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열매를 기대하십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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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8-14 07:23
*** 삶의 열매를 기대하십니까? / 렘 4:1-4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4:1-4(현대어성경), 1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지금 네게로 돌아올 수 있다. 다만 네가 그 더러운 우상들을 떨쳐 버리기만 하면 네가 내게서 다시 평안을 얻을 것이다. 2 또 네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네가 맹세한 말을 스스로 충실하게 지켜 나간다면 다른 민족들도 네게서 복을 받아갈 수가 있고, 그들도 너로 인해 나를 알게 될 것이며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3 너희는 똑똑히 들어라.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묵은 땅을 완전히 갈아엎어라! 4 너희는 내 마음에 들도록 할례를 받아라. 곧 너희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너희와 나를 갈라놓는 바로 그것을 제거 하여라! 너희 마음에서 그 겉껍질을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 분노가 너희에게 불길처럼 내리 덮쳐서 너희를 모조리 태워 죽일 것이다. 그 불은 아무리 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너희가 너무도 흉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 ‘무너지는 자영업’에 대한 기사가 나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의 비율이 무려 3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영업자가 많은 이유는 명예퇴직이나 은퇴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7-80%가 도산하고 있습니다. 몇 십 년을 수고해서 모은 퇴직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숱하게 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쉽게 도산하는 이유는 ‘이런 업종이 잘 된다더라.’라는 풍문만 듣고 충분한 정보와 준비 없이 무작정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들 때문에 신나는 사람은 인테리어 업종과 간판 업종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새로 생기는 자영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무대포’라고 합니다.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서 하는 일을 앞뒤 재보지도 않고 뛰어들어 낭패를 당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옛날처럼 ‘참고 기다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옛날의 묵은 사고방식은 빨리 버릴수록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눅 5:38)고 하셨습니다. 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을 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자인 듀안 슐츠(Duane P. Schultz)가 쓴 ‘발달 심리학(Growth Psychology)’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인으로서 성숙한 인간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의식 속에서 살지 않고 항상 의식을 분명히 하고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단순한 일이라도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됩니다. 매 번 반복할 때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따라가지 않으면 되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성장 동기와 자아 형성의 동기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누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스승도 내가 만나는 것이고 좋은 친구도 내가 만드는 것이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실패한 과거가 있었든지 어두운 날이 있었든지 그것은 그날이고, 오늘은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의 부모님들처럼 옛날 일에 매여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자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영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새로운 삶의 경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파멸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경영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본문 3절에서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분명히 앞으로의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이 잡초가 무성한 땅에 그대로 씨를 뿌린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은 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쁜 세상에서 삶의 열매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본문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기는 남 유다가 몰락해 가는 말기와 멸망을 당한 초기 때까지입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은 100여 년 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멸망을 남 유다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남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세속화되어 갔고 우상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가증스러운 행위를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시늉은 했지만 마음은 우상을 따르고 강대국들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30-31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라고 탄식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남 유다의 죄악을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렘 2:13)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거짓된 신앙뿐인 백성들이 그래도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가 바로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좋은 삶의 열매를 기대하면서 묵은 땅, 잡초가 가득하고 가시덤불이 뒤덮인 땅에 씨를 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삶의 열매를 기대한다면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한다고 많이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것도 시기가 있고, 낚시를 하는 것도 물때가 있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바쁘다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그대로 타고 갈 수도 없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삶의 이치를 잘 알면서도 성도들이 영적인 일을 무시고 순서도 시기도 무시하고 무대포로 생활에 뛰어듭니다. 이것은 마치 바쁘다고 농부가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두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항상 이른 아침에 나란히 나무하러 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에 지고 내려오는 나뭇짐이 항상 달랐습니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나무꾼의 나뭇단이 항상 작았던 것입니다. 자신은 잠시 쉬는 것도 아까워서 잘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나무를 했는데도 나뭇단이 작았습니다. 덩치 큰 나무꾼은 이것이 늘 불만이었고 의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덩치 큰 나무꾼은 다른 나무꾼이 나무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나무꾼은 틈틈이 그늘에 앉아서 쉬었고, 덩치도 작았음에도 아주 나무를 쉽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꾼이 쉴 때에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나무꾼은 쉴 때마다 도끼를 갈고 있었습니다.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지요.
