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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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1-12 15:17
*** 너는 온전히 즐거워하라. / 신명기 16:13-17
**들어가는 말
신명기 16:13-17(현대어성경) “13 여러분은 봄철 곡식을 수확한 때뿐만 아니라 초가을에 올리브와 포도를 수확한 다음에도 일주일 동안 초막절 잔치를 베푸십시오. 14 여러분은 자녀들과 남녀종들과 여러분의 마을에서 함께 사는 레위 사람들과 외국인들과 고아나 과부들과 함께 이 잔치를 즐겁게 베푸십시오. 15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잔치를 베푸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잔치에서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16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씩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곧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는 여러분이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데 언제나 빈손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17 많든지 적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가지고 가되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에 따라서 예물을 가지고 가십시오.”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의 동식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출하여 오늘도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으러 헤매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저 일자리 없을까요? 무슨 일 이라도 좋아요. 아저씨, 일하게 해주세요.\"
울먹이며 말을 꺼냈습니다. 주인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동식이를 훑어보면서 말합니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울지 말고 들어와 보렴.\"
인쇄소는 벽에 온통 기름때가 시커멓게 묻고 잘린 종이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작고 오래된 테이프에서는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작은 석유곤로에 라면을 끓여서 동식이에게 먹으라고 내밀었습니다.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 치우자 아저씨는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습니다.
\"너, 어디 잘 데는 있니?\" \"아니요, 놀이터에서도 자고…\"
\"음, 그러면 우리 인쇄소에서 일 해라. 학자금이 모아지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도록 해주마.\"
그 아저씨 덕분에 그 날부터 동식이는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면으로 매끼를 때우고 찬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자야 했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디었습니다. 받은 월급은 라면 한 상자를 사는 것 외엔 모두 저금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기 위해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 두 개의 라면을 확인하고 한 개를 꺼내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면 상자에 손을 넣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라면은 여전히 두개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안쪽에 숨어 있었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아침을 라면 한 개로 때웠습니다. 그러나 점심에도 저녁에도 라면은 줄지 않고 두 개 그대로였습니다. 따져보니 스무 개 밖에 안 되는 상자에서 삼십일이 넘게 라면을 꺼내 먹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동식이는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일을 했습니다. 대강은 짐작되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자 김씨 아저씨가 동식이를 불렀습니다.
\"동식아, 요 앞 가게에 좀 갔다 올래?\"
동식이는 밖으로 나갔지만 가게에 가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라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시던 아저씨가 라면 상자 쪽으로 걸어가서는 한 개의 라면을 상자에 집어넣은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흥얼거리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 당시 김씨 아저씨는 어린 남매 넷과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 날 동식이는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던 김씨처럼 자신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배려하며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진정한 감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1: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고,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이 교회력(敎會曆)으로 보면 한 해를 마감하는 기간입니다. 교회력은 대강절로 시작하여 추수감사절로 끝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은 원래 교회력에는 들지 않는 것이지만 일년 동안의 삶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수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감사절의 근원은 유대의 초막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마지막 수확을 끝내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큰 잔치를 열어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본문 14-15절에서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인 마지막 주일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감사절의 큰 감사와 함께 이어지는 대강절의 구속의 기쁨과 감사함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간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기쁨과 감사의 계절입니다. 이 기쁨과 감사의 절기를 짧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감사절을 앞두고 있는 이 시간에는 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초막절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봅시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선민들이 일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세 절기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봄 농사인 밀과 보리를 거두고 감사하는 맥추절 혹은 칠칠절, 가을의 모든 추수를 끝내고 감사하는 수장절 혹은 초막절, 이 세 절기입니다. 그 중에서 이 초막절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 해의 끝에 모든 수확을 끝내고 저장한 후 감사하는 수장(守藏)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살며 초막에 거하던 때를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23:42-43절입니다.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왜 초막에 살 던 때를 잊지 않고 기념해야 합니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뭇가지와 천막으로 지은 초막에서 살았지만, 매일 아침이면 이슬과 함께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으며, 옷과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불기둥으로 밤의 추위를 막아주시고 어두움을 밝혀주셨으며, 구름기둥으로 낮의 뜨거움을 막아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 우리가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위하여 짐승과 곡물을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도 해마다 반복하여 드리고, 또 수시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에 비하면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시며, 이어지는 4-6절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십니다. 이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떤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까?
