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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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06-04 20:52
***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 누가복음 13:6-9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3:6-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의 항구들은 방파제를 설치하고, 해안을 준설하여 큰 배가 해안에 바로 접안할 수 있도록 부두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항구가 있기 전에는 배들이 밀물 때를 기다려 항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해안이 얕기 때문에 접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해당하는 라틴어 낱말이 '옵 포르투(ob portu)'입니다. 즉 ‘부두 쪽으로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항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박’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기회’를 'opportunity'라고 하는데 원래 이러한 뜻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그 밀물 때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조수가 또 한번 밀려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단어의 배경을 활용해서 기회에 대한 유명한 글을 썼습니다.
“인간사에는 간만이 있나니 만조를 타면 행운에 이르거니와 놓치면 삶의 그 모든 항해가 얕은 곳에, 불행에 매이게 된다. 그러한 만조 위에 우리는 지금 떠 있나니 물때가 맞을 때에 흐름을 타야 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네 모험은 실패한다.”
성경말씀에서도 ‘기회’에 대한 말씀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에베소서 5:16절의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모든 기회를 잡으라.'(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가 기회의 중요성을 말하며,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의 말씀도 역시 기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에 대한 의미입니다. 본문 앞 구절인 1-5절까지의 내용이 회개하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의 사람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충분히 주시지만, 그 인내는 한계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다음의 구절에는 18년 동안 귀신에 사로잡혀 병들었던 한 여인을 고쳐주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6절에서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에 병 고침을 받는 것을 책망하는 회당장을 나무라셨습니다. 이는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언제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기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상고하려합니다.
1.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전도대원 중 ‘단 피아트(Dan Piatt)’라는 분에 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피아트’는 경제계의 대부인 어떤 회장을 전도하기 위하여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 회장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회장이 피아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만 불짜리 사업 계약을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마치고 오늘밤에 당신에게 전화할 터이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합시다.”
피아트는 한밤중까지 기다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렇게 새 날이 밝았습니다. 피아트가 조간신문을 읽는 중에 사회면에서 그 회장이 지난밤 9시30분경에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그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병원 당국자는 이렇게 그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어제 초저녁에 응급실에 실려 온 그는 급한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라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사망했습니다. 무슨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나 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귀의(歸意)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미루다가 회장처럼 기회를 놓친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진리는 온전한 회개 없이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죄를 가진 채로 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5-7절을 봅시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본 비유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성도들이며, ‘주인’은 하나님, ‘과원지기’는 하나님의 일꾼들, 즉 사역자들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에 포도나무가 아닌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는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마 주인의 식탁을 위하여 특별히 포도원 주위에 심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무화과나무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 많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인은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무화과나무를 살폈지만 번번이 허탕을 쳐야만 했습니다. 3년을 빈손으로 돌아온 주인은 과원지기를 불러서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땅만 차지하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은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1년의 여유를 더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과원지기가 말합니다. ‘이번 1년 동안에 특별 관리를 하겠습니다.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그 때는 주인의 뜻대로 찍어버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불러내어 백성으로 삼으신 성도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시며 쓸모없는 가지는 자르고 거름을 주는 등 삶의 상황과 여건들을 조성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열매를 맺도록 환경을 조성하시며 충분히 기다리십니다. 올해도, 또 올해도 하면서 3년 동안 열매를 기다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5:2절에서 주님은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통상 유실수는 묘목을 심은 후 5년 동안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자라는데 모든 영양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구하신 것은 열매 맺을 연한이 찬 이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8년이 넘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관심이 많은 만큼 기대도 크시고 간섭도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성도들이 잘못 갈 때 징계로도 나타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5,6절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징계는 회개의 기회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주인은 ‘찍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즉시로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심으로써 판결에 대한 집행을 유예하신 것입니다. 이는 심판의 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집행이 보류된 것입니다. 마치 세상 법정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계시록 3:19절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9절에서는 유예기간동안 열매를 맺으면 사죄 선언이 내리겠지만, 여전히 열매가 없으면 이미 선언된 심판을 집행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회개의 기회는 마냥 계속되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또 다시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5절, 마태복음 25:10-12절에서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이 뒤늦게 기름을 준비해서 혼인잔치 집에 도착했지만 이미 문은 닫힌 후였습니다. 또한 야곱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도 뒤늦게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을 후회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2:17절에서 에서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 지금 지금 기회가 있을 때 회개의 기회를 잡으십시오.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2.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안식일에 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주님의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팔 년 동안이나 귀신에게 사로잡혀 병을 앓고 있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즉시 고쳐주셨습니다. 그 일을 본 회당장은 고침을 받은 여인에게 화를 내면서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고 책망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탄식하시며 되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가르치십니다.
