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주님을 만나려면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483회 작성일 2006-04-29 14:40
*** 주님을 만나려면 / 히브리서 12:14-17

**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 12:14-17,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솝 우화 중에 ‘사냥하러 간 사자와 나귀와 여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사자와 나귀와 여우가 친구가 되어 사냥하러 나섰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많은 것을 사냥했습니다. 사냥이 다 끝나자 진탕 먹으려는 생각에 사자는 나귀에게 ‘포획물을 분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귀는 공평하게 3등분하여 친구들에게 ‘좋을 대로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 모양을 본 사자는 몹시 화가 나서 나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자는 여우에게 ‘분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먼저 사자의 몫으로  전부를 긁어모아 하나의 큰 더미를 만들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만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던 사자가 말했습니다. “어럽쇼, 너에게 누가 이런 공평한 분배 법을 가르쳤지?” 그러자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예 저 나귀가 죽는 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여우의 지혜가 돋보이는 이 우화는 ‘남의 불행을 보고 신속하게 내리는 현명한 결단’에 대하여 교훈합니다. 마태복음 21장에는 ‘두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내용인 즉,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큰 아들에게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니 큰 아들이 “예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라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포도원에 가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거절했지만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하시고 사람들에게 “그 둘 중에 주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32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심판 때가 가까웠음을 외치는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듣고도 회개하거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한 유대인들이 큰 아들로 비유되었습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로 비유된 세리와 창기들은 유대인들의 업신여김을 받았지만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결단하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성도는 지혜로운 여우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즉시 결단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날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보장이며, 소망의 보증수표가 된 날이며, “빈 무덤”으로 표현된 예수님의 부활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날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빈 무덤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자기 버림의 결단의 길인 십자가의 길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영광의 면류관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내와 결단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고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미국의 어느 연구소에서 ‘삶의 패턴’에 대하여 연구하면서 2,5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중에서 “당신은 왜 실패했습니까?”라는 문항이 있었습니다. 그 문항에 대한 결과, 실패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적한 것은 “결단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데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곧 결단입니다. 우리의 의지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자신을 치는 끊임없는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이 더욱 구체화되고 가까워지게 됩니다. 저나 여러분의 가장 큰 소망은 부활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입니다. 이것을 내 것으로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유하는 것과 누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서도 한 없이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유한 것이 별로 없지만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소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리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세상의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욥기 1:21절에서 욥은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욥의 고백처럼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즐겁게 누리면서 지혜롭게 사용하여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본문14절을 봅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아무도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하나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화평함과 거룩함을 이루지 아니하면 절대로 주님을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화평함과 거룩함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성도의 삶에서 이루어야 필수 덕목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화평(샬롬, 에이레네)”은 ‘평화’의 의미가 있지만 ‘하나 됨’, ‘안식’, ‘다시 하나가 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이에 분열된 마음을 하나로 모아감으로서 아담과 하와가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이를 위하여 저와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17절 이하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화목의 직책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3:11절에서는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셨으며, 야고보서3:17절에서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도가 생활 속에서 나타내야 할 성품의 1, 2위가 거룩함과 화평입니다. 그런데 “거룩함”은 화평을 이루는 고리입니다. 즉 거룩함이 없는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솟아나는 하늘의 평화가 아닙니다. “거룩함”이란 ‘세상과의 구별 됨’입니다. 우리의 삶의 색깔이 세상 사람과는 구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옛 속담에도 “초록은 동색이다.”고 했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지요.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두움 속으로 모이게 되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빛으로 모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무리 속에 있으면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1985년 11월 13일 콜롬비아에 있는 네바도 델 루이스화산이 폭발해 약 5만 명의 사상자를 낸 대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참사의 원인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콜롬비아 최고의 휴화산인 ‘네바도 델 루이스’화산이 다시 폭발할 것이란 첫 경고가 나온 것은 1984년 말부터였습니다. 이 산을 등반했던 산악인들이 가벼운 진동을 느끼고 눈 덮인 산정에서 유황가스가 피어올라 큰 새털구름을 이룬다고 신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보고타 북서쪽 128km에 위치한, 5436m 높이의 이 산 정상은 1985년 봄철부터 여름까지 내내 진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9월 11일 네바도 델 루이스는 1차 분출을 했습니다. 9월 하순에 콜롬비아 광산지질연구소는 네바도 델 루이스 산기슭에 있는 모든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콜롬비아 정부 당국은 이 충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10월 7일, 이 연구소는 네바도 델 루이스 주변에 대재앙이 임박했다고 경고하면서 특별히 위험성이 높은 두 지역을 지적했습니다. 한 곳은 라구닐라 강의 계곡에 위치한 아르메로 읍으로 화산 동쪽 48km 떨어져 있었고, 다른 한 곳은 산 정상의 서쪽에 위치한 친치냐 마을이었습니다.
