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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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08-08 18:13
***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 / 다니엘 6:1-10
**들어가는 말
다니엘 6:1-10, “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원망어린 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고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 말씀으로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들여서 교회를 짓고 산학을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께 대한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찬송가 539장입니다.
똑 같은 일이었지만 그의 삶이 변화되기 전과 변화된 후의 관점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없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수많은 유혹과 미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의 거듭남입니다. 영의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의 삶이 이전과 전혀 달라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겪었던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현대어성경)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거듭난 사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이전의 세상적인 삶에 젖어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영적인 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침체의 시기가 길어지면 영이 질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즉 나의 영이 주님을 닮아가는 ‘새롭게 됨’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육신의 삶의 변화’가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음을 경험하는 삶’이란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즉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말씀의 다니엘처럼,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치고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삶을 말합니다.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영국의 대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깃불을 주시고,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삶을 변화시키는 감사의 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영국의 한 여성이 종신 금고형을 받아 평생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속에서 예수를 믿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시(詩)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시었네. 나는 이 좁은 새장의 한 마리 새, 주님이 나를 가두셨네. 나 할 일 없기에 종일 노래하노라. 찬송하노라. 찬송 외에 달리할 것 없네. 찬송하라고 나 여기 가두셨으므로 나의 영은 주를 향해 종일 찬송하네. 십 배로 찬송 부르네. 백배로 찬송 부르네. 찬송하며 눈을 뜨고 찬송하며 잠들고 찬송하며 숨지리라.”
비록 몸은 자유를 잃었지만 누가 그녀를 불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불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삶을 만들어 가고 가꾸는 삶의 예술가들입니다. 이는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기’(고후3:17) 때문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삶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며,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길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입니다. 화려한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도 ‘인생이 왜 이렇게 괴롭고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딱지같은 오막살이 같은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얻는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에는 열 명의 문둥병자가 등장합니다. 열 명이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문둥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눅17:18)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한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그의 병과 함께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변화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먼저, 다니엘의 삶을 통하여 우리를 살펴봅시다.
다니엘은 유대인이며, 남 유다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포로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킨 적국의 노예 신분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뛰어난 지혜와 학식은 바벨론에서 조차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왕을 통치아래 나라를 다스리는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방백과 총리 가운데서도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출세는 본토 출신의 다른 총리들에게 미움을 사게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부정을 찾아내어 파멸시키려 했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다니엘에게서 부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흔들림이 없이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본문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며, 흔들림이 없이 기도하며 감사하는 자세. 이것이 삶과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도들은 세상과의 타협을 별로 죄악시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위하여 어쩔 수 없다.’면서 세상과 타협을 합니다. 오늘 같은 날도 주님의 날인줄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위하여 써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죄에 대하여도 잠시 눈을 감습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때에도 많은 성도들이 ‘육신은 비록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만 나의 마음은 하나님만을 경외한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변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15-17절을 봅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이 위협받는 절망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상시와 다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섬김의 모습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진다면 진실한 신앙의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전에 먼저 이렇게 자신을 향한 신앙이 진실한지를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셨으며, 요셉에게는 13년의 고통의 기간을 주셨으며, 야곱에게는 형에 대한 두려움과 부를 통하여 보셨으며, 모세는 80년을, 바울에게는 14년의 시간을 두고 연단과 변화의 시간을 주셨으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는 불임과 멸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신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결단코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이 없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자세는 삶의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나타난 것입니다. 사자 굴에 던져 졌으나 이미 사자들의 입은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에 의하여 봉해진 후였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역시 이런 엄청난 환경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기도하며 찬양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감옥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벗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온 가족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태동시켰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을 얻었으며, 더 많은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자신의 병고침과 함께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을 향하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하는 삶의 자세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도하신 변화의 능력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지금의 삶의 환경이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짜증내고, 불평하고, 원망해도 단 한 가지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이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성실하게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며 진심으로 감사해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가로서 유명한 기도의 사람이었던 ‘로우’(Law William 1686-1761)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얼른 보기에는 불행한 재화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도리어 축복의 결과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품을 많이 내어 주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무엇이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하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선의의 사실로 알고 받아들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 증후군 (Adam and Eve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낙원에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낙원에 있지 않고, 하나님 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병입니다. 그리스도인 같으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모르고 감사가 없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실험적으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을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순종과 감사야말로 우리의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고 기도하며 감사의 생활로 인하여 복된 삶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다니엘 6:1-10, “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8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 반항심. 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들기며 일하다니… 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원망어린 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고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 말씀으로 ‘거듭남’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에드워드에게는 “그렇다. 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력한 소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성령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 되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들여서 교회를 짓고 산학을 하여 목사안수를 받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첫날. 그는 주님께 대한 첫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가 찬송가 539장입니다.
똑 같은 일이었지만 그의 삶이 변화되기 전과 변화된 후의 관점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입니다. 이러한 삶의 변화가 없이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수많은 유혹과 미혹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의 거듭남입니다. 영의 거듭남은 변화가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의 삶이 이전과 전혀 달라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을 겪었던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사람이 됩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현대어성경)라고 고백합니다.
