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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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9-25 22:25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 사사기 7:1-8
** 들어가는 말
사사기 7:1-8,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 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인력시장’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일정한 직업이 없이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에 어느 특정한 장소에 하나 둘 모여듭니다. 잠시 후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하고 ‘블록적상 두 사람’, ‘철근공 다섯 사람’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여기저기서 서둘러 모이고 필요한 사람을 골라 태운 승합차는 떠납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타일공, 목공, 그야말로 막노동꾼 등,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일을 떠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은 밝아오고 아직 남은 사람들은 초조하게 자신을 찾는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만일 더 이상 찾는 사람이 없다면 그날은 온 종일 거리를 헤매야 할 것입니다.
이와 흡사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1-16절에서 ‘포도원 일군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시작하십니다. 주인은 오전 6시에 인력시장으로 가서 일군들을 찾아 일당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9시에 나가보니 인력시장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상당한 보상’만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12시, 오후3시 계속해서 일꾼들을 찾아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나가는 오후 5시에 그때까지도 인력시장 근처를 얼쩡거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주인은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일꾼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일꾼들을 찾으시며 부르시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0:2절에서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필요한 일꾼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되게 일할 일군을 찾으시며 부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군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입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 사람의 연합군이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당시의 사사였던 ‘기드온’은 백성들 중에 용사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사람만을 선발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백성 중에서 전쟁을 수행할 정예 부대를 선발하게 됩니다. 본문은 그 선발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은 3만2천명이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과 연합한 미디안 군사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고 했습니다.(삿8:10 연합군의 최소 인원이 십삼만 오천 명. 적어도 3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삼십만 對 삼만 이천, 십분의 일의 병력으로 싸운다는 것은 고대 전쟁에서는 힘에 겨운 싸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드온아 너를 쫓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이라고 하시면서, ‘병력이 너무 많으니까 줄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친히 용사 선발 시험을 주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수행능력시험의 1차 시험은 ‘믿음 시험’즉 하나님께 대한 신뢰도 test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3절). 이때에 2만2천명이 집으로 돌아가고 만 명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하나님께서는 30만 명에 대항하여 싸울 사람으로 만 명도 많으니 더 추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차 수행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차 시험은 ‘경계력 시험’이었습니다. 즉 ‘깨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97%의 사람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물에 입을 넣고 마셨습니다. 오직 3%의 사람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습니다. 이는 ‘주의 깊은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300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많은 사람이 건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소수의 정예 신앙인들에 의해 건설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고,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뽑으시는 사람을 봅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선택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사람의 숫자나 사람의 능력의 정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일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하시고 훈련시키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담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3만 2천명 중에서 두려워하는 자를 가려내고 일만 명을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는 자가 이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두려워 떠는 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사야 12:2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했으며, 요한일서 4:18절에서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두려워 떤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려움은 전염병처럼 퍼져 다른 군사들의 사기까지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성도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사장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4:23절에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입니다. 이 군대의 사령관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대장 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복음을 위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 1:6-9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거듭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35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고 하시며 11:38절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30만 명의 용사 앞에서 300명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강력하고 담대하고 용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론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이해할 수 없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역대하 16:9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과 이해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불신(不信)자 2만 2천명을 골라내고서도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은 일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2차 대상자인 만 명에게 모두 물을 먹게 했는데, 97%인 9천 7백 명이라는 절대 다수가 냇가에 엎드려 입을 냇물에다 대고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군데군데에 무릎을 꿇고 물을 손으로 퍼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모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수는 3%인 3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발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2차 시험인 무릎을 꿇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것이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들은 경계력을 갖춘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마시면서도 주변을 경계할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몸과 정신이 더불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2차 시험까지 거쳤지만 이것이 시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선발 시험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평상시의 습관대로 행동했을 뿐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21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디도서 3:14절에서는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평상의 삶에서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우리에게 주심은 언제라도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하심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준비 상태는 평상시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에베소서 4:15절의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처럼 말과 행동, 마음 씀씀이까지 성장하여 주님의 요구에 합당한 선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러면 굳이 300 명만을 선택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군사가 많아서 승리하면 이는 당연히 승리의 이유를 많은 군사력에 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적군에게 동일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으며, 환경과 여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상 14:6절에서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으로 교만하지 않게 하심입니다. 사람들이 숫자적으로나 군사력의 우세로 이기게 되면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교만이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며, 스스로를 믿는 교만입니다.(렘48:29 /교만의 종류,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그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약4:13-17/자기 확신 죄, 고전1:26-29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이제 말씀을 종합해서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일에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며, ②영적으로 깨어 있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③그러면서도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다시 줄이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삽니까?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환경과 여건인 권력과 재물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이 남기신 삼백 명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전쟁을 위한 무기로 지급 받은 것은 칼이나 방패, 창이나 활이 아닌, 나팔과 항아리 하나와 횃불이 전부였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모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사사기 7:1-8,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 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인력시장’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일정한 직업이 없이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둑어둑한 이른 새벽에 어느 특정한 장소에 하나 둘 모여듭니다. 잠시 후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하고 ‘블록적상 두 사람’, ‘철근공 다섯 사람’ 이렇게 소리를 칩니다. 여기저기서 서둘러 모이고 필요한 사람을 골라 태운 승합차는 떠납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타일공, 목공, 그야말로 막노동꾼 등,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일을 떠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날은 밝아오고 아직 남은 사람들은 초조하게 자신을 찾는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만일 더 이상 찾는 사람이 없다면 그날은 온 종일 거리를 헤매야 할 것입니다.
