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048회 작성일 2006-12-26 23:25
***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 / 눅 2:15-20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2:15-20,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옛날에 어떤 구두 수선공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수선도구를 넣은 작은 나무궤짝을 메고 다니면서 구두수선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둣가게를 마련하려는 꿈을 안고 매일 조금씩 모아서 복권을 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복권추첨 방송을 듣다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바로 일 억원이 걸린 1등 번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권이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 돈으로 가게를 장만하면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하던 일도 던져버리고 한 달음에 집으로 달렸습니다. 가던 길에 아직도 수선 통을 메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마침 다리를 지나던 중에 수선 통을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주머니를 뒤지며 복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복권을 수선 통에 넣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 충격으로 앓아누워버렸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할 당시에 이 마을에 허름하게 사시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그 분은 혼자 사셨는데 일년 내내 후줄근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별명을 ‘헐랭이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참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트가 생기고는 할머니도 아파트에 입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에 몇 천원 나오는 전화비가 아까워서 전화도 쓰지 않는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는데, 할머니는 재산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적게는 몇 백 만원에서 몇 천 만원까지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서 살았습니다. 그 후에 가끔 만날 때면 ‘예수 믿으세요.’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었고, ‘아끼지만 말고 옷도 좀 사 입으세요.’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비도 없고 장례비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죽고 나니 돈 빌려간 사람들이 모두 모른 척 한 것입니다. 나중에야 빌려간 몇몇 사람들이 일부씩 내어서 장례를 치렀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전도서 2:21절에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고 했으며 24절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6:6절에서는 “저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라고 지혜자는 탄식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진리는 더욱 명확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주시는 기쁨과 평안의 값진 선물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온갖 은혜와 복을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서 ‘받았다.’ 혹은 ‘소유했다.’는 것은 ‘지식적인 면’입니다. 하지만 ‘누린다.’는 것은 실제 생활 속에서 마음껏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5:18절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사실에 대한 확인증명서와 같은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1절부터 본문까지는 예수님의 탄생 경과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이 다름 아닌 가장 비천한 계급의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복된 소식,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을 가장 비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알리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잘 나타나는데, 마가복음 2:17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신 말씀 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의도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강절 네 번째 주일에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영광스러운 개선도 아니요, 인간세계를 감찰하려 하심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진정한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은 스스로의 욕망에 팔려 죽음을 자초한 인간을 살려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것도 당신 자신이 스스로 대속의 제물이 되시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위대하신 구원자의 강림을 환영하는 인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자식이 태어나도 기뻐해주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세상에 오셨지만 환영받지를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53:3절에서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탄생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다만 한 밤중에도 깨어 있어서 양 무리를 보호하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셔서 이 크고 위대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목자들은 한 밤중에 하늘이 열리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황홀하여지고 그 속에 나타난 천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혼이 나갈듯한 천상의 아름다운 찬양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 엄청난 광경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전하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은 유대인들이 자나 깨나 기다려오던 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제자들이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는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탄생의 현장을 찾아서 확인하고 천사들이 전한 소식을 그들에게도 전했습니다. 목자들은 이 기이한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 속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1. 하나님께서 목자들에게 하늘의 기쁜 소식을 알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목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셨겠습니까? 왜 사람들에게 천하게 여김 받는 목자들에게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목자들은 지위와 권력과 명예와 부가 없는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입니다. 그 시대의 목자들은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신용을 받지 못하고 멸시받는 계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장 고되고 험한 일을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낮은 자리로 오심에 대한 걸맞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것과 같이,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이루실 사역에 대한 예고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누이신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짐승처럼 되어버린 인간세상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첫 번째 대상을 목자들로 선택하신 것도 예수님께서 인생의 목자로 오신 것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짐승인 양떼를 치는 목자를 통하여 인생의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역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2-3)

또 한 가지 하나님께서 목자들에게 하늘의 기쁨을 가장 먼저 누리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들의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믿음입니다. 천사들의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주저함 없이 베들레헴으로 달렸습니다. 16-17절에서 몇 가지 단어를 유의해 보아야 합니다. “빨리 가서”, “찾아서”, “보고”, “고하니” 그리고 20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는 이 말들입니다. 목자들은 양들이 잠들어 있는 짧은 시간에 소식에 대한 모든 것을 확인하고 경배하고 다시 생업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의 행동을 표현한 이 말들만 들어도 목자들의 열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목자들은 비록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하나님께로 향하는 열망만은 누구보다도 간절했습니다. 아마도 목자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이러한 열망이 있은 이유는 그들이 기르는 양들에 있을 것입니다. 당시의 문헌에는 ‘베들레헴 근교에서 길러지는 양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는 양들을 최선을 다하여 먹이고 보호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향하는 경외심이 목동이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열망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들에게 하늘의 기쁨을 가장 먼저 누리는 행복을 선물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상 2:30절에서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시며, 시편 25:14절에서는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편 145:19절에서는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2. 그러면 지금 우리의 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하늘의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열망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목자들처럼 하나님을 열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대강절을 지내오면서도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했다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입니다. 믿음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을 때,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눈물과 머리털로 씻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7:47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한다고 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열망은 뜨거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열망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일에 가장 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혹시 사도 바울이 사울일 때처럼 잘못된 열정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스코틀랜드의 목사이며 찬송가 작가인 ‘보나르’(Bonar Horatius 1808-1889/ 335-양떼를 떠나서, 426-날위하여 날위하여)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더니 보나르의 신앙열심을 저울질한 후 ‘1백 근이 된다.’고 하면서 그 열심을 분석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14근 파당적인 열심 15근 명예 때문에 나타내는 열심 22근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내는 열심 23근이었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은 26근 뿐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보나르는 자신의 열심이 얼마나 인간적인 발상에서 우러난 것인가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열망의 사람으로 돌아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살아가는 인생길이 고달프고 기쁨이 없습니까? 여러분이 힘들여서 일하는 것들이 단순하게 이 땅에서의 육신의 생존을 위한 것입니까? 주일이 되어도, 성탄절이 되어도, 마음에 감동이 없습니까? 열정을 회복하십시오. 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직 열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깊이 갈망해야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재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리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여러분의 열심에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위대하신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Total 1,419건 63 페이지 RSS
설교모음 목록
No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
  • 배의신
  • 12-26
  • 7049
488
영원한 삶을 위한 집이 있습니까?
  • 배의신
  • 12-17
  • 7175
487
인간성 - 우리가 닮아야 할 주님의 성품
  • 배의신
  • 12-14
  • 6727
486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 배의신
  • 12-03
  • 6227
485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 배의신
  • 11-25
  • 7610
484
하나님의 마음에 쏙드는 예배
  • 배의신
  • 11-20
  • 6940
483
응답이 약속된 기도
  • 늘푸른
  • 11-12
  • 7309
482
보상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 배의신
  • 11-06
  • 6525
481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
  • 배의신
  • 10-29
  • 6652
480
세상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삶
  • 배의신
  • 10-22
  • 6869
479
완전한 생명으로의 연합
  • 배의신
  • 10-15
  • 6304
478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
  • 배의신
  • 10-09
  • 7241
477
비우는 삶, 채우는 삶
  • 배의신
  • 10-01
  • 7282
476
삶의 문
  • 배의신
  • 10-01
  • 5781
475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어
  • 배의신
  • 09-20
  • 8726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