옛말에 “좁쌀 천 바퀴 도는 것보다 호박 한 바퀴 도는 것이 더 멀리 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랜 삶의 경험으로 일의 때와 순서를 잘 알아서 하는 것이 신참이 힘과 패기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보실 때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했으며, 도저히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곳에 계속 씨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망해 가는 남 유다를 보시면서 하나님이 너무나 답답하셔서 “너희는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묵은 땅을 완전히 갈아엎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갈아엎어야 합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에는 우상을 두고 있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절 말씀에서 “너는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묵은 땅”이란 ‘하나님을 떠나 있던 옛 마음과 옛 성품’을 말합니다.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외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입니다. 이방인 속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별해 내는 종교적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별(聖別)’을 상징합니다. 이 육체의 성별이 심령의 성별과 함께 하지 않을 때에 그것은 위선이며, 가증한 타락의 위장술에 불과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도 성별되지 못한 삶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아엎으라고 하신 것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삶의 경영입니다. 세상적인 경영을 버리고 하나님의 경영방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생활을 한다면 이는 온 삶이 잡초로 뒤덮인 것과 갔습니다. 이러한 성별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육신적 성품을 말합니다. 인간의 육신적 성품대로 따라가면 마음 밭이 잡초로 무성하게 됩니다. 이 상태를 로마서 1:28-31절에서는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 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 밭에는 어떤 영적인 열매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삶의 열매를 기대한다면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본문 1절 후반절부터 2절 상반절에서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4절 상반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거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영적 회복운동이며 영적 개혁운동입니다. 삶의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우리의 묵은 마음을 갈아엎고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맹세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맹세를 하라고 하십니까? 2절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이 맹세한 말을 스스로 충실하게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활 속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은 삶의 경영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른 삶의 경영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경영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딴 일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의 바른 경영은 당연히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해야할 시간에 공부하지 않게 되면 결국 그 시간에 해서는 안 되는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탈선하게 됩니다. 공무원들이 정도를 걷지 않게 되면 결국 유혹에 빠지게 되고 탈선경영을 하게 되어 패망하게 됩니다. 요즈음 법조계의 비리를 잘 알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엉뚱한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물질도 바르게 사용되지 않으면 엉뚱한 욕망이나 죄악 된 곳에 사용되어 집니다. 갈라디아 6:7절(현대어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무시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성도들의 영적인 경영도 그러합니다. 주일을 휴일로 생각하여 자신의 여가선용의 기회로 사용하고, 하루 종일토록 하나님을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게 여겨지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있던 시간도 없어지는 그런 경영이라면 자신의 장래를 위한 씨 뿌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형통한 삶의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경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10-11절에서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난 기사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사범교육을 받고 있는 흑인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격증을 딸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주유소에서 부업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고객들은 흑인 청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백인 종업원에게서만 휘발유를 사려고 했습니다. 주인은 몇몇 고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것을 눈치 채고 흑인청년을 해고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이웃에 사는 한 그리스도인인 여인이 주유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청년을 고용하고 나서 몇 사람의 고객을 잃은 것 같습니까?” “18명 정도, 아마 20명쯤 될 겁니다.” “그러면 제가 20명의 새 고객을 끌어들인다면 저 청년을 계속 고용하시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 그리스도인 여인은 20명뿐만 아니라 5명을 더 끌어들였습니다. 물론 흑인청년은 계속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퍼져 나갔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서는 이 이야기를 기사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 많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용기를 가지고 선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작은 친절이라도 그 효과에 있어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른 삶의 경영이며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하여 믿음의 용기를 냅시다. 적은 양의 씨앗이라도 뿌려야 거둘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왕 뿌릴 때에는 우리의 수고와 헌신과 기도와 사랑이 담긴 최상의 삶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리하면 반드시 좋은 삶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6:5-6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아멘-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4:1-4(현대어성경), 1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지금 네게로 돌아올 수 있다. 다만 네가 그 더러운 우상들을 떨쳐 버리기만 하면 네가 내게서 다시 평안을 얻을 것이다. 2 또 네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네가 맹세한 말을 스스로 충실하게 지켜 나간다면 다른 민족들도 네게서 복을 받아갈 수가 있고, 그들도 너로 인해 나를 알게 될 것이며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3 너희는 똑똑히 들어라. 