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이 있는 교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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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2-21 23:55
*** 열린 문이 있는 교회 / 계 3:7-13
** 들어가는 말
계 3:7-13(현대어성경)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내라. 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으며 이분이 열면 아무도 닫을 자가 없고, 이분이 닫으면 아무도 열 자가 없는, 거룩하고 참되신 분의 말씀이다. 8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결코 강하지는 못하나 내게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며 내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놓았다. 9 주의하라. 사단의 앞잡이이면서도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쳐부수겠다. 그들을 네 발아래 엎드리게 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만들겠다. 10 너는 박해당하면서도 인내로 내게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을 시험하기 위하여 닥쳐올 큰 재난과 시련의 때에 너를 보호하여 주겠다. 11 보라, 내가 곧 갈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굳게 붙잡고 있으라. 그러면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12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다. 그는 안전할 것이며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 하나님의 이름을 쓸 것이며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다. 1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으라.”
신실한 신앙을 가졌던 39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좌우명에 얽힌 일화입니다.
카터 대통령은 해군사관학교 출신 해군장교였습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하는 자리에서 사령관은 그의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카터 소위, 귀관은 사관학교 시절에 몇 등이나 했는가?”
예상 밖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던 그는 “750명 중에 57등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령관은
“귀관은 어찌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57등 밖에 못했는가?”
라고 꾸짖었습니다. 사령관은 카터 소위가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음을 나무란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카터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라는 사령관의 말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며, 열정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충성됨’, ‘신실함’이라는 말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이 아닌 책망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을 포함하는 계시록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이 시간에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책망이 없고 칭찬과 격려로 가득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말씀의 배경
책망과 경고가 없는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빌라델비아 市는 ‘사데’에서 45㎞ 정도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 라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군사적인 전략 도시로 중요시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에 이르는 큰문이었습니다. 이 관문을 통하여 그리스 문명이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8절에서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라고 하신 내용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린 문”이란, 곧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대륙의 큰문의 위치에 빌라델비아를 세우도록 하신 목적은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거대한 화산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산 토로 인하여 기름진 평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거대한 포도 재배 지역이 되었습니다. 화산으로 인한 또 하나의 유명한 것은 ‘온천’입니다. 빌라델비아 온천은 약효가 많기로 유명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건강과 치료를 위하여 찾아 왔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유명합니다.
빌라델비아 시민은 그들이 처한 환경 때문에 항상 불안정한 생활을 했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있을 때마다 화산재와 날아오는 돌들을 피하여 도시를 떠나 피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처럼 도망과 귀환이라는 불안정한 삶이 계속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12절의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는 보호와 안전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곧 지진과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삶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에게 안전을 제공하십니다.
또한 빌라델비아는 화산재로 된 양분 많은 토양 때문에 포도 재배지로 유명합니다. 그 덕분에 그 도시는 술의 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섬기는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포도로 인한 번영은 자연스럽게 술의 神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다른 작은 신들도 아주 많아서 ‘작은 아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특히 이 도시에서는 나라와 도시를 위한 공로가 있는 자를 기리기 위하여 신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 공로자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비유하셔서 12절에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빌라델비아의 역사와 매일 만나는 생활 속의 일을 통하여 성도들을 깨우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생활 속의 작은 일을 통하여 우리를 교훈 하시고, 깨우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영의 귀와 마음을 열고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 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과 신앙과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리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에게 은혜의 문을 여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①진실하신 분이시며 ②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생명이신 참 진리와 진정한 행복이 되십니다. 또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는 분”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22:22절의 인용인데, 히스기야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엘리아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분에 넘치는 일을 자행하던 경제장관 ‘셉나’를 파면시키시고, ‘엘리아김’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일을 열고 닫는 지도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신실하며 믿음을 지킨 자들이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첫 번째 문은 선교적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려져 있는 문은 복음 선교의 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선교적인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이나 몽골이 아니라도, 바로 내가 살고 내가 일하는 곳에 ‘전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복음 증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38절에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적 기회의 문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4절에서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우리가 수고함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한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이는 다니엘서에서 말씀하신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급이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두 번째 문은 자기 발전을 위한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정문 초소를 지나는데 초소 위에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군사가 전투를 할 때에는 특별한 무기와 장비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상대편 군대보다 병력이나 무기나 장비가 뒤떨어져서 전투에 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투하는 적을 발견하고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어서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6절을 봅시다.