동물들에게 꼴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는 것은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즉시 시행하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에게는 다음 기회를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적절한 때에 맺혀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때를 넘기고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십니다. 이제 그 기회마저 놓친다면 다시는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여객선 센트랄 아메리카호가 한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기관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구조요청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상선이 구조 요청의 신호를 듣고 항로를 바꾸어 센트랄 아메리카 호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상선의 선장은 아메리카호의 승객들을 모두 자기 배에 옮겨 실으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메리카 호의 선장은 승객들을 밤중에 옮기려면 힘들고 위험부담도 크고, 또 기관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르니 잠시 가까운 곳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이 트기도 전, 마지막 교신이 있은 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아메리카 호는 모든 승객을 태운 채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렸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은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오늘처럼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전도든지, 봉사든지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십시오. 혹시 지금 가는 길이 잘 못 되었다고 깨닫는다면 지금 즉시 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아메리카 호의 선장처럼 ‘아직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노력을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께 의지해야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적절한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 이사야 5:1-2절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감동이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자꾸 거부하고 묵살하면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이든지,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이든지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하십시오.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3:6-9,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의 항구들은 방파제를 설치하고, 해안을 준설하여 큰 배가 해안에 바로 접안할 수 있도록 부두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항구가 있기 전에는 배들이 밀물 때를 기다려 항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해안이 얕기 때문에 접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해당하는 라틴어 낱말이 '옵 포르투(ob portu)'입니다. 즉 ‘부두 쪽으로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항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선박’이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기회’를 'opportunity'라고 하는데 원래 이러한 뜻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그 밀물 때를 위해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조수가 또 한번 밀려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는 이러한 단어의 배경을 활용해서 기회에 대한 유명한 글을 썼습니다.
“인간사에는 간만이 있나니 만조를 타면 행운에 이르거니와 놓치면 삶의 그 모든 항해가 얕은 곳에, 불행에 매이게 된다. 그러한 만조 위에 우리는 지금 떠 있나니 물때가 맞을 때에 흐름을 타야 하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우리네 모험은 실패한다.”
성경말씀에서도 ‘기회’에 대한 말씀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에베소서 5:16절의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모든 기회를 잡으라.'(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가 기회의 중요성을 말하며, 지나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의 말씀도 역시 기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에 대한 의미입니다. 본문 앞 구절인 1-5절까지의 내용이 회개하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과 실로암 망대의 사람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충분히 주시지만, 그 인내는 한계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다음의 구절에는 18년 동안 귀신에 사로잡혀 병들었던 한 여인을 고쳐주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16절에서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에 병 고침을 받는 것을 책망하는 회당장을 나무라셨습니다. 이는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언제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기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상고하려합니다.
1.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전도대원 중 ‘단 피아트(Dan Piatt)’라는 분에 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피아트’는 경제계의 대부인 어떤 회장을 전도하기 위하여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그 회장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회장이 피아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백만 불짜리 사업 계약을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일을 마치고 오늘밤에 당신에게 전화할 터이니 그때 만나서 이야기를 합시다.”
피아트는 한밤중까지 기다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고 그렇게 새 날이 밝았습니다. 피아트가 조간신문을 읽는 중에 사회면에서 그 회장이 지난밤 9시30분경에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자세한 내용을 알려고 그 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병원 당국자는 이렇게 그 당시의 상황을 알려주었습니다.