여호와께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묵은 땅을 완전히 갈아엎어라! 4 너희는 내 마음에 들도록 할례를 받아라. 곧 너희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너희와 나를 갈라놓는 바로 그것을 제거 하여라! 너희 마음에서 그 겉껍질을 잘라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내 분노가 너희에게 불길처럼 내리 덮쳐서 너희를 모조리 태워 죽일 것이다. 그 불은 아무리 꺼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너희가 너무도 흉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 ‘무너지는 자영업’에 대한 기사가 나서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의 비율이 무려 30%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영업자가 많은 이유는 명예퇴직이나 은퇴한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7-80%가 도산하고 있습니다. 몇 십 년을 수고해서 모은 퇴직금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리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숱하게 늘고 있습니다. 이렇게 쉽게 도산하는 이유는 ‘이런 업종이 잘 된다더라.’라는 풍문만 듣고 충분한 정보와 준비 없이 무작정 뛰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들 때문에 신나는 사람은 인테리어 업종과 간판 업종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새로 생기는 자영업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두고 ‘무대포’라고 합니다.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서 하는 일을 앞뒤 재보지도 않고 뛰어들어 낭패를 당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옛날처럼 ‘참고 기다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어림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는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옛날의 묵은 사고방식은 빨리 버릴수록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새 포도주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눅 5:38)고 하셨습니다. 즉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상을 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자인 듀안 슐츠(Duane P. Schultz)가 쓴 ‘발달 심리학(Growth Psychology)’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현대인으로서 성숙한 인간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무의식 속에서 살지 않고 항상 의식을 분명히 하고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단순한 일이라도 생각 없이 해서는 안 됩니다. 매 번 반복할 때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따라가지 않으면 되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성장 동기와 자아 형성의 동기를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누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스승도 내가 만나는 것이고 좋은 친구도 내가 만드는 것이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실패한 과거가 있었든지 어두운 날이 있었든지 그것은 그날이고, 오늘은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옛날의 부모님들처럼 옛날 일에 매여 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자기를 수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고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영적인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새로운 삶의 경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파멸을 향하여 달려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삶으로 경영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본문 3절에서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분명히 앞으로의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이 잡초가 무성한 땅에 그대로 씨를 뿌린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은 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바쁜 세상에서 삶의 열매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본문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기는 남 유다가 몰락해 가는 말기와 멸망을 당한 초기 때까지입니다. 이미 북 이스라엘은 100여 년 전에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멸망을 남 유다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남 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며, 세속화되어 갔고 우상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문 1절에서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며,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가증스러운 행위를 버리고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시늉은 했지만 마음은 우상을 따르고 강대국들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5:30-31절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라고 탄식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남 유다의 죄악을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렘 2:13)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거짓된 신앙뿐인 백성들이 그래도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행위가 바로 가시덤불 속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좋은 삶의 열매를 기대하면서 묵은 땅, 잡초가 가득하고 가시덤불이 뒤덮인 땅에 씨를 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2. 삶의 열매를 기대한다면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한다고 많이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것도 시기가 있고, 낚시를 하는 것도 물때가 있고, 사랑을 고백하는 것도 적절한 때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바쁘다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를 그대로 타고 갈 수도 없고,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삶의 이치를 잘 알면서도 성도들이 영적인 일을 무시고 순서도 시기도 무시하고 무대포로 생활에 뛰어듭니다. 이것은 마치 바쁘다고 농부가 잡초가 무성한 땅을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 어느 마을에 두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항상 이른 아침에 나란히 나무하러 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저녁 무렵에 지고 내려오는 나뭇짐이 항상 달랐습니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나무꾼의 나뭇단이 항상 작았던 것입니다. 자신은 잠시 쉬는 것도 아까워서 잘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나무를 했는데도 나뭇단이 작았습니다. 덩치 큰 나무꾼은 이것이 늘 불만이었고 의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덩치 큰 나무꾼은 다른 나무꾼이 나무하는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나무꾼은 틈틈이 그늘에 앉아서 쉬었고, 덩치도 작았음에도 아주 나무를 쉽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꾼이 쉴 때에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나무꾼은 쉴 때마다 도끼를 갈고 있었습니다.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지요.
