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사랑을 확인합시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658회 작성일 2005-10-02 17:42
*** 사랑을 확인합시다. / 요 21:1-7, 15-17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21:1-7, 15-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 15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

밥알보다 작은 돌 하나 때문에 이혼한 신혼부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날따라 직장 상사에게 꾸중을 들어 마음이 불편한 새신랑이 있었습니다. 퇴근한 신랑이 밥상을 받아 첫 숟갈을 뜨는데 그만 돌을 씹고 말았습니다. 신랑은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다 둔 거야, 밥도 제대로 못하나?” 인내심이 없는 신부가 맞불작전으로 받아넘겼습니다. “남자가 쫀쫀하게 그깟 일로 화를 내요?” 연이어 신랑의 고함소리 “잘못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웬 말대꾸야.” 입을 삐죽이는 신부 “밴댕이 소갈 모리 같은 사람…” 아내의 말대꾸에 화가 난 신랑이 신부의 뺨을 때렸습니다. 보따리를 챙기며 화를 삭이지 못하는 신부가, “우린 완전히 실패한 결혼이야. 맞고는 못살지.” 결국 이 신혼부부는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모래알만한 돌 하나가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랑의 고갈이 두 사람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남편이 조금만 더 인내하고 아내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불행은 없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54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어느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친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편이 밖에서 일하다가 흙투성이인 작업용 장화를 신은 채로 집으로 왔습니다. 씻기 위해 세면장으로 들어서자 깨끗하게 잘 청소된 바닥이 금세 흙덩어리들로 지저분해졌습니다. 그의 아내가 불쾌하게 생각하리라 생각하면서 친구가 말했습니다.
“저 사람, 온통 흙투성이를 만드는 군요.”  “그래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빗자루를 가지러 갔습니다.
“하지만 그 장화가 그이도 데리고 오지요.”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담긴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후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이 두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사랑 안에서 살고 있음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둘이 아니라 하나로 만드셨기 때문에 서로 사랑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2:2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것이지요. 사랑의 근원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도 사랑을 원하십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화해의 제물로 내어주시기까지 하셨지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확인하기를 원하십니다. 마음속의 사랑, 입술의 사랑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실제적인 사랑을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을 확인하시려고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전체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본문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위기의 때에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며 도망쳤던 도망자였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열 제자도 도망자이며 실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얼마 전만 하더라도 예수님이 왕이 되시는 것을 상상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에 처형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꿈을 잃어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들 식으로 말하면 ‘이젠 다 틀렸다. 다시 고기나 잡아먹고 살아야지. 나는 고기나 잡으러 갈란다.’라는 절망의 표현입니다. 그러자 함께 있던 다른 여섯 명의 제자들도 합세하여 갈릴리로 떠났습니다. 그 날, 3년 만에 배에 올라 그물을 던져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사이 실력이 녹이 슬었는지, 물고기들이 영리해졌는지 도무지 한 마리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기라도 많이 잡혔으면 마음에 위로라도 될 터인데 ‘재수가 없으며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실망감만 더하고 새벽바람이 더 차게 느껴졌습니다.

빈 배로 돌아오는 새벽의 갈릴리 호숫가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빈 배로 항구에 들어서는 제자들에게  “얘들아, 고기 좀 잡았느냐?”라는 따뜻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자들은 별 생각 없이 “없습니다.”라고 응수했습니다. 그러자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보아라. 그러면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했고, 다음 순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잡혔음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3년 전에 자신들이 부름을 받을 때의 일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 때의 상황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호숫가에 서 계신 분이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님임을 알았습니다.

호숫가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숯불 위에서 생선이 굽히고 있었으며, 떡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와서 아침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누구십니까?’라고 물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심을 너무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손수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주목해 보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자신이 며칠 전에 예수님이 잡히셔서 신문을 받으실 때 자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곧 닭이 울자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고,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을 것입니다(눅 22:61-6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겨우 대답한다는 말이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이 아십니다.” 감히 예전처럼 호언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보시면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갈릴리로 오셨습니까?

무엇이 답답하셔서 부활하신 주님이 낙향한 제자들을 찾아 그 새벽에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기다리셨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니라, 오직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1절에서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셨으며, 마태복음 28:20절에서는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꿈을 잃어버리고 허탈감에 빠져 생계를 염려하며 그물을 던지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다시 꿈을 열어주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에게 심한 부담감을 가지게 하는 예수님의 질문과 당부의 말씀은 베드로의 잃어버린 꿈을 다시 찾아주시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시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흔한 이 이름을 구분하기 위해서 ‘요한의 아들’이라고 덧붙이는 것입니다. 마치 ‘유다’에게 그 출신지인 ‘가룟’을 붙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는 호칭은 자연인으로서의 이름입니다. 즉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영적인 아무런 소망도 꿈도 없던 때를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라는 ‘반석’이라는 뜻의 이름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인정받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반석으로 하여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물음은 베드로의 꿈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사랑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범위가 아주 넓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보다 더”라고 번역된 단어는 꼭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로는 ‘more than these’라고 ‘지시 대명사’를 사용해서 번역했습니다. 원어인 ou|to\"  (houtos)는 사람, 장소, 물체 등을 광범위하게 지시하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것은 ‘네게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며, ‘네 소득이나 눈앞의 이익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이며, ‘네가 사는 어떤 삶의 자리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물음이 2000여 년 전의 갈릴리 호숫가의 베드로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주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물으시며, 동일하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고, 안기고, 좋아하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우리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사랑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잠언 8:17절 이하에서 ‘지혜’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시면서 10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을 주님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려고 사랑을 찾고 계십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단편 예화) 우리가 사랑으로 응답합시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현합시다. 조금 더 아껴주고 배려하며, 위로하고, 격려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의 자리를 밝혀서 주님을 사랑함을 생활로 나타내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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