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높은 곳을 향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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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1-12 21:10
***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빌 3:10-16
** 들어가는 말
빌립보서 3:10-16,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현대의 시간을 표현하라면 ‘光音如是(광음여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빛같이 빠른 세월’ 참으로 세월이 덧없이 빠름을 느낍니다. 밀레니엄(millennium) 이라고 온 세계가 들썩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생명의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소중한 생명의 자산(資産)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어느 선교사의 수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중앙아프리카를 자동차로 횡단하는 긴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 첫날, 수마일 간격으로 그 여행 로를 따라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어떤 표지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표지들은 진흙으로 예수님의 상을 새겨놓은 것이거나, 꽃으로 장식된 갈대로 만든 십자가이거나, 성전표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동료 선교사를 만났을 때 물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있군요. 나는 결코 여기처럼 많은 성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그것들은 성전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 표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아한 생각이 든 선교사는 “버스 정류장 표지라고요?”라고 반문하자 동료 선교사는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정확한 버스 운행 시간표가 없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심지어는 이틀씩이나 꼬박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여행 중인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버스 정류장에 성전표지를 했지요?” “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버스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기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답니다.”
정말 현명한 생각이지요? 우리가 버스나 열차를 기다리거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는 수많은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소중한 시간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무료하게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쓸데없이 낭비했다면 아까운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하고는 아까운 생각을 하는 일은 드뭅니다. 만약 그 시간들을 기도하거나, 평소에 잘 읽지 못하는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보냈다면 훨씬 더 보람 있는 삶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2006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렵니까? 저는 목회자로서 이 일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에, 교회적인 소망과 함께 모든 성도들의 소망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교회’라고 2006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음질 하는 소망의 삶’이 되기를 기도할 것이며,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주님의 말씀과 요한삼서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영혼이 잘 되어야 육신의 생활도, 육신의 강건함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삶’을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1. 먼저, 목표를 위를 향하여 세워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목표는 10-11절에 있습니다. (현대어성경)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의미하며 모든 삶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정신 집중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9:6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를 향하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또한 마가복음 4:18-19절에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목표를 잃고 정신이 분산된 사람의 실패한 삶을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삶에 있어서 여러 목표를 동시에 둘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목표는 우리의 앞서 가신 주님이 계신 곳, 바로 저 높은 “영광의 나라”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정신을 분산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저것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정작 목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컷 일하고 나서 정작 무엇을 위해 했는지 허무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중년의 주부들이 우울증을 많이 앓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직 남편을 위하여, 자식들을 위하여, 가정을 세워보려고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자식들은 다 커서 제각기 자기 삶을 찾아 가버리고, 남편은 일에 빠져있고, 자신만 덩그마니 남아있는 중년의 삶이 우울증을 부른 것입니다. 자살이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니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목표를 잘 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밭을 갈 때에는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보고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밭고랑이 바르게 타집니다. 움직이는 목표를 세우게 되면 당연히 나아가는 길도 굽어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으며, 시편 146:3-4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우리를 부르신 주님이 계시는 저 높은 곳입니다.
2. 목표를 세웠으면 전력 질주해야 합니다.
바울의 생애는 오직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한 전력 질주였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업적이나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앞에 놓여 있는 푯대, 즉 하나님을 향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목표를 위하여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바울의 생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상적이었던 지난날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진만 계속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정도의 능력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되면 주변에서 부추길 터이고, 또한 자기의 한 일을 자랑할 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돈과 명예,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세상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바울의 목표를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세상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음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겸하여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둘 중에서 ‘저 높은 곳에 예비 되어 있는 부름의 상’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다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는 것은 생명의 낭비입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가노라면 때로는 기쁨도, 평안함도 잊어버려야 할 때가 있으며, 슬픔과 괴로움도 뒤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성도들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까지도 뒤로하고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를 달리는 동안 모든 환경을 이기고 오직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해야 상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인도에 ‘아륙’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사형수에게 특이한 일을 시키는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왕은 사형수에게 기름을 가득 담은 그릇을 주면서 “네가 이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 장안을 다녀오면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사형수가 이 기름그릇을 받았습니다. 사형수는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루 종일이 걸려서 장안을 돌아왔습니다.