“어제 초저녁에 응급실에 실려 온 그는 급한 숨을 몰아쉬면서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라는 말을 되풀이 하다가 사망했습니다. 무슨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나 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귀의(歸意)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기회를 미루다가 회장처럼 기회를 놓친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진리는 온전한 회개 없이는 그리스도 안에 머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죄를 가진 채로 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5-7절을 봅시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본 비유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성도들이며, ‘주인’은 하나님, ‘과원지기’는 하나님의 일꾼들, 즉 사역자들입니다. 주인은 포도원에 포도나무가 아닌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는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마 주인의 식탁을 위하여 특별히 포도원 주위에 심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무화과나무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 많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주인은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면 무화과나무를 살폈지만 번번이 허탕을 쳐야만 했습니다. 3년을 빈손으로 돌아온 주인은 과원지기를 불러서 ‘열매도 맺지 못하면서 땅만 차지하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은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1년의 여유를 더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과원지기가 말합니다. ‘이번 1년 동안에 특별 관리를 하겠습니다.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그 때는 주인의 뜻대로 찍어버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불러내어 백성으로 삼으신 성도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시며 쓸모없는 가지는 자르고 거름을 주는 등 삶의 상황과 여건들을 조성하시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열매를 맺도록 환경을 조성하시며 충분히 기다리십니다. 올해도, 또 올해도 하면서 3년 동안 열매를 기다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5:2절에서 주님은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통상 유실수는 묘목을 심은 후 5년 동안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자라는데 모든 영양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를 구하신 것은 열매 맺을 연한이 찬 이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8년이 넘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관심이 많은 만큼 기대도 크시고 간섭도 하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깊은 사랑은 성도들이 잘못 갈 때 징계로도 나타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5,6절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징계는 회개의 기회입니다. 열매를 맺어야 할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주인은 ‘찍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심판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심판은 즉시로 집행되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한 번 더 주심으로써 판결에 대한 집행을 유예하신 것입니다. 이는 심판의 면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이미 이루어졌지만 집행이 보류된 것입니다. 마치 세상 법정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계시록 3:19절에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9절에서는 유예기간동안 열매를 맺으면 사죄 선언이 내리겠지만, 여전히 열매가 없으면 이미 선언된 심판을 집행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주어지는 회개의 기회는 마냥 계속되지 않습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한 번 지나간 기회는 또 다시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5절, 마태복음 25:10-12절에서 기름을 예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이 뒤늦게 기름을 준비해서 혼인잔치 집에 도착했지만 이미 문은 닫힌 후였습니다. 또한 야곱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도 뒤늦게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을 후회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 12:17절에서 에서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러분 지금 지금 기회가 있을 때 회개의 기회를 잡으십시오.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2.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안식일에 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시는 주님의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팔 년 동안이나 귀신에게 사로잡혀 병을 앓고 있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즉시 고쳐주셨습니다. 그 일을 본 회당장은 고침을 받은 여인에게 화를 내면서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고 책망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탄식하시며 되물으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를 놓치지 말 것을 가르치십니다.
동물들에게 꼴을 먹이고 물을 마시우는 것은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즉시 시행하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에게는 다음 기회를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적절한 때에 맺혀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때를 넘기고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십니다. 이제 그 기회마저 놓친다면 다시는 열매를 맺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여객선 센트랄 아메리카호가 한 밤중에 바다 한 가운데서 기관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구조요청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상선이 구조 요청의 신호를 듣고 항로를 바꾸어 센트랄 아메리카 호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상선의 선장은 아메리카호의 승객들을 모두 자기 배에 옮겨 실으라고 했습니다. 그 때 아메리카 호의 선장은 승객들을 밤중에 옮기려면 힘들고 위험부담도 크고, 또 기관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르니 잠시 가까운 곳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이 트기도 전, 마지막 교신이 있은 지 약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아메리카 호는 모든 승객을 태운 채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해버렸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일은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오늘처럼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전도든지, 봉사든지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십시오. 혹시 지금 가는 길이 잘 못 되었다고 깨닫는다면 지금 즉시 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아메리카 호의 선장처럼 ‘아직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노력을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하나님께 의지해야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적절한 기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탄식을 들어보십시오. 이사야 5:1-2절입니다.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혹시 지금 여러분의 마음에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감동이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자꾸 거부하고 묵살하면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이든지,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이든지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