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현대어성경, ‘그러나 파수꾼이 제때에 비상 나팔을 불지 않아서 백성들이 미처 경계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적에게 잡혀 죽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 믿을 수 없는 파수꾼에게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사명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 성도에게 주신 기회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함으로 인하여 그 기회를 놓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5:16절에서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현대어성경/ 모든 기회를 충분히 살려서 선한 행동을 하십시오.).”라고 하셨고, 골로새서 4:5절에서는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려서…)”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을 봅시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에서 ‘세월’은 ‘중요한 시기,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하며, ‘아끼라’는 말은 ‘도로 사다, 속량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로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그에 따르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게으름은 매우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까? 혹시 그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소중한 자기 발전의 기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세 번째 문은 하나님 나라의 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7,9절에서 “나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양 우리의 문이 되시며 목자이신 예수님. 이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절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십니다. 이 문은 기도를 통하여 열립니다. 이 문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권세로든지 닫을 수 없으며, 우리를 직접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능력이었지만 이단과 유대주의와 우상으로 인한 가난과 고통과 핍박을 이겨내고 주님의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것, 큰 것, 보이는 것이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삶과 생명을 맡길 때에 모든 것이 있으며,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3. 열린 문이 있는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본문 9-12절의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보상이 있고, 또한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은 유대 교도들의 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박해자들로 무릎 꿇게 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통쾌한 보상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인내로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마지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를 절대로 실패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2: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하셨고, 히브리서 11:6절에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도 비록 약하고 보잘것없는 적은 능력뿐인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주어진 기회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여 헌신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린 복된 가정과 교회로 주님의 날까지 이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계 3:7-13(현대어성경)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지도자에게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내라. 이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으며 이분이 열면 아무도 닫을 자가 없고, 이분이 닫으면 아무도 열 자가 없는, 거룩하고 참되신 분의 말씀이다. 8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결코 강하지는 못하나 내게 순종하려고 노력했으며 내 이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놓았다. 9 주의하라. 사단의 앞잡이이면서도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쳐부수겠다. 그들을 네 발아래 엎드리게 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 만들겠다. 10 너는 박해당하면서도 인내로 내게 순종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을 시험하기 위하여 닥쳐올 큰 재난과 시련의 때에 너를 보호하여 주겠다. 11 보라, 내가 곧 갈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굳게 붙잡고 있으라. 그러면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할 것이다. 12 이기는 사람은 내가 내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할 것이다. 그는 안전할 것이며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 하나님의 이름을 쓸 것이며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것이다. 1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으라.”
신실한 신앙을 가졌던 39대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의 좌우명에 얽힌 일화입니다.
카터 대통령은 해군사관학교 출신 해군장교였습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하는 자리에서 사령관은 그의 신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카터 소위, 귀관은 사관학교 시절에 몇 등이나 했는가?”
예상 밖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던 그는 “750명 중에 57등을 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령관은
“귀관은 어찌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했으며, 57등 밖에 못했는가?”
라고 꾸짖었습니다. 사령관은 카터 소위가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음을 나무란 것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 카터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라는 사령관의 말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 충성스러운 사람을 찾으시며, 그들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며, 열정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충성됨’, ‘신실함’이라는 말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칭찬이 아닌 책망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오늘 본문을 포함하는 계시록 일곱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입니다. 이 시간에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책망이 없고 칭찬과 격려로 가득한 빌라델비아 교회를 돌아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말씀의 배경
책망과 경고가 없는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는 빌라델비아 市는 ‘사데’에서 45㎞ 정도 남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 라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국경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군사적인 전략 도시로 중요시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에 이르는 큰문이었습니다. 이 관문을 통하여 그리스 문명이 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8절에서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라고 하신 내용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린 문”이란, 곧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대륙의 큰문의 위치에 빌라델비아를 세우도록 하신 목적은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거대한 화산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화산 토로 인하여 기름진 평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거대한 포도 재배 지역이 되었습니다. 화산으로 인한 또 하나의 유명한 것은 ‘온천’입니다. 빌라델비아 온천은 약효가 많기로 유명하여 많은 나라들에서 건강과 치료를 위하여 찾아 왔습니다. 이것은 현재도 유명합니다.
빌라델비아 시민은 그들이 처한 환경 때문에 항상 불안정한 생활을 했습니다. 화산과 지진이 있을 때마다 화산재와 날아오는 돌들을 피하여 도시를 떠나 피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처럼 도망과 귀환이라는 불안정한 삶이 계속되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12절의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는 보호와 안전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곧 지진과 죽음의 공포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삶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에게 안전을 제공하십니다.
