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15회 작성일 2005-05-15 21:51
***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 / 골로새서 2:6-15

*** 들어가는 말

골로새서 2:6-15,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여러분, 사람에게 神의 性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일반 동물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생기인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신의 성품이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참람하다고 돌로 치려했습니다. 그때 요한복음 10:34-3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현대어성경) “너희 율법에도 ‘내가 너희에게 신이라 하였다.’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고 한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아버지께서 구별하여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말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라고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1:4절에서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넘치는 욕망 때문에 신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짐승처럼 무능하고 추악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돼지를 아무리 씻기고 꾸며놓아도 돼지는 얼마 못가서 다시 더러운 진흙탕에 뒹굴어 버립니다. 돼지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더러운 습성이 바뀔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본문에 나오는 골로새교회가 이런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걱정스러운 문제점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부터 23절까지에서 골로새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골로새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에 미혹되어 속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교회에 들어와 있는 유대주의자들,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고 그리스도 외에 더 첨가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새로운 지식, 새로운 종교의식과 풍습 등으로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미혹시키고 있었습니다. 본문 8절의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는 말씀이 바로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의 점성술은 학문의 꽃으로 여겨졌습니다.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황제였던 ‘쥴리어스 시이저’,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등이 별자리의 운세를 알아보지 않고는 한 발짝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어리석고도 나약한 모습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창세기 6:1-3절에서,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神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육체”(רשׂב / sarko.j) 란 단순한 ‘몸’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사악하게 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신의 성품을 잃어버리고 짐승처럼 변한 타락한 육체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머물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주신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자연으로부터 오히려 재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서 다시 머무시도록 할 수는 없는 것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능력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인간이 잃어버린 신의 성품을 회복시키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인간으로 오셨지만, 그 분의 육체는 신성으로 충만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신성을 회복시키시며 충만하게 하십니다. 본문9-10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깨우치고자 하시는 진리이며, 충만하게 채우고자 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신의 성품을 회복시키시며 충만하게 하시는 길은 무엇인지, 그 결과는 어떤 것인지 상고해 봅시다.

1. 먼저, 신의 성품을 회복하고 충만하게 하는 길을 찾아봅시다.

본문6-7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신의 성품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생활의 자세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터전으로 해서 신성의 충만을 위하여 네 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본적인 생활 자세인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서 사는 삶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습인 신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성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법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것이 신성 회복의 길입니다. 6절의 “그 안에서 행하되”라는 말은 어떤 특별한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상적인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예배할 때나 교회당에서의 신앙적인 행동, 성도들이 모였을 때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모든 환경과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길뿐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7절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신성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신성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충만이란, 모든 삶에서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의 힘으로는 진정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을 이루는 길은,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식물의 성장을 비유한 단어인 “뿌리를 박으며(에리조메노이)”라는 말은 ‘완료형’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되어진 것임을 나타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히브리서 9:11-12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을 버리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 즉 회개와 죄 사함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 ‘세움을 입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건물을 지어 올릴 때 사용하는 단어인 “세움을 입어(에포이코도메오)”라는 말은 ‘현재형’입니다. 즉 이미 뿌리를 박은 터 위에서 이제는 계속 건물을 지어 올려야 함을 말합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3:17-18절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성장은 지속적인 말씀의 습득과 말씀의 적용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세 번째, ‘믿음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나무가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하면서 튼튼하게 자라 태풍에도 걱정 없이 굳게 서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사도와 목회자들이 전하여준 그리스도와 복음의 진리 가운데 머무를 뿐만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도는 세상의 미혹에 너무나 쉽게 흔들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풍랑 이는 바다에서 물결 위를 걷는 베드로를 통하여, 도마의 의심을 통하여,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오늘의 성도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누가복음 21:34-35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하십니다. 매일 삶의 순간순간마다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과 대화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심하면 사단의 밥이 됩니다. 생명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끝까지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네 번째,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넘치게 하라”는 말은 ‘강물이 제방을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하며 ‘현재형’입니다. 이는 성도들의 감사 생활이 몸에 배어 일상화해야 함을 뜻합니다. 이것은 신앙에 대한 생활의 열매를 말합니다. 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당연히 열매도 많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영이 메마른 사람의 특징은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 감사는 더욱 큰 은혜를 부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으로 충만하기 위하여 성장하는 동안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8절 말씀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이것은 세상적인 지식과 이단 사상, 율법적인 신앙, 그리고 비 성경적인 전통을 말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당시의 위협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와 기독교인도 할례를 받으며 음식을 가려서 먹어야 한다는 ‘율법주의’ 그리고 복잡하고 무거운 짐이 되었던 ‘장로들의 유전’들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각종 이단들과 믿음에서 벗어난 행위 중심의 신앙, 즉 기복주의 신앙들과 성경을 왜곡한 교회법 등입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은 외식을 낳고 결국 알맹이 없는 껍질만 남기게 됩니다. 이것은 속이 빈 쭉정이와 같습니다. 진정한 생명의 신앙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예배도 섬김도 봉사도 헌금도 시간도 자신이 중심이 되는 신앙이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겉치레의 신앙은 모두가 외식이며 불신앙입니다. 오직 우리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야 합니다.

2. 신의 성품으로 충만하게 된 결과는 무엇입니까?

본문12-15절까지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신성의 충만함으로 나타나는 결과의 일부분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방인으로서 무 할례 자였던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례하여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핵심만 요약하면, 죄 사함과 부활과 영생입니다. 이것은 미래의 세상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그리스도인만의 충만이며 능력임을 강조합니다.

말씀을 요약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길은 출발 지점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이 길은 예수님을 믿기 위한 초보자의 길이 아니라, 능력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길입니다. 그 길은 튼튼한 거목이 뿌리를 깊이 박고, 심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듯이,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자라서 세상의 환난과 고난과 두려움과 유혹의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도록 성숙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생활 속에서 맺히는 것입니다.

이 길의 종착점은 인류 역사 최대의 이벤트가 될 대 심판을 통과하여 이르게 되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최대의 영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육신으로 살 동안에도 기쁨과 평안과 능력의 삶을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점점 더 신앙을 지켜가기가 힘든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믿음의 능력이 없는 형식적인 신앙이 판을 칠 것이며, 성도 서로 간에도 관심과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대세의 큰 강물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힘이 들겠지만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며 도와가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충만함과 영광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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