이와 흡사한 내용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1-16절에서 ‘포도원 일군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시작하십니다. 주인은 오전 6시에 인력시장으로 가서 일군들을 찾아 일당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9시에 나가보니 인력시장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상당한 보상’만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12시, 오후3시 계속해서 일꾼들을 찾아서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나가는 오후 5시에 그때까지도 인력시장 근처를 얼쩡거리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주인은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일꾼을 찾으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할 일꾼들을 찾으시며 부르시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0:2절에서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필요한 일꾼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되게 일할 일군을 찾으시며 부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일군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미디안’ 연합군과의 전쟁입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그리고 동방 사람의 연합군이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당시의 사사였던 ‘기드온’은 백성들 중에 용사들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꼭 필요한 사람만을 선발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백성 중에서 전쟁을 수행할 정예 부대를 선발하게 됩니다. 본문은 그 선발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여든 이스라엘 백성은 3만2천명이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과 연합한 미디안 군사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았다고 했습니다.(삿8:10 연합군의 최소 인원이 십삼만 오천 명. 적어도 30만 명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됨.) 삼십만 對 삼만 이천, 십분의 일의 병력으로 싸운다는 것은 고대 전쟁에서는 힘에 겨운 싸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드온아 너를 쫓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이라고 하시면서, ‘병력이 너무 많으니까 줄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친히 용사 선발 시험을 주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할 수행능력시험의 1차 시험은 ‘믿음 시험’즉 하나님께 대한 신뢰도 test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는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3절). 이때에 2만2천명이 집으로 돌아가고 만 명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하나님께서는 30만 명에 대항하여 싸울 사람으로 만 명도 많으니 더 추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차 수행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차 시험은 ‘경계력 시험’이었습니다. 즉 ‘깨어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항상 깨어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97%의 사람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물에 입을 넣고 마셨습니다. 오직 3%의 사람만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습니다. 이는 ‘주의 깊은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300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많은 사람이 건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소수의 정예 신앙인들에 의해 건설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고,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하여 뽑으시는 사람을 봅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선택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사람의 숫자나 사람의 능력의 정도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일에 적합한 사람들을 선별하시고 훈련시키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담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 산에서 떠나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3만 2천명 중에서 두려워하는 자를 가려내고 일만 명을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는 자가 이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두려워 떠는 자”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사야 12:2절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했으며, 요한일서 4:18절에서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두려워 떤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려움은 전염병처럼 퍼져 다른 군사들의 사기까지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쓰십니다. 성도는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사장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4:23절에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입니다. 이 군대의 사령관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대장 되신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복음을 위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수아 1:6-9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거듭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35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고 하시며 11:38절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30만 명의 용사 앞에서 300명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강력하고 담대하고 용기가 있다 하더라도 이론상으로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이해할 수 없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역대하 16:9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과 이해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불신(不信)자 2만 2천명을 골라내고서도 아직도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은 일만 명을 물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2차 대상자인 만 명에게 모두 물을 먹게 했는데, 97%인 9천 7백 명이라는 절대 다수가 냇가에 엎드려 입을 냇물에다 대고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군데군데에 무릎을 꿇고 물을 손으로 퍼서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로 모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수는 3%인 300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발된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
2차 시험인 무릎을 꿇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것이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이들은 경계력을 갖춘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물을 마시면서도 주변을 경계할 수 있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몸과 정신이 더불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2차 시험까지 거쳤지만 이것이 시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선발 시험의 특징입니다. 이들은 평상시의 습관대로 행동했을 뿐이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21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디도서 3:14절에서는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평상의 삶에서 준비가 되어 있는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우리에게 주심은 언제라도 쓰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하심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준비 상태는 평상시의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에베소서 4:15절의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는 말씀처럼 말과 행동, 마음 씀씀이까지 성장하여 주님의 요구에 합당한 선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러면 굳이 300 명만을 선택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구원의 능력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군사가 많아서 승리하면 이는 당연히 승리의 이유를 많은 군사력에 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적군에게 동일하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자 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으며, 환경과 여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사무엘상 14:6절에서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람으로 교만하지 않게 하심입니다. 사람들이 숫자적으로나 군사력의 우세로 이기게 되면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교만이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며, 스스로를 믿는 교만입니다.(렘48:29 /교만의 종류,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 자고와 오만과 그 자긍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약4:13-17/자기 확신 죄, 고전1:26-29 /자랑하지 못하게 하심)
이제 말씀을 종합해서 정리해 봅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일에 필요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① 담대한 믿음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며, ②영적으로 깨어 있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③그러면서도 마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다시 줄이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삽니까?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적인 환경과 여건인 권력과 재물을 의지합니까? 하나님이 남기신 삼백 명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준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전쟁을 위한 무기로 지급 받은 것은 칼이나 방패, 창이나 활이 아닌, 나팔과 항아리 하나와 횃불이 전부였습니다. 여러분의 손에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모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로 말미암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서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