1.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손을 댄”이라는 단어는 ‘편 손’이라는 의미에서 “네 힘이 미친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모든 물산”은 ‘소득’, ‘열매’, ‘이익’등을 의미하며, “모든 일”은 ‘활동’, ‘직업’, ‘노동’등을 의미합니다. 즉 직업이든 사업이든 우리의 힘이 미쳐서 행한 모든 일과 모든 소득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손을 대었다고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수고하고 힘썼다고 풍성하게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수고하는 대로 거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년 내내 수고했지만 가뭄과 홍수, 화재 등의 재난으로, 혹은 병충해로 또는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숱하게 많습니다.
농부들이 하는 말에 “잡초처럼 농사가 잘 된다면 부자 안 될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사람이 손을 대는 일마다 잘 된다면 즐겁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을 마음껏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뿌려놓은 일들이 앞으로 잘 될 것을 믿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도 은혜를 베푸셔서 뿌린 것을 수확하고 잘 되었지만, 앞으로 이루어주실 일들에 더 큰 복을 베푸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은 ‘확실한 믿음 속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까? 기쁨이 없다면 감사가 없다는 뜻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시지요? 뇌성마비로 온 몸이 부자유스러워서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일간 온몸을 움직여가며 고통에 겨워 눈물과 땀을 흘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이 너무도 추하고 고통스러워
“주님, 나의 몸을 이렇게 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지 왜 생명을 주셔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라고 주님께 원망을 했다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원망과 좌절로 생활하던 어느 날, 주님의 사랑스러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명희야! 네 몸이 온전했더라면 네가 나를 알겠느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비로소 주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사랑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래합니다.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며…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주님의 사랑에 겨워 수많은 아름답고 순수하고 감동을 주는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의 감사는 곧 기쁨으로 변했고, 온 세상을 주님의 것으로 여기며 넘치는 기쁨으로 끊임없는 감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2. 헌신과 나눔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14절을 봅시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6절 중반절-17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서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자신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 세상의 분깃이 없는 성직자들, 고아와 과부 같은 연약한 지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일이나 어떤 잔치가 있으면 친한 사람, 부요한 사람들, 유명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4:12-14절을 봅시다. (현대어성경) “이어서 자기를 초대한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와 형제와 친척과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 그들이 다시 너를 초대하여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맹인들을 초대하라. 14 그러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부요함을 누리려면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보시도록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8-19절을 봅시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현대어성경/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다가 참 보화를 쌓는 것이며 이것만이 영원을 대비하는 안전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도 열매가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부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투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서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헌신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재물 얻을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지 말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름다운 예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9:7절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일년 내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므로 늘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특히 지금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 우리 손이 행하는 모든 일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실 은혜를 감사하며 즐거워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지체된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신명기 16:13-17(현대어성경) “13 여러분은 봄철 곡식을 수확한 때뿐만 아니라 초가을에 올리브와 포도를 수확한 다음에도 일주일 동안 초막절 잔치를 베푸십시오. 14 여러분은 자녀들과 남녀종들과 여러분의 마을에서 함께 사는 레위 사람들과 외국인들과 고아나 과부들과 함께 이 잔치를 즐겁게 베푸십시오. 15 여러분은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잔치를 베푸십시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잔치에서 마음껏 기뻐하십시오. 16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세 번씩 여호와께서 성소로 지정하실 곳으로 가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곧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는 여러분이 여호와의 얼굴을 뵈어야 하는데 언제나 빈손으로는 가지 마십시오. 17 많든지 적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가지고 가되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에 따라서 예물을 가지고 가십시오.”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의 동식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가출하여 오늘도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으러 헤매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작고 허름한 인쇄소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저 일자리 없을까요? 무슨 일 이라도 좋아요. 아저씨, 일하게 해주세요.\"
울먹이며 말을 꺼냈습니다. 주인처럼 보이는 아저씨는 동식이를 훑어보면서 말합니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구나. 울지 말고 들어와 보렴.\"
인쇄소는 벽에 온통 기름때가 시커멓게 묻고 잘린 종이조각들이 흩어져 있었고, 작고 오래된 테이프에서는 찬송가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작은 석유곤로에 라면을 끓여서 동식이에게 먹으라고 내밀었습니다. 허겁지겁 라면을 먹어 치우자 아저씨는 이것저것을 물어보았습니다.
