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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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3-19 17:22
*** 가슴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라 / 벧전 4:7-11
**들어가는 말
벧전 4:7-11(현대어성경) “7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8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9 허기지고 잠잘 데 없는 사람을 보거든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10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11 설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빠짐없이 설교하십시오. 남을 돕는 일에 부름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열성을 모두 쏟아서 남을 도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소서. 아멘.”
예전에 어떤 청년이 중국식 음식점에서 우동을 시켜 먹었습니다. 우동을 맛있게 먹던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무엇인가 딱딱한 것을 씹어서 이빨이 부서지듯 아팠기 때문입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이물질을 골라내던 청년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진주였기 때문입니다. 우동에 넣었던 조갯살 속에 진주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후로 청년은 진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우동을 시켜먹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기대심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혹 어떤 성도들은 이러한 기대심리를 소망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세상적인 기대심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대감’은 자신의 노력이나 우연하게 주어진 행운으로 인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죄 사함과 자녀 됨,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기대감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의도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부귀영화를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까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성도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대감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화석(化石)’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수성가하여 엄청난 재벌이 된 50대의 중년사업가입니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의 주치의가 수행비서에게 건 전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의 말은 ‘사업가가 말기 암이며 잘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절망감이 온 몸을 감싸서 자포자기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일구어놓은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토록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그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다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1년 앞두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지내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겼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옛 전우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말들도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 늘 들려주면서 예수 믿으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분투와 분주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별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는 인생은 먹고 살기 위한 삶 그 이상이며, 창조자가 준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아마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갈 것이며,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들일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심정으로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삶의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동이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 그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으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든지 신앙서적을 통해서든지 성경말씀을 통해서든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지켜야 한다. 등등” 여러분도 너무 많이 들어서 내성이 생기고 반발심이 생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일은 내가 노력하고 힘쓰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11:19-20절을 봅시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먼저 우리 마음에 성령 충만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즉 오로지 자신에게 속한 것들만을 향하던 폐쇄된 가슴을 열고 내게 주어진 사명과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3절의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절(“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말씀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아시지요? 그 그림에는 예수님이 어떤 집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이 두드리시는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그 문은 사람의 마음 문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 자신이 열지 않으면 아무도 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07:9절에서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고백하며, 시편 81:10절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십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열었으면 사단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비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으로든 채워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1:24-26절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이는 사람의 마음이 비워져 있으면 사단이 차지하게 됨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행하는 일들을 본문말씀에서 몇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1) 기도해야 합니다.
7절에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sophroneo(swfronevw) 라는 단어로서 ‘건전한 마음이 되다’, ‘정신이 온전하다’는 의미입니다. “근신하여(nepho, nhvfw)” 라는 말은 ‘술 취하지 않다’, ‘분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중복되는 의미의 단어를 연속해서 사용한 것은 그만큼 기도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도는 옳고 그름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온전한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내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머리 숙임도 아닙니다. 기도는 바른 것을 분별하는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 줄입니다. 기도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4:2-3절에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빼앗아 가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에 못 이겨 싸움을 벌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목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자신의 쾌락을 구하는 데만 급급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육신이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잠시 사는 육신의 삶과 바꾸실 용의가 있습니까?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최후의 영광된 부활의 삶을 기대하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세상일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마 내가 지옥에 가기야 하겠나! 아직 내게는 시간이 많이 있는데’라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졸지에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설마 내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여러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아시지요? 전도서 9:12절에서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요행도 있고, 행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오직 “행한 대로 보상을 받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2)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8-11절의 말씀이 성도들이 행하여야 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적당하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라는 말은 '전체의(every)', ‘모든(all things)’이라는 뜻이며, “열심으로”라는 말은 ‘쉬지 않고’, ‘열렬히’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보다 더 뜨겁게 계속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효과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반드시 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기적인 세상으로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말을 향한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마태복음 24:10-1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를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1-5절에는 20가지에 이르는 말세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증상은 ‘사랑부재현상’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들입니다.
사랑 없는 사회는 사람들을 불만으로 끌어갑니다. 불만은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50%가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한 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여자 중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굳이 세상을 보지 않더라도 지금 이 나라의 교회들이 사랑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울산지역에도 분열되고 싸우고 있는 교회가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어가는 길로서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고’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동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저녁 무렵에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의 말을 생각하면 서 어두움 속에서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의 말씀들은 여행자들이 어두운 밤에 주운 자갈들과 같습니다. 이 말씀들을 많이 가지고, 잘 간직하고, 실행하면 우리 주님 앞에 서는 그 밝은 날에 우리가 간직하고 행한 주님의 말씀이 보석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향하여 가슴을 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을 기도로 이루어가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들어가는 말
벧전 4:7-11(현대어성경) “7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8 무엇보다 먼저 언제나 서로를 깊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9 허기지고 잠잘 데 없는 사람을 보거든 집으로 데려다가 따뜻하게 대접해 주십시오. 10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누구에게나 특별한 능력을 주셨으니 그것을 서로 돕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넘치는 복을 다른 사람과 나누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선물을 잘 관리하도록 하십시오. 11 설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이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빠짐없이 설교하십시오. 남을 돕는 일에 부름을 받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열성을 모두 쏟아서 남을 도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하소서. 아멘.”
