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인생의 고난, 도전적인 믿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628회 작성일 2006-02-21 23:53
*** 인생의 고난, 도전적인 믿음 / 벧전 4:12-19

**들어가는 말

벧전 4:12-19,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어느 목사님이 사업의 실패로 고통을 당한 성도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두 개의 보석을 보여 주면서 물었습니다. “두 개가 어떻게 보입니까?” “똑같이 보이는데요.”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러자 한 개를 내밀면서 “아, 이것이 색깔이 선명하고 빛이 아름답네요.”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예, 얼른 보기에는 크기나 색깔이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하나는 색이 좀 흐릿하고 하나는 색이 맑고 빛이 아름답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 흐릿해 보이는 보석은 8번 깎았고, 이 아름다운 보석은 80번을 깎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깎으시는 과정이지요. 많이 깎인 신앙인은 아름다운 빛을 발한답니다.”라며 격려했다고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5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고난은 결코 의외의 것도 아니며, 낯선 것도 아닙니다. 본문1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없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고난을 통하여 연단시키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5:8절에서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하십니다. 하물며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고난이 없겠습니까?

성경에서 인생의 고난을 ‘밤’으로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난은 신앙의 척도가 아닙니다. 고난과 징계는 다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징계가 고난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본문에서 말씀하는 고난은 징계로서의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숙을 위한 고난입니다.

성도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신앙이 좋은 사람은 만사형통하고 고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전서 2:20-21절에서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시며, 본문13절에서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욥에게서처럼 사단의 시기로 인한 유혹과 시련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세상 사람들과 다른 생각과 가치관과 생활로 인한 비난과 조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멀리해야 하고 절제해야 하는 고통도 있습니다. 이런 고난이 없는 성도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을 따르는 삶으로 인하여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을 피하고 싶습니까? 이 시간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성도에게 다가오는 고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인생의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가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생의 가시를 주십니까?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인생의 가시를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삶으로 승화하게 됩니다. 본문 앞의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의 예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사단의 가시’라고 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육신의 큰 고통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없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강하게 됨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고 고백합니다. 즉 바울에게 주신 고난의 의미는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내게 재물이 풍족하고, 큰 능력이 있다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교회를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지요? 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오늘 까지 신앙을 지켜오게 된 가장 큰 공헌은 재물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이름도 빛도 없이 가난함과 적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켜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옛 말에도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매 한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에게는 떡 하나 더 준 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마음인가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풍족한 생활 때문에 영혼을 망하게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잠언 13:24절에서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2:8절에서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십니다. 자식이 불행하게 되는 것을 원하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혹 사람은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9-11절을 봅시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성도들이 영원한 생명을 지켜가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더 유익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어떻게 고난을 대처해야 합니까?

고난을 즐거워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본문 13절에서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시며, 16절에서는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고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를 원하시는 표현입니다.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성도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결코 피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강풍이 불고 파도가 몰아칠 때에 항해하는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아십니까? 바람과 파도를 안고 곧 바로 나아갑니다. 만일 파도가 무섭다고 옆으로 피해가면 배는 옆구리에 파도를 맞아서 얼마 견디지 못하고 전복되거나 파손되어 버립니다.

폭풍이 불어오는 날, 자그마한 어촌에는 폭풍을 피하려는 배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평생을 바다에서 산 노련한 나이 많은 어부가 있었습니다. 늙은 어부는 아내와 자식들이 만류하는 것도 뿌리치고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먼 바다로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온 몸이 물에 젖으면서 거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았습니다.
날이 밝아오면서 폭풍은 물러갔습니다. 늙은 어부는 지친 몸으로 뱃머리를 돌려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항구에는 지난밤의 폭풍으로 모든 배들이 부서지거나 침몰했습니다. 그 어촌에서 부서지지 않은 배는 오직 늙은 어부의 배뿐이었습니다.

왜 항구에 정박한 배는 부서지거나 침몰했는데, 먼 바다로 나간 배는 안전했겠습니까? 파도는 깊은 바다를 달릴 때에는 별로 위력이 없습니다. 그 깊은 물을 다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파도의 종착지인 해안입니다. 일년 여 전에 동남아시아에 발생한 쓰나미의 위력을 보셨지요? 파도가 얕은 지역을 지나면서 위력이 세어지고 결국 해안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그래서 항구마다 방파제를 만들어 파도를 막는 것입니다. 늙은 어부는 그 이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폭풍을 맞서 먼 바다로 갔던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길은 고난에 맞서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적극적이고 도전적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동안에는 믿음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급한 일로 여행을 하다가 깊은 강을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건너가기는 해야겠는데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건너갈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너의 발을 붙들어 물에 빠지지 않게 해 줄 테니 나를 믿고 나아가거라.”고 응답하셨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만 막상 깊은 강물을 보고는 물 위를 걸어갈 용기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다면 이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물로 들어서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마지막 관문이 요단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로 요단강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요단강에 들어섰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을 밟고 설 때에 강의 물이 멈추어 서고 강바닥이 들어났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을 얻는 첫 관문인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칠일 동안 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곧 도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고난을 길을 주시는 것은 도전하여 이겨내고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10절을 봅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하십니다. 본문 13절 후반에서도 고난에 참예하는 목적을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고난에 참예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어려운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성도는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시련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도 뜸해지고, 기도생활도 멀어지고, 봉사나 섬김도 중단해 버립니다. 이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일 뿐입니다. 성도가 고난에 믿음으로 맞서면 사단도 물러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고난을 적극적으로 맞서서 이겨내야 하는 이유는 그 고난의 끝이 ‘영광스러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7-18절을 봅시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삶이 힘이 듭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본문 19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고 했습니다. 고난에 굴복하지 말고 담대하게 도전합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배에 더욱 힘쓰고, 기도에 더욱 힘씁시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 더욱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응답하시며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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