\"너, 어디 잘 데는 있니?\" \"아니요, 놀이터에서도 자고…\"
\"음, 그러면 우리 인쇄소에서 일 해라. 학자금이 모아지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니도록 해주마.\"
그 아저씨 덕분에 그 날부터 동식이는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면으로 매끼를 때우고 찬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폴을 깔고 자야 했지만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참고 견디었습니다. 받은 월급은 라면 한 상자를 사는 것 외엔 모두 저금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기 위해 라면상자에 손을 넣어 두 개의 라면을 확인하고 한 개를 꺼내 먹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면 상자에 손을 넣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라면은 여전히 두개였습니다. ‘분명히 하나를 끓여 먹었는데… 안쪽에 숨어 있었나?!’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아침을 라면 한 개로 때웠습니다. 그러나 점심에도 저녁에도 라면은 줄지 않고 두 개 그대로였습니다. 따져보니 스무 개 밖에 안 되는 상자에서 삼십일이 넘게 라면을 꺼내 먹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동식이는 종일 라면 상자가 있는 쪽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일을 했습니다. 대강은 짐작되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녁시간이 되자 김씨 아저씨가 동식이를 불렀습니다.
\"동식아, 요 앞 가게에 좀 갔다 올래?\"
동식이는 밖으로 나갔지만 가게에 가지 않고 유리창 너머로 라면상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시던 아저씨가 라면 상자 쪽으로 걸어가서는 한 개의 라면을 상자에 집어넣은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흥얼거리며 걸어 나오셨습니다. 그 당시 김씨 아저씨는 어린 남매 넷과 병든 아내와 함께 월세 단칸방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 날 동식이는 아저씨의 심부름도 잊은 채 인쇄소 옆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작은 인쇄소를 경영하던 김씨처럼 자신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하여 배려하며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진정한 감사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1:27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돌아보고,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이 교회력(敎會曆)으로 보면 한 해를 마감하는 기간입니다. 교회력은 대강절로 시작하여 추수감사절로 끝나게 됩니다. 추수감사절은 원래 교회력에는 들지 않는 것이지만 일년 동안의 삶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수확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감사절의 근원은 유대의 초막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마지막 수확을 끝내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큰 잔치를 열어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본문 14-15절에서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십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인 마지막 주일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감사절의 큰 감사와 함께 이어지는 대강절의 구속의 기쁨과 감사함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기간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큰 기쁨과 감사의 계절입니다. 이 기쁨과 감사의 절기를 짧게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감사절을 앞두고 있는 이 시간에는 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초막절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봅시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선민들이 일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세 절기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 봄 농사인 밀과 보리를 거두고 감사하는 맥추절 혹은 칠칠절, 가을의 모든 추수를 끝내고 감사하는 수장절 혹은 초막절, 이 세 절기입니다. 그 중에서 이 초막절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한 해의 끝에 모든 수확을 끝내고 저장한 후 감사하는 수장(守藏)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살며 초막에 거하던 때를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23:42-43절입니다.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왜 초막에 살 던 때를 잊지 않고 기념해야 합니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나뭇가지와 천막으로 지은 초막에서 살았지만, 매일 아침이면 이슬과 함께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으며, 옷과 신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며, 불기둥으로 밤의 추위를 막아주시고 어두움을 밝혀주셨으며, 구름기둥으로 낮의 뜨거움을 막아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 우리가 이 절기를 지켜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위하여 짐승과 곡물을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그것도 해마다 반복하여 드리고, 또 수시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에 비하면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씻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시며, 이어지는 4-6절에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하십니다. 이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입은 우리가 어떤 감사를 해야 하겠습니까?