예전에 어떤 청년이 중국식 음식점에서 우동을 시켜 먹었습니다. 우동을 맛있게 먹던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습니다. 무엇인가 딱딱한 것을 씹어서 이빨이 부서지듯 아팠기 때문입니다.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이물질을 골라내던 청년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은 분명 진주였기 때문입니다. 우동에 넣었던 조갯살 속에 진주가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 후로 청년은 진주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우동을 시켜먹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기대심리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혹 어떤 성도들은 이러한 기대심리를 소망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은 ‘세상적인 기대심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상적인 기대감’은 자신의 노력이나 우연하게 주어진 행운으로 인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죄 사함과 자녀 됨,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기대감이 항상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의도하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부귀영화를 의지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가까운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성도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대감으로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화석(化石)’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수성가하여 엄청난 재벌이 된 50대의 중년사업가입니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의 주치의가 수행비서에게 건 전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의 말은 ‘사업가가 말기 암이며 잘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절망감이 온 몸을 감싸서 자포자기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일구어놓은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토록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그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다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1년 앞두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지내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겼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옛 전우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말들도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 늘 들려주면서 예수 믿으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분투와 분주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별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는 인생은 먹고 살기 위한 삶 그 이상이며, 창조자가 준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아마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갈 것이며,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들일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심정으로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삶의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동이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본문 말씀에서 그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며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으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야합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든지 신앙서적을 통해서든지 성경말씀을 통해서든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해야 한다. 깨어있어야 한다. 감사해야 한다. 성경을 읽고 지켜야 한다. 등등” 여러분도 너무 많이 들어서 내성이 생기고 반발심이 생길 정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일은 내가 노력하고 힘쓰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11:19-20절을 봅시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먼저 우리 마음에 성령 충만하고 변화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즉 오로지 자신에게 속한 것들만을 향하던 폐쇄된 가슴을 열고 내게 주어진 사명과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13절의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바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20절(“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말씀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아시지요? 그 그림에는 예수님이 어떤 집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예수님이 두드리시는 문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그 문은 사람의 마음 문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은 그 사람 자신이 열지 않으면 아무도 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07:9절에서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고백하며, 시편 81:10절에서는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십니다.
2.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열었으면 사단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비어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으로든 채워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1:24-26절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이는 사람의 마음이 비워져 있으면 사단이 차지하게 됨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이 행하는 일들을 본문말씀에서 몇 가지로 제시하십니다.
1) 기도해야 합니다.
7절에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라는 말은 sophroneo(swfronevw) 라는 단어로서 ‘건전한 마음이 되다’, ‘정신이 온전하다’는 의미입니다. “근신하여(nepho, nhvfw)” 라는 말은 ‘술 취하지 않다’, ‘분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중복되는 의미의 단어를 연속해서 사용한 것은 그만큼 기도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도는 옳고 그름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온전한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내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인 머리 숙임도 아닙니다. 기도는 바른 것을 분별하는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생명 줄입니다. 기도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찾을 것이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4:2-3절에서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구절을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죽여서라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빼앗아 가지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에 못 이겨 싸움을 벌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그 목적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자신의 쾌락을 구하는 데만 급급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기도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육신이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지치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잠시 사는 육신의 삶과 바꾸실 용의가 있습니까?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최후의 영광된 부활의 삶을 기대하면서도 실제의 생활에서는 세상일에 푹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마 내가 지옥에 가기야 하겠나! 아직 내게는 시간이 많이 있는데’라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졸지에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설마 내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여러분,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아시지요? 전도서 9:12절에서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는 요행도 있고, 행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오직 “행한 대로 보상을 받는 것”뿐입니다. 여러분, 기도를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2) 열심히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8-11절의 말씀이 성도들이 행하여야 하는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을 적당하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라는 말은 '전체의(every)', ‘모든(all things)’이라는 뜻이며, “열심으로”라는 말은 ‘쉬지 않고’, ‘열렬히’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보다 더 뜨겁게 계속적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효과가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은 반드시 해야 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기적인 세상으로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말을 향한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마태복음 24:10-11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를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후서 3:1-5절에는 20가지에 이르는 말세의 증상들이 나타납니다. 이 모든 증상은 ‘사랑부재현상’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며,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들입니다.
사랑 없는 사회는 사람들을 불만으로 끌어갑니다. 불만은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50%가 넘어선 것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이 파탄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한 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행복해 보인다는 이유로 여자 중학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굳이 세상을 보지 않더라도 지금 이 나라의 교회들이 사랑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울산지역에도 분열되고 싸우고 있는 교회가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랑을 잃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어가는 길로서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고’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동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말을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있던 세 사람이 저녁 무렵에 이상한 나그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나그네는 그들에게 “얼마 가지 않아 마른 시내 하나를 건너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당신들이 그곳에 도착하거든 말에서 내려 시내에서 자갈들을 주워 자루와 호주머니에 채우도록 하시오. 그리고 계속 여행하다가 해가 뜰 때 당신들이 주운 자갈들을 살펴보시오. 당신들은 기뻐하며 한편으로는 애석해 할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말처럼 세 사람은 마른 시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나그네의 말을 생각하면 서 어두움 속에서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많은 자갈들 중에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해가 뜰 무렵 그들은 주워 온 자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갈들은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및 기타 여러 가지 보석들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제야 그 나그네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주워온 자갈들이 보석으로 변해있어 기뻤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주워오지 않은 것이 애석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늘의 말씀들은 여행자들이 어두운 밤에 주운 자갈들과 같습니다. 이 말씀들을 많이 가지고, 잘 간직하고, 실행하면 우리 주님 앞에 서는 그 밝은 날에 우리가 간직하고 행한 주님의 말씀이 보석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향하여 가슴을 열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랑의 사명을 기도로 이루어가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