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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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있는 신앙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560회 작성일 2006-02-01 22:04
*** 양심 있는 신앙 / 마 11:20-27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1:20-27, (현대어성경) “20  예수께서는 이적을 가장 많이 행한 도시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자 이렇게 꾸짖으셨다. 21 `화가 있으라. 고라신아. 화가 있으라, 벳새다야! 너희에게 베푼 이적을 악한 도시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부끄러워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 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오히려 너희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것 같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네게 베푼 이적을 소돔에서 베풀었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날까지 여기에 남아 있을 것이다. 24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이 오히려 너보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25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다. 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여, 스스로 슬기롭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 진리를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27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내게 맡기셨습니다. 아버지만이 아들을 아시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려고 택한 사람들만이 아버지를 압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특별하게 주신 것이며,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국어사전에서는 ‘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바른 선을 명령하고 사악을 물리치는 통일적인 의식. 특히 자기의 행위에 관하여 선악과 바르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본연적이고 후천적인 자각’이라고 풀이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성도들에 대하여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딤전 3:9)고 했으며, 불신자들에 대하여는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고 했습니다. 즉 양심은 신앙을 떠나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이전에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는 이런 기본적인 양심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말씀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이유인즉 예수님께서 수많은 이적과 기사로 신적인 권능을 보여주신 마을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책망 받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세 지역은 갈릴리 북쪽에 가까이 모여 있는 성읍들입니다. 특히 벳새다는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의 고향입니다. 그런데도 이들 지역은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많이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믿음의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역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에베소서 4:1절에서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하시며, 빌립보서 1:27절에서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셨고, 골로새서 1:10절에서는 “주께 합당히 행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서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맛지족’들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내 머리가 흙 속에 있습니다.’ 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은혜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표할 때 자기 머리를 땅에 닿기까지 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머리가 흙 속에 들어갈 만큼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감사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주둥이를 닦는 사람’ 이라고 한답니다. 우리말로 하면, ‘입을 싹 씻는다.’ 는 뜻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시치미를 뗀다든지 혹은 모르는 척 하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미개인리하고 부르는 그들조차 받은바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양심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감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의 감사는 다릅니다. 기쁜 일에나 일이 잘 될 때에도 감사하지만, 때로는 불행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확실히 감사하는 것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먹고살기도 힘들 때에는 꽁보리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했고,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어도 마음만은 풍요로웠습니다. 60-70년대만 해도 입을 것,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심은 후했고,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여유도 있었습니다. 명절이나 잔치 때면 음식을 풍성하게 준비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즐겼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풍요로운 시대이며, 특히 오늘은 우리민족의 명절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명절이면 반드시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도록 명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주님께서도 그렇게 행하셨고, 사도들 역시 가난한 자들을 많이 배려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0절에서 바울은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양심 있는 신앙을 생각해 봅시다.

1. 감사는 양심 있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 되거나 도움을 받았을 때, 또는 마음이 기쁠 때 ‘감사’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감사’는 세상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들에게는 일반적인 감사가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초월적인 감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25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감사를 표현하시는 특별한 기도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기도가 시작되는 앞부분인 25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라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시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라는 말씀은 본문20-24절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고라신’, ‘가버나움’, ‘벳세다’와 같은 도시에서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들 고을들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많이 입은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이적은 이렇습니다. 마8:5-13,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 마8:14,15, 베드로의 장모 열병을 고치심/ 마8:16, 귀신을 쫓아내심/ 마9:20-22, 혈루병 여인을 고치심/ 마9:23-26,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마9:27-31, 두 소경을 고치심/ 마17:24-27, 물고기 입에서 나온 돈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심/ 막2:1-12, 중풍병자를 고치심// 벳세다에서 행하신 이적은 이렇습니다. 마14:15-21, 5병 2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 마14:25-33, 바다 위를 걸으심/ 막8:22-26, 소경을 고치심. 등입니다.

이러한 기적의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주변의 이방인들에게까지 소문난 사건들입니다. 만약 이러한 이적을 소돔이나, 시돈이나, 두로와 같은 이방 도시에서 행하셨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하여 멸망을 피했을 것이라며 예수님이 탄식하셨습니다. 소돔, 시돈, 두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도시들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사람들의 강퍅함과 배반감으로 인하여 깊은 탄식으로 얼룩졌습니다. 그 실망과 허탈함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여러분들도 그러한 경험이 있습니까?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대했던 사람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대적하고 훼방할 때의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바로 이 때, 즉 배반감과 실망과 허탈함이 엄습할 그 때 주님은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외적으로 나타난 현실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의 본질은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실재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현실이 답답하고 고난이 있더라도 그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월적인 감사이며,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신앙의 양심입니다.

2. 어떻게 신앙의 양심을 지켜갈 수 있습니까?

은혜를 은혜로 아는 것이 양심 있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탄식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십니다. 바로 그 기도의 내용 속에 초월적인 감사,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양심 있는 신앙의 길이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인 본문25-27절의 내용을 정리하면, ①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 계시를 받는 자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주님의 계시가 나타나게 되고, 계시를 받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계시를 받는 자”란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3절을 봅시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돌이켜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부모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어린아이의 본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를 은혜로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신앙의 양심을 지켜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요구하신 이유입니다. 사람들이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잃게 되는 이유는 육신의 욕망과 생존경쟁에 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28-30절에서 삶에 찌들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무거운 짐들, 욕망의 짐, 고통의 짐, 모든 삶의 짐을 주님께 맡기라고 요청하십니다. 왜냐하면 짐을 지고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생의 고통과 번민과 원망이 더 가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무거운 짐에 짓눌려 있는데 은혜고 감사고 생각이 나겠습니까? 인생의 짐이 내려지면 주님의 십자가가 보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은혜로운 손길이 느껴집니다. 베드로전서 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짐을 내려놓고는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짐을 내려놓는 것인지 모른다면 내려놓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즉 나의 모든 생활이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하는 일, 만나는 사람, 자연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일들까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숨쉬고, 활동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생기면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세상의 현상에 의하여 좌우되던 삶이 하나님을 바라게 됩니다. 주바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자신에게 나타나면 이미 짐이 내려진 것입니다.

시편 37:4-8절에서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여호와를 기뻐하고, 길을 여호와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세상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께 맡겨졌습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모든 짐을 자신이 지고자 한다면 결코 감사할 수도 없고 은혜를 은혜로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양심 있는 신앙은 기대하지도 못하겠지요. 오히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과 원망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감사를 마음에 품고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주님처럼 생활 속에서 가난한 이웃, 믿음이 없는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킵시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내 삶에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여 신앙의 양심을 지켜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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