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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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4-30 00:08
***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 시편 55:16-23
** 들어가는 말
시편 55:16-23,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20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가 사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고 하셨습니다.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고 가족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중국인들이 이런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 글자를 만들었는지, ‘사람 인(人)’자를 ‘둘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도록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마4:4)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위치만 니’는 젊었을 때 몸이 많이 약하여 의사로부터 ‘청년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건강을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꿈을 꿨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가운데 이를 즈음 큰 바위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이 바위를 옮겨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물이 불어 네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련?\"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물이 점점 불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가 안보일 만큼 물이 불어 올랐고, 그는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병을 날마다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청년시절을 못 넘기고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중국 기독교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큰 발자취를 남기며 80이 넘도록 살았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고난의 가시는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종종 파선된 배의 판자로 해안에 도달하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서 물통을 빼앗아 버리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물의 근원에서 마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이 의지하는 지주를 제거하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땅에 넘어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지팡이가 되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 중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맡겼던 사람이 ‘다윗’왕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도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맡기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삶이었지만, 또한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블레셋’이 침략해 왔을 당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겁에 질려 싸우기를 포기하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죽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은 국민들의 총애를 받았으나,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다윗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위협이 끝나자 이제는 왕위 찬탈을 노리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모반을 받아 또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본시는 압살롬이 반역할 당시, 친한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모사요 비서였던 ‘아히도벨’의 배반을 당하고서, 비탄에 잠겨 하나님께 간구하는 다윗의 기도 시입니다. 사무엘하15:12절에서 압살롬의 반역 세력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사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 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여러 성도님들도 이러한 뼈아픈 배반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일들입니다. 다윗은 이 비극적인 배반의 아픔 속에서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의 인생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까?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을 사는가?’라는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하엘’이란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세상에서 구두 직공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하엘은 일하면서 몇 가지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인간에게 베풀어져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천사인 줄 모르는 이 구두직공에게 “한 일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하엘이 보니 그 신사 옆에 죽음의 천사가 있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1년을 계획하는 것을 본 미하엘은 “인간에게 베풀어 있지 않은 것”이 “죽음의 날짜”임을 알고 엷게 웃습니다.
우리의 인생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이유는 자신의 생명의 기한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는 우리의 인생 짐을 맡겨둘만한 곳도 맡아줄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짐조차 제대로지지 못하며, 남의 짐까지 맡아줄 힘은 더욱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기의 때가 되면 자신의 몸과 생명조차 제대로 가누기가 힘겹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진정한 쉼을 누릴 곳이 없습니다.
본문의 다윗을 보십시오. 왕위를 얻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보냈던 다윗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부귀영화가 아니라, 편안히 쉴 수 있는 평안이었습니다. 본문 앞쪽의 6-8절을 보십시오. (현대어성경)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달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훨훨 날아가 편히 쉬고 싶어요. 훨훨 날아가 저 드넓은 빈들에서 살고 싶어요. (셀라) 어서 빨리 편히 쉴 장막을 찾고 싶어요. 무지막지한 저 폭풍도, 미친 듯이 불어 대는 저 바람도 상관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얼마나 피곤한 인생이었으면 새처럼 날아서 멀리 도피하고 싶다고 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는 편안히 쉬고 싶을 때가 많지요? 그러나 이 세상은 염려와 근심이 될 만한 원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평화를 얻으려고 전쟁을 하고, 투쟁을 하고, 재물을 투자하고, 생명을 바칩니다. 그러나 평화는 점점 더 멀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얼마나 평안을 원합니까? 가정의 평안, 직장의 평안, 사회의 평안, 국가의 평안 등등. 찬송가 290장 1절의 가사입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이 세상에는 내 인생 짐을 맡기고 평안히 쉴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시편 146:3,4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했으며, 이사야 2:22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본문 앞의 1-15절까지 세상에서 자행되는 온갖 죄악된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유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탄식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9절에서는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라고 했으며, 11절에서는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반역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들과 친구의 배반이 뼈저리게 아픔을 느끼게 했고, 탄식이 솟구치게 했습니다. 평소에 미워하던 자라면 차라리 피해서 숨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대적한 ‘아히도벨’은 오랜 친구였으며, 주의 장막을 찾을 때에도 동행했던 친한 친구였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어디 한 두건입니까?! 특히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 외에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미가 7:5-7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리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이 말씀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절대 권력자인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라 안에서 배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며 평안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아들로부터 모반을 당하고,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신하로부터 배반을 당했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자인 왕이 평안을 누릴 수 없다면 어느 백성이 평안을 누리겠습니까? 세상에는 우리의 삶을 맡길 평안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삶의 맡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으며,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 짐을 어떻게 맡깁니까?
