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합당하게 행하는 것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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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3-19 17:16
*** 행복은 합당하게 행하는 것 / 대상 15:1-15
** 들어가는 말
대상 15:1-15(현대어성경) “1 다윗은 자기가 살 궁궐을 다윗성에 짓고 또 법궤를 모실 장소도 정해 성막을 쳐놓았다. 2 그리고 석 달 전의 실수를 거울삼아 이렇게 지시하였다.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만을 골라서 법궤를 모셔 오도록 하여라. 여호와께서 몸소 레위 사람들을 뽑아 세우시어 그들만이 법궤를 운반하고, 언제나 법궤를 모시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3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가 마련해 놓은 장소로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기 위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였다.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비롯하여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암미나답 같은 레위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12 말하였다. ‘여러분은 레위 지파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형제들과 함께 몸을 정결하게 한 뒤에, 내가 마련해 놓은 곳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시오! 13 지난번에는 여러분이 오시지 않아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무서운 형벌을 내리셨소. 우리가 규정대로 법궤를 모시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소.’ 14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몸을 정결히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올 채비를 하였다. 15 레위 사람들이 법궤를 채에 꿰어 어깨에 메었는데, 모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대로 하였다.”
오늘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출세하면 행복할 것 같고,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고, 소유가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식이든 물질이든 권력이든 소유한 만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과 소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궤’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城)에 특별한 장막을 치고 그곳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고자 했습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라고 준비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궤를 옮기려는 노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삼 개월 전에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가 ‘기럇여아림’ 근방에 거주하는 유다지파 자손 ‘아비나답’의 집에 20여년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온갖 정성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길로 ‘하나님의 궤’는 이방사람인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겨져서 3개월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13:14절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다윗은 실패를 거울삼아 지난번의 잘못된 과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이번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본문 2절을 봅시다.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하나님의 궤는 반드시 레위 사람들이 어깨로 메어서 운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합당한 예법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을 따를 때에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마음은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이주를 감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려서 100세에 얻은 아들이 성숙할 무렵에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주저함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헌신하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철저한 순종과 희생과 헌신으로 인하여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열국의 아비가 되고 언약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길을 본문의 다윗의 이야기에서 찾아봅시다.
먼저, 다윗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봅시다.
13장의 내용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던 첫 번째 시도장면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이미 100여 년 전, ‘엘리’ 제사장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 가지고 나갔다가 빼앗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땅에서 일곱 달 동안을 궤가 옮겨지는 다섯 도시를 징벌하여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며, 그 후 지금까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집에 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후,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이며, 온 이스라엘의 사상과 정신의 집약이 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고 의지하기 위하여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올 것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에 대하여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그 뜻을 물어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즉, 다윗은 혼자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고 군부와 민중의 여론을 합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이에 뭇 백성이 이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싣고, ‘유다 자손’ 아비나답의 손자인 ‘웃사’와 ‘아히오’가 수레를 몰고, 법궤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는 다윗과 백성들의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 자체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뜻을 물어서 이 큰 일을 시작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라거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좋아 하시더라.’라거나, ‘믿음이 좋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더라.’는 등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지난번의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 가장 깊이 박혀 있는 말씀이 있다면 마태복음 7:21-23절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러분은 지금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아니면 내 생각으로 하거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열정이 뜨겁고 순수한 마음이라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열정이 뜨겁다고 한들 다윗만큼 하겠습니까? 다윗의 순수한 마음은 우리가 읽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물리치셨고 다윗은 고통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원했지만 도리어 고통과 두려움만 엄습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실수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법을 배웠습니다. 2절 말씀이 마치 다윗의 독백처럼 들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장막을 치고는 비장한 각오를 하듯이 말합니다.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다윗은 실수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11절에서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합당하게 여기시는 뜻으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표시입니다. 계시록 3:19절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길을 찾았습니다. 12-13절입니다.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궤는 헌신된 사람인 레위지파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사람의 생각을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레위지파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라고 했습니다. 본문 뒤쪽의 26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합당하게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옛 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결코 그렇게 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도 못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원한다면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요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만 합니다. 야고보서 4:15-16절을 봅시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현대어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사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해야겠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음대로 계획을 벌이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자기 확신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소망하는 것이나,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을 원하십니까? 다윗의 실패를 거울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고까지 한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않았을 때에 가차 없이 징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나 생활을 곰곰이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 자신이 생각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경기를 보셨지요? 그처럼 룰이 엄격한지 몰랐습니다. 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차 없이 ‘실격’처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2:5절에서도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성도들의 영적 경기의 룰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경주하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비록 힘든 십자가가 지워지고, 어려운 고통의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대로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 방법과 길을 물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여러분에게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형통의 복과 삶의 행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대상 15:1-15(현대어성경) “1 다윗은 자기가 살 궁궐을 다윗성에 짓고 또 법궤를 모실 장소도 정해 성막을 쳐놓았다. 2 그리고 석 달 전의 실수를 거울삼아 이렇게 지시하였다. ‘이번에는 레위 사람들만을 골라서 법궤를 모셔 오도록 하여라. 여호와께서 몸소 레위 사람들을 뽑아 세우시어 그들만이 법궤를 운반하고, 언제나 법궤를 모시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3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가 마련해 놓은 장소로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기 위해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하였다. 11 다윗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비롯하여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암미나답 같은 레위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12 말하였다. ‘여러분은 레위 지파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형제들과 함께 몸을 정결하게 한 뒤에, 내가 마련해 놓은 곳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오시오! 13 지난번에는 여러분이 오시지 않아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무서운 형벌을 내리셨소. 우리가 규정대로 법궤를 모시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소.’ 14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몸을 정결히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법궤를 모셔 올 채비를 하였다. 15 레위 사람들이 법궤를 채에 꿰어 어깨에 메었는데, 모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주신 대로 하였다.”