왕은 사형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온 장안을 돌아왔으면 몇 가지를 묻겠다. 장안의 큰 길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장터의 큰 건물은 무슨 건물인지 보았느냐?” 사형수는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또 건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호통을 쳤습니다. “네가 거짓말로 장안을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만일 온 장안을 돌아 왔으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 사형수는 “왕께서 명령하시기를 이 기름을 쏟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생명이 이 기름에 있는데 어찌 다른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기름그릇만 보느라 건물도 사람도 경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왕은 “그래, 옳도다. 너를 사면해 주노니 앞으로는 그런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라.”고 하며 석방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 때에도 오직 주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전심전력해야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3. 흔들리거나 자만하지 말고 일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현대어성경 / “나는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생각을 달리하는 점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됐든지 간에 이제는 같은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일정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은 육신의 욕망이나 세상의 유혹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신앙이 좋은 사람은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여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바라기(주님만 바라보는 사람)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도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만남’이 나옵니다. 거기에 청년의 비극이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물과 영생의 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청년은 세상의 재물과 명예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결국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부귀영화를 뒤로 한다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러나 영원한 것을 소망한다면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를 부르신 저 높은 곳을 향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3: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식물은 육신의 것들을 말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진 2006년의 생명의 기회를 하나님이 부르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으로 이루어갑시다. 바른 소망의 목표를 세우고, 전심전력하여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 하고, 흔들리지 말고 일심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과 육신의 큰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2006년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빌립보서 3:10-16,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현대의 시간을 표현하라면 ‘光音如是(광음여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빛같이 빠른 세월’ 참으로 세월이 덧없이 빠름을 느낍니다. 밀레니엄(millennium) 이라고 온 세계가 들썩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생명의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것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소중한 생명의 자산(資産)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어느 선교사의 수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중앙아프리카를 자동차로 횡단하는 긴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 첫날, 수마일 간격으로 그 여행 로를 따라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어떤 표지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표지들은 진흙으로 예수님의 상을 새겨놓은 것이거나, 꽃으로 장식된 갈대로 만든 십자가이거나, 성전표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동료 선교사를 만났을 때 물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있군요. 나는 결코 여기처럼 많은 성전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는 “그것들은 성전이 아니라 버스 정류장 표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의아한 생각이 든 선교사는 “버스 정류장 표지라고요?”라고 반문하자 동료 선교사는 “그렇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정확한 버스 운행 시간표가 없답니다. 그래서 이따금씩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심지어는 이틀씩이나 꼬박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여행 중인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버스 정류장에 성전표지를 했지요?” “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버스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 기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답니다.”
정말 현명한 생각이지요? 우리가 버스나 열차를 기다리거나,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들을 헛되게 보내는 수많은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소중한 시간들을 별다른 생각 없이 무료하게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돈을 잃어버리거나 쓸데없이 낭비했다면 아까운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을 낭비하고는 아까운 생각을 하는 일은 드뭅니다. 만약 그 시간들을 기도하거나, 평소에 잘 읽지 못하는 성경이나 신앙서적을 읽으면서 보냈다면 훨씬 더 보람 있는 삶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2006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시렵니까? 저는 목회자로서 이 일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에, 교회적인 소망과 함께 모든 성도들의 소망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하는 교회’라고 2006년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한 해 동안 교회와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음질 하는 소망의 삶’이 되기를 기도할 것이며,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주님의 말씀과 요한삼서 2절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영혼이 잘 되어야 육신의 생활도, 육신의 강건함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저 높은 곳을 향하는 삶’을 이루어야 하겠습니까?