1.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네 손을 댄”이라는 단어는 ‘편 손’이라는 의미에서 “네 힘이 미친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모든 물산”은 ‘소득’, ‘열매’, ‘이익’등을 의미하며, “모든 일”은 ‘활동’, ‘직업’, ‘노동’등을 의미합니다. 즉 직업이든 사업이든 우리의 힘이 미쳐서 행한 모든 일과 모든 소득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손을 대었다고 모든 것이 잘 되고 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수고하고 힘썼다고 풍성하게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닙니다. 수고하는 대로 거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년 내내 수고했지만 가뭄과 홍수, 화재 등의 재난으로, 혹은 병충해로 또는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숱하게 많습니다.
농부들이 하는 말에 “잡초처럼 농사가 잘 된다면 부자 안 될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사람이 손을 대는 일마다 잘 된다면 즐겁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고 많은 수확을 거두게 하실 것을 마음껏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믿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뿌려놓은 일들이 앞으로 잘 될 것을 믿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도 은혜를 베푸셔서 뿌린 것을 수확하고 잘 되었지만, 앞으로 이루어주실 일들에 더 큰 복을 베푸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은 ‘확실한 믿음 속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은 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기쁨이 있습니까? 기쁨이 없다면 감사가 없다는 뜻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아시지요? 뇌성마비로 온 몸이 부자유스러워서 한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몇 일간 온몸을 움직여가며 고통에 겨워 눈물과 땀을 흘려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이 너무도 추하고 고통스러워
“주님, 나의 몸을 이렇게 할 것이었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지 왜 생명을 주셔서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십니까?”
라고 주님께 원망을 했다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원망과 좌절로 생활하던 어느 날, 주님의 사랑스러운 음성을 들었습니다.
“명희야! 네 몸이 온전했더라면 네가 나를 알겠느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비로소 주님의 큰 사랑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 사랑에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래합니다. “나 남이 가진 재물 없으며…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주님의 사랑에 겨워 수많은 아름답고 순수하고 감동을 주는 찬송시를 썼습니다.
그의 감사는 곧 기쁨으로 변했고, 온 세상을 주님의 것으로 여기며 넘치는 기쁨으로 끊임없는 감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2. 헌신과 나눔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14절을 봅시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16절 중반절-17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서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자신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 가난한 이들, 세상의 분깃이 없는 성직자들, 고아와 과부 같은 연약한 지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생일이나 어떤 잔치가 있으면 친한 사람, 부요한 사람들, 유명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누가복음 14:12-14절을 봅시다. (현대어성경) “이어서 자기를 초대한 주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 놓고 사람을 청하려거든 친구와 형제와 친척과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 그들이 다시 너를 초대하여 갚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과 절름발이와 맹인들을 초대하라. 14 그러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한 대가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보상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부요함을 누리려면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보시도록 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8-19절을 봅시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현대어성경/ “착한 일에 돈을 쓰도록 가르쳐 주시오. 자기가 가진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기쁘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때 그들은 참된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하늘에다가 참 보화를 쌓는 것이며 이것만이 영원을 대비하는 안전한 투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이 땅 위에서도 열매가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부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투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서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서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헌신이 따라야 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헌신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재물 얻을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18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또한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지 말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름다운 예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9:7절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일년 내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므로 늘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특히 지금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앞으로 우리 손이 행하는 모든 일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실 은혜를 감사하며 즐거워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지체된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쁨을 나누며 즐거워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더욱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