옛말에 “좁쌀 천 바퀴 도는 것보다 호박 한 바퀴 도는 것이 더 멀리 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랜 삶의 경험으로 일의 때와 순서를 잘 알아서 하는 것이 신참이 힘과 패기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보실 때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했으며, 도저히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곳에 계속 씨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패망해 가는 남 유다를 보시면서 하나님이 너무나 답답하셔서 “너희는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묵은 땅을 완전히 갈아엎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갈아엎어야 합니까?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득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에는 우상을 두고 있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강대국인 애굽과 앗수르를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3절 말씀에서 “너는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묵은 땅”이란 ‘하나님을 떠나 있던 옛 마음과 옛 성품’을 말합니다. 회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외칩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입니다. 이방인 속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구별해 내는 종교적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별(聖別)’을 상징합니다. 이 육체의 성별이 심령의 성별과 함께 하지 않을 때에 그것은 위선이며, 가증한 타락의 위장술에 불과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던 것도 성별되지 못한 삶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갈아엎으라고 하신 것은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삶의 경영입니다. 세상적인 경영을 버리고 하나님의 경영방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할 수 없는 생활을 한다면 이는 온 삶이 잡초로 뒤덮인 것과 갔습니다. 이러한 성별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육신적 성품을 말합니다. 인간의 육신적 성품대로 따라가면 마음 밭이 잡초로 무성하게 됩니다. 이 상태를 로마서 1:28-31절에서는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 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마음 밭에는 어떤 영적인 열매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삶의 열매를 기대한다면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본문 1절 후반절부터 2절 상반절에서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4절 상반절에서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거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영적 회복운동이며 영적 개혁운동입니다. 삶의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우리의 묵은 마음을 갈아엎고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호와께로 돌아왔다면 맹세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맹세를 하라고 하십니까? 2절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서 자신이 맹세한 말을 스스로 충실하게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활 속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좋은 씨를 뿌린다는 것은 삶의 경영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바른 삶의 경영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경영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결국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딴 일을 하게 됩니다. 학생들의 바른 경영은 당연히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해야할 시간에 공부하지 않게 되면 결국 그 시간에 해서는 안 되는 엉뚱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탈선하게 됩니다. 공무원들이 정도를 걷지 않게 되면 결국 유혹에 빠지게 되고 탈선경영을 하게 되어 패망하게 됩니다. 요즈음 법조계의 비리를 잘 알지 않습니까? 누구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엉뚱한 욕망에 빠지게 됩니다. 물질도 바르게 사용되지 않으면 엉뚱한 욕망이나 죄악 된 곳에 사용되어 집니다. 갈라디아 6:7절(현대어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 “잘못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무시당하실 분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성도들의 영적인 경영도 그러합니다. 주일을 휴일로 생각하여 자신의 여가선용의 기회로 사용하고, 하루 종일토록 하나님을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깝게 여겨지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있던 시간도 없어지는 그런 경영이라면 자신의 장래를 위한 씨 뿌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형통한 삶의 좋은 열매를 기대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경영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10-11절에서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하십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난 기사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어느 조그만 마을에 사범교육을 받고 있는 흑인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격증을 딸 때까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주유소에서 부업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고객들은 흑인 청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 백인 종업원에게서만 휘발유를 사려고 했습니다. 주인은 몇몇 고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것을 눈치 채고 흑인청년을 해고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때 이웃에 사는 한 그리스도인인 여인이 주유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청년을 고용하고 나서 몇 사람의 고객을 잃은 것 같습니까?” “18명 정도, 아마 20명쯤 될 겁니다.” “그러면 제가 20명의 새 고객을 끌어들인다면 저 청년을 계속 고용하시겠습니까?”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 그리스도인 여인은 20명뿐만 아니라 5명을 더 끌어들였습니다. 물론 흑인청년은 계속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퍼져 나갔고 '리더스 다이제스트'지에서는 이 이야기를 기사로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들이 많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용기를 가지고 선행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푼 작은 친절이라도 그 효과에 있어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바른 삶의 경영이며 좋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하여 믿음의 용기를 냅시다. 적은 양의 씨앗이라도 뿌려야 거둘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왕 뿌릴 때에는 우리의 수고와 헌신과 기도와 사랑이 담긴 최상의 삶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리하면 반드시 좋은 삶의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편 126:5-6절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