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결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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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5-24 13:11
***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결 / 사도행전 19:8-20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19:8-2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넓은 포도원을 가진 사람이 많은 일꾼들을 데리고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일꾼들 가운데는 일을 아주 지혜롭게 하는 비범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청년을 데리고 포도원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느 듯 하루해가 기울고 일꾼들이 품값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노임이었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이 일은 하지 않고 주인과 함께 이야기나 했던 청년에 대하여 항의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고작 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고, 주인과 이야기만 했는데 어째서 우리와 똑같은 노임을 받는 겁니까? 아무래도 불공평한 일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설명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하루 걸려 한 일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이 사람은 두 시간에 해치웠습니다.”
인생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인생이 살아온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에 알맞은 시간과 재능들을 부여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여 좋은 열매로 남기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지방에서 전도하고 목회했던 3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는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던 항구 도시로서, 특히 이방 미신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미신의 정도가 지나쳐서 소위 ‘에베소 주문’ 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부적과 같은 것으로서 ‘이 주문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만사형통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술’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성행했습니다.
‘에베소’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가 ‘숭배자’, ‘신전을 지키는 자’, ‘여신의 문지기’등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에베소는 신전들로 유명했습니다. 주신(主神)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이름이 다이아나(Diana, 로마식 / 그리이스식 - 아데미)였습니다. 이 여신 숭배는 웅장한 신전, 제물의 상품화, 그리고 매춘의 합법화가 특징입니다. 지금도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 그리고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년간(주후53-56)에 걸쳐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강론했고, 비방하는 무리들을 인하여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이란,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연했던 세속적인 강연장을 말합니다. 바울에 관한 역사를 보면, ‘바울은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연을 하지 않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두란노 서원을 이용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장소야 어찌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강퍅하고 패역한 도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 모든 것을 녹이기에 충분합니다. 히11:38절에서는, 바울과 같은 이런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영의 세계에서도 소문이 나며, 그의 삶에는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 있는 성도의 모습은 어떠한 것입니까?
2.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본문11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희한한 능력”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바울이 병든 자,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에게 안수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지금까지 마술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술사의 능력은 언제나 마술사의 개인 소지품, 특히 더럽거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을 통해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행한 능력은 전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는 모습과 이를 통하여 병이 낫고,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12절에는 그들이 익히 보아 왔던 마술사적 치유 방법이 등장합니다. 곧‘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는 행위’입니다. 이는 바울을 통하여 믿음을 받아들인 에베소 성도들이 아직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적 개념을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지 않으시고, 그런 방법 속에서도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20-22절을 봅시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이 말씀은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병을 고침 받는 현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이 여인의 행위도 당시에 만연했던 미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행위 자체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은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내 옷자락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15절에도 비슷한 경우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능력이 소문나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베드로가 지나는 길 가에다 진열하듯 뉘였습니다. 혹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면 나을까라는 요행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병자들이 다 나았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도 강조하는 것은 ‘그림자만 덮여도 병이 낫겠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이 합하여 질 때 하나님의 능력은 비할 바 없이 ‘희한한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믿음의 창고를 짓고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실천이 합하여지는 것입니다. 본문10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마지막 부분인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부터 희한한 능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결론인 20절에서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고 증언합니다. 즉 성도가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비결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할 것은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11절은 “바울이 희한한 능력을 행하였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13-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신비한 능력을 본 어떤 마술사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다가 악귀에게 된통 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에베소에는 마술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술사란, 일정한 주문을 외움으로써 귀신의 힘을 빌어 신통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술사들은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했고 귀신을 내쫓기도 했는데 특히 악귀를 내쫓는 일이 가장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마술사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마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행하는 능력을 본 마술사들이 탄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을 바울이 행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흉내를 내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유대인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실험을 해볼 생각으로 악귀 들린 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하고 호령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악귀가 대답을 한 것입니다. 악귀는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면서, 오히려 그들을 짓눌러버렸습니다. 귀신은 영의 세계에서 이름도 없는 신인들에게 조롱당함을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실컷 두들겨 맞고는 가까스로 도망쳤습니다.
악귀가 대답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 속에서 영적인 세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귀는 ‘예수님’의 이름을 즉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에서 강력한 영적인 능력자 ‘바울’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쫓아내려고 시도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습니다. 마가복음9:28-29절을 봅시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사단의 힘을 정복할 수 없음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능력을 제압할 수 있는 길은 ‘기도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왕래하는 통로는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려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기도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기도 없이 재능이나 말씀이나 찬양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사단의 조롱만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종합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능력, 사단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들입니다. 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관리하고 좋은 결과들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을 결산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길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깨닫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으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바르게 행사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곧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는 능력은 우리의 대적인 사단의 세력을 결코 제압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결은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능력으로 세상을 이겨나갑시다.
*** 들어가는 말
사도행전 19:8-20,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넓은 포도원을 가진 사람이 많은 일꾼들을 데리고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그 일꾼들 가운데는 일을 아주 지혜롭게 하는 비범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청년을 데리고 포도원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어느 듯 하루해가 기울고 일꾼들이 품값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노임이었습니다. 그러자 일꾼들이 일은 하지 않고 주인과 함께 이야기나 했던 청년에 대하여 항의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고작 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고, 주인과 이야기만 했는데 어째서 우리와 똑같은 노임을 받는 겁니까? 아무래도 불공평한 일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설명을 했습니다.