10월 22일, 콜롬비아를 방문중이던 이탈리아 화산학자 일행은 콜롬비아정부에 당장 라구닐라 강 계곡의 주민 보호대책에 착수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1월 13일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갑작스런 증기의 폭발을 시작으로 하여 20세기 최대의 화산폭발이 시작됐습니다. 저녁 9시 8분, 굉장한 폭발음이 연속해서 두 번 울렸습니다. 그 후 30분 동안, 증기와 재의 기둥이 11km나 치솟았습니다.
네바도 델 루이스 화산의 폭발은 화산 내부에 있던 고열의 마그마가 산 정상을 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얼음을 녹여 산기슭이 진흙의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최고 시속 48km, 두께가 15m까지 늘어난 진흙 사태는 밤 11시경, 맹렬한 급류가 되어 아르메로를 덮쳤습니다.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아르메로 사람들 대부분은 몇 분 만에 생매장됐습니다. 전체 2만 5000명의 주민 가운데 90퍼센트가 죽었으며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경고를 받았던 또 다른 마을인 친치냐 마을과 그 외곽에서는 약 1000명의 주민이 진흙에 묻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지역 전체에서 발생한 총 사망자수가 2만 5000명, 부상자가 2만 5000명이었습니다.
당시 어느 신문은 “화산재가 떨어지고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데도 사람들은 대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경고를 받고도 결단하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한 어리석은 사람들의 결말이었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입니다. 그는 살기 좋은 곳을 택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서 소돔과 고모라 성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것이 부요하고 기름지고 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퇴폐와 불의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 결과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그들과 함께 모든 재산과 삶을 터전을 잃어버렸고 아브라함 덕분에 겨우 생명만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롯은 소돔의 멸망 전에 이미 경고를 받았고 그곳을 떠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동맹한 세 왕과 그리고 주변의 강대국이었던 4왕과의 전쟁(창 14:1-16)으로 인하여 소돔 주민과 함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동맹한 친구들과 함께 롯을 구하기 위하여 싸웠고 롯은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것은 그곳을 떠나야 한다는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은 계속 머물렀고 결국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함께 모든 재산과 삶의 터전과 아내까지 잃는 비참함을 당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혹시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경고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처럼 삶에 있어서 우리의 결단도 중요하고, 머물러야 하는 삶의 자리도 중요합니다. 결단도 했고 삶의 자리도 정해졌다면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로 시작되는 본문15-16절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돌아보아(에피스코푼테스 /ejpiskopou'nte\")”라는 말씀은 ‘주의 하여 감독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가 감독자가 되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지 살펴야 하며(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한)/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는 자가 있는지 살펴야 하며(악 영향을 끼치는 언행, 이단적 교훈들) / 음행하는 자가 있는지 살펴야 하며(색욕을 좇는 것, 이혼, 혼인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 망령된 자가 있는지(불경스러운, 속된 사람-하나님의 신성함을 짓밟는 행위)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공동체 안에서의 화평과 거룩함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는 에서의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거룩한 장자의 명분을 한 그릇 음식과 바꾼 망령된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단 한 번의 실수로 “버린바 되어 회개할 기회마저 얻지 못했습니다.” 애걸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충동적인 한 번의 일이 영원한 후회로 남겨졌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입니다. ‘설마’라는 마음으로 행한 충동적인 욕망과 행동이 생명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어려운 시대에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세상의 쾌락과 물질의 유혹이 거세어지고 있습니다. 새기거나 만들어진 우상은 아닐지라도 마음을 빼앗는 우상은 주변에 널려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도록 하는 모든 것이 우상임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견뎌야 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주님의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면서 주어진 사명을 따라서 성실하고 주의 깊게 돌아보아 이 시대의 사명을 다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도 부활의 아침을 맞이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영접을 받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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