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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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5-10-29 13:08
***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사람 / 마태복음 11:25-30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얼마 전에 ‘한국 인터넷 정보센터’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터넷 이용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국민 중 7세 이상의 인터넷 인구가 51.6%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훨씬 더 높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이용 목적은 새 자료 검색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학습 및 각종 거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연 우세를 차지했던 오락 게임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특히 20대 이하의 새로운 세대는 거의 90%를 넘는 컴퓨터 이용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넷 이용이 활발한 것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 의사소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즉 인터넷은 ‘정보의 빠른 소통’, ‘다른 사람들과의 제한 없는 교제(homepage, Blog)’를 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항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거의 무제한적으로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현대인들 특히 신세대들은 컴퓨터가 없으면 정서가 불안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세대에 하나님의 평안을 깨우치고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현대인들 특히 자라는 아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은 모든 것이 한계가 있고 변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이런 것은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도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변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하게 되며, 사람들의 관계가 메마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혼란스러운 세대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 쪽에는 이러한 종말의 시대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살이가 늘 고달프고, 기쁨이 없고, 우울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서 활동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고 어른들처럼 약삭빠른 계산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쉼터로 초대를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 각자 자신의 삶에 매달려 이웃을 잊어가는 세대,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죄악의 세상. 이것이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교만한 눈,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으로는 이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봅시다.
먼저, 소유와 누림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전도서 5:18-19, 6:1-2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 왕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죽도록 고생하고 아끼고 모아서 많은 것을 쌓아두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수백억 원의 재산이 있다할지라도 육신이 병들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부모에 대하여 완전하게 의지합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에 충실한 사람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이 소유한다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마음이 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며 모아 쌓는 것은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후에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에게는 ‘누리게 하시고 즐거워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고 싶다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삶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풍족한 생활이라 할지라도 가정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안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려면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계획, 자신의 경험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놀이공원에서 전기 자동차를 타고 와서는
“엄마, 엄마, 오늘 나 자동차 운전했다. 나도 운전할 줄 아니까 아빠 자동차 같은 차 사줘!”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경험과 계획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아로 가득 찬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굳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기는커녕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예수님을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들,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 세리와 창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 생각과 경험과 신분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장남인 ‘엘리압’을 보고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삼상 16:7)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골3:1)고 하시면서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 3:8-10)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는 하나님의 평안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삶의 짐을 주님이 가볍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평안으로의 초대는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인한 평안을 누리게 됨을 말씀합니다. 곧 빌립보서 4:6-7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공동번역)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평강 가운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평안이 절대로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갑시다. 우리 주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물 붓듯이 부어지게 합시다. 그리하면 세상의 것들로 채워진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고 하나님의 평안으로 가득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환경과 거센 위기의 바람이 분다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얼마 전에 ‘한국 인터넷 정보센터’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터넷 이용 실태를 조사하여 발표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국민 중 7세 이상의 인터넷 인구가 51.6%에 이르렀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훨씬 더 높으리라 생각됩니다. 인터넷 이용 목적은 새 자료 검색이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학습 및 각종 거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단연 우세를 차지했던 오락 게임은 점점 감소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특히 20대 이하의 새로운 세대는 거의 90%를 넘는 컴퓨터 이용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터넷 이용이 활발한 것은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 의사소통)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즉 인터넷은 ‘정보의 빠른 소통’, ‘다른 사람들과의 제한 없는 교제(homepage, Blog)’를 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 항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거의 무제한적으로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현대인들 특히 신세대들은 컴퓨터가 없으면 정서가 불안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세대에 하나님의 평안을 깨우치고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현대인들 특히 자라는 아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은 모든 것이 한계가 있고 변하는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이런 것은 진정한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사람들도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변할 것을 알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집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의 이익을 최우선하게 되며, 사람들의 관계가 메마르게 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미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혼란스러운 세대들에게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앞 쪽에는 이러한 종말의 시대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소유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살이가 늘 고달프고, 기쁨이 없고, 우울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서 활동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을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과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단순하고 어른들처럼 약삭빠른 계산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예수님의 쉼터로 초대를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메마르고 각박한 세상, 각자 자신의 삶에 매달려 이웃을 잊어가는 세대,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죄악의 세상. 이것이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교만한 눈,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한 마음으로는 이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찾아봅시다.
먼저, 소유와 누림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전도서 5:18-19, 6:1-2절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폐단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이스라엘의 3대 왕인 솔로몬 왕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죽도록 고생하고 아끼고 모아서 많은 것을 쌓아두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것이라고 하십니다. 수백억 원의 재산이 있다할지라도 육신이 병들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은 부모에 대하여 완전하게 의지합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주어진 일에 충실한 사람이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많이 소유한다는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들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마음이 이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기쁨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며 모아 쌓는 것은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난 이후에 인간에게 주어진 징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에게는 ‘누리게 하시고 즐거워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고 싶다면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우리의 삶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잠언의 말씀처럼 ‘풍족한 생활이라 할지라도 가정에 평안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한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평안으로 말미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려면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계획, 자신의 경험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놀이공원에서 전기 자동차를 타고 와서는
“엄마, 엄마, 오늘 나 자동차 운전했다. 나도 운전할 줄 아니까 아빠 자동차 같은 차 사줘!”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그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대로 해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경험과 계획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아로 가득 찬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굳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기는커녕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예수님을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들,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가난한 사람들, 세리와 창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모든 생각과 경험과 신분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아이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하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새의 집으로 갔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에 장남인 ‘엘리압’을 보고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삼상 16:7)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의 평안이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하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골3:1)고 하시면서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골 3:8-10)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평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는 하나님의 평안으로의 초대입니다. 우리의 무거운 삶의 짐을 주님이 가볍게 하시고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평안으로의 초대는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인한 평안을 누리게 됨을 말씀합니다. 곧 빌립보서 4:6-7절의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공동번역)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평강 가운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의 평안이 절대로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으로 채워갑시다. 우리 주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물 붓듯이 부어지게 합시다. 그리하면 세상의 것들로 채워진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고 하나님의 평안으로 가득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환경과 거센 위기의 바람이 분다할지라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기쁨과 평안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