시편 37:5-7절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잠언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짐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까? 다윗은 뼈저린 탄식을 안고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우심을 간구 했습니다. 스스로 원수를 갚고자 힘을 규합하거나 전쟁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본문 16-17절을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사를 헤아리셨고, 다윗의 의로움과 간구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압살롬은 모사 아히도벨을 대장으로 삼고, 다윗 군대를 추격할 방도를 강구했습니다. 다윗의 모사로서 다윗과 가까이 하며, 충성을 다한 아히도벨인지라, 그는 누구보다 다윗의 병법과 전략에 능통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은 전쟁에 능한 장군이기 때문에 다윗이 전열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말고, 속전속결로 기습 공격하여 끝을 내자’고 했습니다. 이런 아히도벨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전략도 기도의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 다윗을 위하여, 다윗의 친구이자 전략가인‘후새’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후새’는 친구인 다윗을 위하여 압살롬의 진영에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새’를 통하여 ‘아히도벨’의 좋은 전략을 무산시키셨습니다. 사무엘하 17:14절을 봅시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이처럼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의 대결의 결과는 아주 분명합니다.
육신의 고난이나, 생활의 곤고함이나, 환난에 직면했을 때, 이 어두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빌립보서 4:6-7절(현대어성경)에서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십시오. 필요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남께 감사드리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안식을 줄 것입니다.”라고 권면하십니다.
미련한 인생들이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이겨 보려고 하지만, 역시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뿐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리려면, 자신의 무거운 인생의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인간의 연약성과 불완전성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있거든, 염려하거나 인생을 의지하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삶의 매 순간마다 주님을 부르며, 기도로 호흡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삶의 길을 맡아 주실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함께 읽읍시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잠시 심부름 온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인생길을 주인 되신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시편 55:16-23,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20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가 사는 모습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고 하셨습니다.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고 가족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중국인들이 이런 하나님의 법칙을 알고 글자를 만들었는지, ‘사람 인(人)’자를 ‘둘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살도록 영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마4:4)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위치만 니’는 젊었을 때 몸이 많이 약하여 의사로부터 ‘청년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건강을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꿈을 꿨습니다.
그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강 한가운데 이를 즈음 큰 바위에 걸려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이 배가 지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이 바위를 옮겨 버릴까? 그렇지 않으면 물이 불어 네가 지나갈 수 있게 해주련?\"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 물이 점점 불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바위가 안보일 만큼 물이 불어 올랐고, 그는 그 위를 유유히 지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병을 날마다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청년시절을 못 넘기고 죽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중국 기독교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큰 발자취를 남기며 80이 넘도록 살았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고난의 가시는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종종 파선된 배의 판자로 해안에 도달하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서 물통을 빼앗아 버리십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물의 근원에서 마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우리들이 의지하는 지주를 제거하기도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땅에 넘어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지팡이가 되셔서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고린도후서 1:8,9절에서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 중에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맡겼던 사람이 ‘다윗’왕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도 고난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의 삶을 맡기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는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삶이었지만, 또한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블레셋’이 침략해 왔을 당시, 이스라엘 군인들이 겁에 질려 싸우기를 포기하고 있을 때, 소년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죽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다윗은 국민들의 총애를 받았으나, 사울 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다윗의 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위협이 끝나자 이제는 왕위 찬탈을 노리는 아들 ‘압살롬’으로부터 모반을 받아 또 다시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본시는 압살롬이 반역할 당시, 친한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모사요 비서였던 ‘아히도벨’의 배반을 당하고서, 비탄에 잠겨 하나님께 간구하는 다윗의 기도 시입니다. 사무엘하15:12절에서 압살롬의 반역 세력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제사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 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여러 성도님들도 이러한 뼈아픈 배반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일들입니다. 다윗은 이 비극적인 배반의 아픔 속에서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의 인생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까?
톨스토이의 ‘인간은 무엇을 사는가?’라는 작품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하엘’이란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벌로 세상에서 구두 직공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하엘은 일하면서 몇 가지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인간에게 베풀어져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신사가 천사인 줄 모르는 이 구두직공에게 “한 일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하엘이 보니 그 신사 옆에 죽음의 천사가 있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1년을 계획하는 것을 본 미하엘은 “인간에게 베풀어 있지 않은 것”이 “죽음의 날짜”임을 알고 엷게 웃습니다.
우리의 인생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이유는 자신의 생명의 기한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는 우리의 인생 짐을 맡겨둘만한 곳도 맡아줄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짐조차 제대로지지 못하며, 남의 짐까지 맡아줄 힘은 더욱 없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기의 때가 되면 자신의 몸과 생명조차 제대로 가누기가 힘겹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진정한 쉼을 누릴 곳이 없습니다.