또한 빌라델비아는 화산재로 된 양분 많은 토양 때문에 포도 재배지로 유명합니다. 그 덕분에 그 도시는 술의 神인 ‘디오니시우스’를 섬기는 우상의 중심지였습니다. 포도로 인한 번영은 자연스럽게 술의 神을 숭배하게 했습니다. 다른 작은 신들도 아주 많아서 ‘작은 아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습니다. 특히 이 도시에서는 나라와 도시를 위한 공로가 있는 자를 기리기 위하여 신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 공로자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비유하셔서 12절에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빌라델비아의 역사와 매일 만나는 생활 속의 일을 통하여 성도들을 깨우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생활 속의 작은 일을 통하여 우리를 교훈 하시고, 깨우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영의 귀와 마음을 열고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열린 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과 신앙과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열리는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에게 은혜의 문을 여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①진실하신 분이시며 ②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생명이신 참 진리와 진정한 행복이 되십니다. 또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열면 닫을 사람이 없는 분” 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22:22절의 인용인데, 히스기야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던 ‘엘리아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고 분에 넘치는 일을 자행하던 경제장관 ‘셉나’를 파면시키시고, ‘엘리아김’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일을 열고 닫는 지도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고 하십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를 신실하며 믿음을 지킨 자들이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첫 번째 문은 선교적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빌라델비아 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려져 있는 문은 복음 선교의 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도 선교적인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남미 대륙이나 몽골이 아니라도, 바로 내가 살고 내가 일하는 곳에 ‘전도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복음 증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1:38절에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선교적 기회의 문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원한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4절에서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가장 큰 자랑거리는 우리가 수고함으로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한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이는 다니엘서에서 말씀하신대로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상급이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두 번째 문은 자기 발전을 위한 기회의 문이었습니다.
전방 부대에 배치되어 정문 초소를 지나는데 초소 위에 “전투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을 수 없다.” 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군사가 전투를 할 때에는 특별한 무기와 장비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상대편 군대보다 병력이나 무기나 장비가 뒤떨어져서 전투에 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침투하는 적을 발견하고 알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어서 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3:6절을 봅시다.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현대어성경, ‘그러나 파수꾼이 제때에 비상 나팔을 불지 않아서 백성들이 미처 경계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적에게 잡혀 죽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 믿을 수 없는 파수꾼에게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사명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각 성도에게 주신 기회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함으로 인하여 그 기회를 놓친다면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누누이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5:16절에서는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현대어성경/ 모든 기회를 충분히 살려서 선한 행동을 하십시오.).”라고 하셨고, 골로새서 4:5절에서는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살려서…)”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12:47-48절을 봅시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세월을 아끼라”는 말에서 ‘세월’은 ‘중요한 시기,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별한 기회’를 의미하며, ‘아끼라’는 말은 ‘도로 사다, 속량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의미로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기회를 찾아 그에 따르는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게으름은 매우 경계해야 할 대상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까? 혹시 그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소중한 자기 발전의 기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잘 준비된 자를 사용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어주신 세 번째 문은 하나님 나라의 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7,9절에서 “나는 문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양 우리의 문이 되시며 목자이신 예수님. 이 예수님은 요한복음 14:6절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십니다. 이 문은 기도를 통하여 열립니다. 이 문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권세로든지 닫을 수 없으며, 우리를 직접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큰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적은 능력이었지만 이단과 유대주의와 우상으로 인한 가난과 고통과 핍박을 이겨내고 주님의 명령을 지켰기 때문에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것, 큰 것, 보이는 것이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삶과 생명을 맡길 때에 모든 것이 있으며,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3. 열린 문이 있는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보상이 있습니다.
본문 9-12절의 말씀입니다.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주어진 보상이 있고, 또한 약속이 있습니다. 주님은 유대 교도들의 심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박해자들로 무릎 꿇게 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통쾌한 보상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박해 속에서도 인내로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마지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를 절대로 실패하도록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사무엘상 2: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하셨고, 히브리서 11:6절에서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도 비록 약하고 보잘것없는 적은 능력뿐인 교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인내하며 주어진 기회에 열정과 최선을 다하여 헌신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문이 활짝 열린 복된 가정과 교회로 주님의 날까지 이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