이처럼 거듭난 사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이전의 세상적인 삶에 젖어 살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영적인 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침체의 시기가 길어지면 영이 질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즉 나의 영이 주님을 닮아가는 ‘새롭게 됨’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을 복종시키는 ‘육신의 삶의 변화’가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날마다 죽음을 경험하는 삶’이란 자신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즉 내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본문말씀의 다니엘처럼,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치고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삶을 말합니다.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삶’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모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영국의 대 설교가인 ‘스펄젼’ 목사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깃불을 주시고, 전깃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는 삶을 변화시키는 감사의 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영국의 한 여성이 종신 금고형을 받아 평생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속에서 예수를 믿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시(詩)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하늘을 날지 못하게 하시었네. 나는 이 좁은 새장의 한 마리 새, 주님이 나를 가두셨네. 나 할 일 없기에 종일 노래하노라. 찬송하노라. 찬송 외에 달리할 것 없네. 찬송하라고 나 여기 가두셨으므로 나의 영은 주를 향해 종일 찬송하네. 십 배로 찬송 부르네. 백배로 찬송 부르네. 찬송하며 눈을 뜨고 찬송하며 잠들고 찬송하며 숨지리라.”
비록 몸은 자유를 잃었지만 누가 그녀를 불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불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삶을 만들어 가고 가꾸는 삶의 예술가들입니다. 이는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기’(고후3:17) 때문이며,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며 감사하는 삶의 열매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도 천태만상(千態萬象)이며, 자신이 걸어가는 인생길에 대한 반응도 가지각색입니다. 화려한 궁전 같은 집에 살면서도 ‘인생이 왜 이렇게 괴롭고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게딱지같은 오막살이 같은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얻는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누가복음 17:11-19절에는 열 명의 문둥병자가 등장합니다. 열 명이 모두 예수님의 은혜로 문둥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눅17:18)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한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그의 병과 함께 영혼까지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변화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먼저, 다니엘의 삶을 통하여 우리를 살펴봅시다.
다니엘은 유대인이며, 남 유다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포로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멸망시킨 적국의 노예 신분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뛰어난 지혜와 학식은 바벨론에서 조차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왕을 통치아래 나라를 다스리는 세 사람의 총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방백과 총리 가운데서도 왕의 특별한 총애를 받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출세는 본토 출신의 다른 총리들에게 미움을 사게 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부정을 찾아내어 파멸시키려 했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다니엘에게서 부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약점으로 잡아 죽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흔들림이 없이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본문 10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봅시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자신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며, 흔들림이 없이 기도하며 감사하는 자세. 이것이 삶과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성도들은 세상과의 타협을 별로 죄악시하지 않고, 오히려 ‘삶을 위하여 어쩔 수 없다.’면서 세상과 타협을 합니다. 오늘 같은 날도 주님의 날인줄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자신을 위하여 써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죄에 대하여도 잠시 눈을 감습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때에도 많은 성도들이 ‘육신은 비록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만 나의 마음은 하나님만을 경외한다.’고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변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좋을 텐데 하나님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12:15-17절을 봅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이 위협받는 절망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식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상시와 다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섬김의 모습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진다면 진실한 신앙의 삶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전에 먼저 이렇게 자신을 향한 신앙이 진실한지를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 하셨으며, 요셉에게는 13년의 고통의 기간을 주셨으며, 야곱에게는 형에 대한 두려움과 부를 통하여 보셨으며, 모세는 80년을, 바울에게는 14년의 시간을 두고 연단과 변화의 시간을 주셨으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에게는 불임과 멸시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기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신실한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결단코 자신의 삶에서 변화를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한 흔들림이 없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의 자세는 삶의 환경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나타난 것입니다. 사자 굴에 던져 졌으나 이미 사자들의 입은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에 의하여 봉해진 후였습니다. 다니엘의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역시 이런 엄청난 환경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도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기도하며 찬양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을 때, 감옥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벗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온 가족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태동시켰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을 얻었으며, 더 많은 자녀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자신의 병고침과 함께 영혼까지 구원받았습니다. 이 모두는 하나님을 향하는 성실한 순종과 감사하는 삶의 자세를 통하여 성령께서 주도하신 변화의 능력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지금의 삶의 환경이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짜증내고, 불평하고, 원망해도 단 한 가지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이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고 성실하게 순종하여 최선을 다하며 진심으로 감사해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가로서 유명한 기도의 사람이었던 ‘로우’(Law William 1686-1761)는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대답하겠다. 왜냐하면, 얼른 보기에는 불행한 재화같이 보이는 일이라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도리어 축복의 결과가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기도를 특별히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고, 금식을 자주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구제품을 많이 내어 주는 사람도 아니고, 절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의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항상 감사할 줄 알고, 무엇이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하려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의 선의의 사실로 알고 받아들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이브 증후군 (Adam and Eve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낙원에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낙원에 있지 않고, 하나님 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님을 떠나 있는 병입니다. 그리스도인 같으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모르고 감사가 없는 사람은 성도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실험적으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는 삶을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순종과 감사야말로 우리의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삶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하고 기도하며 감사의 생활로 인하여 복된 삶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