본문의 다윗을 보십시오. 왕위를 얻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보냈던 다윗에게는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부귀영화가 아니라, 편안히 쉴 수 있는 평안이었습니다. 본문 앞쪽의 6-8절을 보십시오. (현대어성경) “비둘기처럼 날개라도 달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훨훨 날아가 편히 쉬고 싶어요. 훨훨 날아가 저 드넓은 빈들에서 살고 싶어요. (셀라) 어서 빨리 편히 쉴 장막을 찾고 싶어요. 무지막지한 저 폭풍도, 미친 듯이 불어 대는 저 바람도 상관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요.” 얼마나 피곤한 인생이었으면 새처럼 날아서 멀리 도피하고 싶다고 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는 편안히 쉬고 싶을 때가 많지요? 그러나 이 세상은 염려와 근심이 될 만한 원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진정한 평화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세상은 평화를 얻으려고 전쟁을 하고, 투쟁을 하고, 재물을 투자하고, 생명을 바칩니다. 그러나 평화는 점점 더 멀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얼마나 평안을 원합니까? 가정의 평안, 직장의 평안, 사회의 평안, 국가의 평안 등등. 찬송가 290장 1절의 가사입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이 세상에는 내 인생 짐을 맡기고 평안히 쉴 곳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시편 146:3,4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했으며, 이사야 2:22절에서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본문 앞의 1-15절까지 세상에서 자행되는 온갖 죄악된 일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유가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현실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탄식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9절에서는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라고 했으며, 11절에서는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반역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들과 친구의 배반이 뼈저리게 아픔을 느끼게 했고, 탄식이 솟구치게 했습니다. 평소에 미워하던 자라면 차라리 피해서 숨을지언정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을 대적한 ‘아히도벨’은 오랜 친구였으며, 주의 장막을 찾을 때에도 동행했던 친한 친구였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심정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런 일들이 어디 한 두건입니까?! 특히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사랑할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 외에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미가 7:5-7절을 봅시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리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이 말씀은 믿고 의지할 대상이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절대 권력자인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나라 안에서 배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며 평안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아들로부터 모반을 당하고,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신하로부터 배반을 당했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자인 왕이 평안을 누릴 수 없다면 어느 백성이 평안을 누리겠습니까? 세상에는 우리의 삶을 맡길 평안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삶의 맡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으며, 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 짐을 어떻게 맡깁니까?
시편 37:5-7절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잠언 16:3절에서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인생 짐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까? 다윗은 뼈저린 탄식을 안고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도우심을 간구 했습니다. 스스로 원수를 갚고자 힘을 규합하거나 전쟁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본문 16-17절을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인생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행사를 헤아리셨고, 다윗의 의로움과 간구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는데 성공한 압살롬은 모사 아히도벨을 대장으로 삼고, 다윗 군대를 추격할 방도를 강구했습니다. 다윗의 모사로서 다윗과 가까이 하며, 충성을 다한 아히도벨인지라, 그는 누구보다 다윗의 병법과 전략에 능통했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은 전쟁에 능한 장군이기 때문에 다윗이 전열을 가다듬을 틈을 주지 말고, 속전속결로 기습 공격하여 끝을 내자’고 했습니다. 이런 아히도벨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전략도 기도의 사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사람 다윗을 위하여, 다윗의 친구이자 전략가인‘후새’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후새’는 친구인 다윗을 위하여 압살롬의 진영에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후새’를 통하여 ‘아히도벨’의 좋은 전략을 무산시키셨습니다. 사무엘하 17:14절을 봅시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은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파하기로 작정하셨음이더라.” 이처럼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의 대결의 결과는 아주 분명합니다.
육신의 고난이나, 생활의 곤고함이나, 환난에 직면했을 때, 이 어두운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빌립보서 4:6-7절(현대어성경)에서 “걱정에 싸여 지내지 말고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기도하십시오. 필요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남께 감사드리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인간의 이해를 훨씬 더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의지할 때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안정시키며 안식을 줄 것입니다.”라고 권면하십니다.
미련한 인생들이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이겨 보려고 하지만, 역시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일 뿐입니다. 사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리려면, 자신의 무거운 인생의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으며, 또한 인간의 연약성과 불완전성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있거든, 염려하거나 인생을 의지하려하지 말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삶의 매 순간마다 주님을 부르며, 기도로 호흡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되셔서 모든 삶의 길을 맡아 주실 것입니다. 본문 22절을 함께 읽읍시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도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잠시 심부름 온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인생길을 주인 되신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