1. 먼저, 목표를 위를 향하여 세워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목표는 10-11절에 있습니다. (현대어성경)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의미하며 모든 삶과 노력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정신 집중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9:6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표를 향하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또한 마가복음 4:18-19절에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목표를 잃고 정신이 분산된 사람의 실패한 삶을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삶에 있어서 여러 목표를 동시에 둘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목표는 우리의 앞서 가신 주님이 계신 곳, 바로 저 높은 “영광의 나라”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정신을 분산시키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것저것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다가 정작 목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컷 일하고 나서 정작 무엇을 위해 했는지 허무한 마음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정신질환이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중년의 주부들이 우울증을 많이 앓는 것도 그렇습니다. 오직 남편을 위하여, 자식들을 위하여, 가정을 세워보려고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자식들은 다 커서 제각기 자기 삶을 찾아 가버리고, 남편은 일에 빠져있고, 자신만 덩그마니 남아있는 중년의 삶이 우울증을 부른 것입니다. 자살이 늘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니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목표를 잘 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밭을 갈 때에는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보고 갈아야 합니다. 그래야 밭고랑이 바르게 타집니다. 움직이는 목표를 세우게 되면 당연히 나아가는 길도 굽어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으며, 시편 146:3-4절에서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우리를 부르신 주님이 계시는 저 높은 곳입니다.
2. 목표를 세웠으면 전력 질주해야 합니다.
바울의 생애는 오직 한 가지의 목표를 향한 전력 질주였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업적이나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앞에 놓여 있는 푯대, 즉 하나님을 향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삶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목표를 위하여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바울의 생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상적이었던 지난날의 일들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전진만 계속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정도의 능력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되면 주변에서 부추길 터이고, 또한 자기의 한 일을 자랑할 만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돈과 명예, 권력으로부터의 유혹, 세상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어떤 것도 바울의 목표를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세상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음질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겸하여 다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둘 중에서 ‘저 높은 곳에 예비 되어 있는 부름의 상’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일들을 다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쓸데없이 뒤를 돌아보는 것은 생명의 낭비입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가노라면 때로는 기쁨도, 평안함도 잊어버려야 할 때가 있으며, 슬픔과 괴로움도 뒤로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성도들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까지도 뒤로하고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를 달리는 동안 모든 환경을 이기고 오직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해야 상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 인도에 ‘아륙’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사형수에게 특이한 일을 시키는 유명한 왕이었습니다. 왕은 사형수에게 기름을 가득 담은 그릇을 주면서 “네가 이 기름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온 장안을 다녀오면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사형수가 이 기름그릇을 받았습니다. 사형수는 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하루 종일이 걸려서 장안을 돌아왔습니다.
왕은 사형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온 장안을 돌아왔으면 몇 가지를 묻겠다. 장안의 큰 길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장터의 큰 건물은 무슨 건물인지 보았느냐?” 사형수는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또 건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호통을 쳤습니다. “네가 거짓말로 장안을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만일 온 장안을 돌아 왔으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 사형수는 “왕께서 명령하시기를 이 기름을 쏟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내 생명이 이 기름에 있는데 어찌 다른 것을 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기름그릇만 보느라 건물도 사람도 경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왕은 “그래, 옳도다. 너를 사면해 주노니 앞으로는 그런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라.”고 하며 석방해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 때에도 오직 주님의 부르심을 향하여 전심전력해야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3. 흔들리거나 자만하지 말고 일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현대어성경 / “나는 여러분이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점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이 생각을 달리하는 점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해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됐든지 간에 이제는 같은 원칙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일정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신앙이 약한 사람은 육신의 욕망이나 세상의 유혹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신앙이 좋은 사람은 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나 어떤 여건 속에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바라기(주님만 바라보는 사람)가 되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서도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만남’이 나옵니다. 거기에 청년의 비극이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재물과 영생의 길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청년은 세상의 재물과 명예에 더 마음을 두었습니다. 결국 영생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즐거움과 부귀영화를 뒤로 한다는 것이 어디 쉽겠습니까? 그러나 영원한 것을 소망한다면 세상의 것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를 부르신 저 높은 곳을 향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13: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식물은 육신의 것들을 말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 주어진 2006년의 생명의 기회를 하나님이 부르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으로 이루어갑시다. 바른 소망의 목표를 세우고, 전심전력하여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 하고, 흔들리지 말고 일심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과 육신의 큰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2006년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