오늘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출세하면 행복할 것 같고,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고, 소유가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식이든 물질이든 권력이든 소유한 만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과 소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짓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궤’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城)에 특별한 장막을 치고 그곳으로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고자 했습니다. 본문 1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고 위하여 장막을 치고”라고 준비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궤를 옮기려는 노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삼 개월 전에 ‘하나님의 궤’를 옮기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블레셋에서 돌아온 법궤가 ‘기럇여아림’ 근방에 거주하는 유다지파 자손 ‘아비나답’의 집에 20여년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온갖 정성과 열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길로 ‘하나님의 궤’는 이방사람인 ‘오벳에돔’의 집으로 옮겨져서 3개월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13:14절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다윗은 실패를 거울삼아 지난번의 잘못된 과정에 대한 하나님의 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이번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온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본문 2절을 봅시다. “가로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하고” 하나님의 궤는 반드시 레위 사람들이 어깨로 메어서 운반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합당한 예법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을 따를 때에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의 출발점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마음은 철저한 순종과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이주를 감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려서 100세에 얻은 아들이 성숙할 무렵에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주저함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헌신하는 것보다 더 큰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철저한 순종과 희생과 헌신으로 인하여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열국의 아비가 되고 언약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 즉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임을 보여주는 모범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길을 본문의 다윗의 이야기에서 찾아봅시다.
먼저, 다윗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봅시다.
13장의 내용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던 첫 번째 시도장면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올랐을 때에는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이미 100여 년 전, ‘엘리’ 제사장 시절에 블레셋과의 전쟁에 가지고 나갔다가 빼앗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땅에서 일곱 달 동안을 궤가 옮겨지는 다섯 도시를 징벌하여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며, 그 후 지금까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집에 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등극한 후, 이스라엘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율법의 중심이며, 온 이스라엘의 사상과 정신의 집약이 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묻고 의지하기 위하여 ‘기럇여아림’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 올 것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에 대하여 천부장과 백부장,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그 뜻을 물어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즉, 다윗은 혼자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고 군부와 민중의 여론을 합한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이에 뭇 백성이 이일을 선히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응답했습니다.
다윗은 새 수레를 만들어 언약궤를 싣고, ‘유다 자손’ 아비나답의 손자인 ‘웃사’와 ‘아히오’가 수레를 몰고, 법궤가 20년 동안 머물렀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서 출발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는 다윗과 백성들의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 자체를 거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뜻을 물어서 이 큰 일을 시작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은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뜻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을 것 같아서’라거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좋아 하시더라.’라거나, ‘믿음이 좋은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더라.’는 등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지난번의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닌, 자신의 생각과 계획대로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의 마음에 가장 깊이 박혀 있는 말씀이 있다면 마태복음 7:21-23절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러분은 지금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아니면 내 생각으로 하거나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을 향하는 열정이 뜨겁고 순수한 마음이라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열정이 뜨겁다고 한들 다윗만큼 하겠습니까? 다윗의 순수한 마음은 우리가 읽어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물리치셨고 다윗은 고통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원했지만 도리어 고통과 두려움만 엄습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실수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법을 배웠습니다. 2절 말씀이 마치 다윗의 독백처럼 들립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 장막을 치고는 비장한 각오를 하듯이 말합니다.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를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메고 영원히 저를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다윗은 실수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11절에서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열심을 내고 하나님의 합당하게 여기시는 뜻으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표시입니다. 계시록 3:19절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여 하나님께 합당한 길을 찾았습니다. 12-13절입니다.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족장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충돌하셨나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저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의 궤는 헌신된 사람인 레위지파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사람의 생각을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각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레위지파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라고 했습니다. 본문 뒤쪽의 26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을 도우셨으므로 무리가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제사를 드렸더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합당하게 행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옛 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나라에는 결코 그렇게 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도 못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원한다면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요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만 합니다. 야고보서 4:15-16절을 봅시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현대어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만일 주께서 허락하신다면 사는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해야겠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마음대로 계획을 벌이고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러한 자기 확신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소망하는 것이나, 기도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을 원하십니까? 다윗의 실패를 거울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고까지 한 다윗입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지 않았을 때에 가차 없이 징계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나 생활을 곰곰이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 자신이 생각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난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 경기를 보셨지요? 그처럼 룰이 엄격한지 몰랐습니다. 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차 없이 ‘실격’처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디모데후서 2:5절에서도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성도들의 영적 경기의 룰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경주하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비록 힘든 십자가가 지워지고, 어려운 고통의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대로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 방법과 길을 물으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에 성실하게 순종함으로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여러분에게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형통의 복과 삶의 행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