“당신들이 하루 걸려 한 일보다도 훨씬 많은 일을 이 사람은 두 시간에 해치웠습니다.”
인생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인생이 살아온 과정과 결과를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목적에 알맞은 시간과 재능들을 부여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으며 무엇을 남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받은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여 좋은 열매로 남기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비결’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먼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지방에서 전도하고 목회했던 3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는 교통과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던 항구 도시로서, 특히 이방 미신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미신의 정도가 지나쳐서 소위 ‘에베소 주문’ 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부적과 같은 것으로서 ‘이 주문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만사형통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술’이 사회에 보편적으로 성행했습니다.
‘에베소’라는 이름 자체의 의미가 ‘숭배자’, ‘신전을 지키는 자’, ‘여신의 문지기’등입니다. 이름만큼이나 에베소는 신전들로 유명했습니다. 주신(主神)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이름이 다이아나(Diana, 로마식 / 그리이스식 - 아데미)였습니다. 이 여신 숭배는 웅장한 신전, 제물의 상품화, 그리고 매춘의 합법화가 특징입니다. 지금도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각종 미신들과 이방 종교들, 그리고 기타 여러 사회적 병폐들이 만연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무려 3년간(주후53-56)에 걸쳐 에베소에 머물면서 교회를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바울이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강론했고, 비방하는 무리들을 인하여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이란,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연했던 세속적인 강연장을 말합니다. 바울에 관한 역사를 보면, ‘바울은 두란노라는 철학자가 강연을 하지 않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두란노 서원을 이용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 장소야 어찌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강퍅하고 패역한 도시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그 모든 것을 녹이기에 충분합니다. 히11:38절에서는, 바울과 같은 이런 사람을 두고 말씀하시기를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의 성도들이며,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성도는 영의 세계에서도 소문이 나며, 그의 삶에는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 있는 성도의 모습은 어떠한 것입니까?
2.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본문11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희한한 능력”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바울이 병든 자,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에게 안수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치료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성도들은 지금까지 마술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마술사의 능력은 언제나 마술사의 개인 소지품, 특히 더럽거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을 통해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행한 능력은 전혀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는 모습과 이를 통하여 병이 낫고,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나오는 12절에는 그들이 익히 보아 왔던 마술사적 치유 방법이 등장합니다. 곧‘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는 행위’입니다. 이는 바울을 통하여 믿음을 받아들인 에베소 성도들이 아직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마술적 개념을 버리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꾸지 않으시고, 그런 방법 속에서도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에베소 성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9:20-22절을 봅시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이 말씀은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병을 고침 받는 현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 자락을 만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는 믿음입니다. 사실 이 여인의 행위도 당시에 만연했던 미신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행위 자체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은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내 옷자락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15절에도 비슷한 경우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능력이 소문나자 사람들이 병자들을 베드로가 지나는 길 가에다 진열하듯 뉘였습니다. 혹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면 나을까라는 요행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이런 믿음을 가진 병자들이 다 나았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도 강조하는 것은 ‘그림자만 덮여도 병이 낫겠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이 합하여 질 때 하나님의 능력은 비할 바 없이 ‘희한한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믿음의 창고를 짓고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실천이 합하여지는 것입니다. 본문10절을 보십시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마지막 부분인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부터 희한한 능력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결론인 20절에서는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고 증언합니다. 즉 성도가 흥왕하여 세력을 얻는 비결은 “주의 말씀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할 것은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11절은 “바울이 희한한 능력을 행하였다”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13-1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의 신비한 능력을 본 어떤 마술사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다가 악귀에게 된통 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앞서 말했듯이, 에베소에는 마술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술사란, 일정한 주문을 외움으로써 귀신의 힘을 빌어 신통한 일을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마술사들은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했고 귀신을 내쫓기도 했는데 특히 악귀를 내쫓는 일이 가장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런 마술사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마술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행하는 능력을 본 마술사들이 탄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을 바울이 행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흉내를 내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들 중에 유대인 제사장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있었습니다. 자신들도 실험을 해볼 생각으로 악귀 들린 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하고 호령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악귀가 대답을 한 것입니다. 악귀는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면서, 오히려 그들을 짓눌러버렸습니다. 귀신은 영의 세계에서 이름도 없는 신인들에게 조롱당함을 참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옷이 벗겨지고 실컷 두들겨 맞고는 가까스로 도망쳤습니다.
악귀가 대답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 속에서 영적인 세계에도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귀는 ‘예수님’의 이름을 즉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에서 강력한 영적인 능력자 ‘바울’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 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쫓아내려고 시도하는 모든 사람을 비웃습니다. 마가복음9:28-29절을 봅시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사단의 힘을 정복할 수 없음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능력을 제압할 수 있는 길은 ‘기도 뿐’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왕래하는 통로는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려면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기도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기도 없이 재능이나 말씀이나 찬양의 능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사단의 조롱만 받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종합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성공적인 삶을 사는 능력, 사단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들입니다. 이 능력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을 잘 관리하고 좋은 결과들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을 결산할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길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깨닫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으로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바르게 행사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은 곧 기도입니다. 기도가 없는 능력은 우리의 대적인 사단의 세력을 결코 제압할 수 없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비결은 끊임없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능력으로 세상을 이겨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