통치를 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직 젊었을 시기에 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본문 말씀은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사람인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 와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유언을 해라. 네가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하라”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대국(大國)인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침략을 해 와서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을 의지해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유다로서는 그 막강한 앗수르를 도무지 상대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 상황을 히스기야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하나님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산헤립이 보낸 선전포고의 편지를 펼쳐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라고 하시며, 산헤립의 손에서 구원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의 군사 18만 5천명을 모두 시체가 되게 했습니다. 니느웨성으로 도망간 산헤립은 아들들의 손에 죽게 하셨습니다.
나라에는 승리의 기쁨과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히스기야 왕에게 죽음의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였습니다. 이제는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안심할 그 때에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히스기야 왕은 절망적인 문제 앞에 섰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했던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향하여야 할 방향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세밀하게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히스기야 왕이 문제 앞에서 섰던 방향입니다.
1. 문제 앞에서는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왜 얼굴을 벽으로 향하였습니까? 벽은 막다른 골목이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히스기야는 탈출할 수 있는 문, 즉 세상을 뒤로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섰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역대하 16:9절을 봅시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全心)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라.’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포기하는 그 시점에 역사하신다고 합니다.
반면에 성경은 세상 쪽으로 향한 사람의 이야기도 증언합니다. 남 유다의 3대 왕이었으며 41년을 통치했던 ‘아사’왕입니다. 아사 왕도 선한 통치를 한 왕이었습니다. 통치 35년까지는 나라 안의 우상들을 제거하며 비 신앙적인 모든 것을 개혁했습니다. 그러다가 통치 36년이 되던 해에 북 이스라엘이 침략해오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왕 벤하닷을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책망하는 하나니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결국 통치 39년에 발에 심한 병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역대하 16:12절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이것이 아사 왕의 비참한 종말을 고하는 마지막 표현입니다. 그는 인생의 막다른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 세상을 향했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과 어떤 행동을 합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않고 세상 쪽으로 향합니다. ‘내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을까?’ ‘어느 병원이 좋을까?’ ‘저 의사가 잘 한다고 하던데’ ‘이런 약이 좋다고 하던데’ 하다가 하다가 도저히 길이 없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146:3절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라고 하시며, 잠언 3:5절에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 30:5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마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세상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될 것 같고, 이런 환경만 조성되면 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물건을 보면 마음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생각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입니다.
2. 문제 앞에서는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되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통곡”이란 ‘눈물이 넘쳐흐르도록 심한 울음’을 말합니다. 이는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곡한 부르짖음입니다. 다윗이 신하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았을 때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는 ‘침상이 눈물에 뜨도록 울었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를 표현할 때에 자신의 옷을 찢고, 재위에 앉아서 재를 뒤집어쓰고, 걸음도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표현보다 더 강렬한 표현은 심한 통곡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항복의 표시이며, 긍휼을 구하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이사야 66:2절을 봅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라고 하시며, 다윗은 시편 51:17절에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했습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은 자신의 온갖 더러운 죄악과 허물들을 씻어내고 영혼을 순수하게 만들었습니다. 통회의 눈물은 세상으로 가득 찼던 자리에 주님으로 채우는 작업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이사야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본문5-6절을 봅시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이 응답을 보십시오. 눈물의 기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명을 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시켜주실 뿐만 아니라 대적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또한 안전하게 보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성도의 눈물은 천국 가는 고속도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성도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삶의 문제에 부딪칠 때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눈물로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33: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3. 장래의 일을 위하여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절의 히스기야의 기도내용을 봅시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공적을 나타내거나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14년간의 자신의 행적에서 하나님께 전심으로 행했던 일들을 생각하셔서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4절을 봅시다. “내 하나님이여, 이 일을 인하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나의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이어서 22절을 봅니다. “내가 또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몸을 정결케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로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옵시고 주의 큰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그리고 31절입니다.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이 내용은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총독으로 일했던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습니다. 평상시에 항상 성실하게 살며 준비하는 것이 미래의 우환을 없애는 길입니다. 막상 일이 터졌을 때에 준비하려면 이미 늦게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이 사실을 교훈합니다. 평상시에 믿음을 준비해 둔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해두지 못하고 일이 닥쳤을 때에 준비하려고 한 다섯 처녀는 준비하러 간 사이에 이미 상황이 끝나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기자를 통하여 3:13절에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오늘, 지금’뿐입니다. 장래에 닥쳐 올 일을 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오늘을 성실하고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입니다.
말씀을 종합합니다.
인생길에는 항상 좋은 일, 형통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일들도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인생의 어려운 때의 일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그 준비는 평상시에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고 열심 있고 충성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닥쳤을 때는 세상에서 도움을 기대하며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을 쏟아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눈물의 기도로 아뢰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원한 행복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오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