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이 약속된 기도
작성자 늘푸른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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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11-12 21:48
*** 응답이 약속된 기도 / 누가복음 18:1-8
누가복음 18:1-8,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들어가는 말
(석류 하나를 보여주면서)
여러분,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이 맛이 어때요? 아마도 먹어보신 분은 이미 입에 침이 고일 것입니다. 새콤달콤한 맛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들어도 보았고, 직접 보기도 했지만 맛을 보지 못한 사람은 몸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옛 말에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고, “먹은 사람이 물을 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생뚱맞게 말씀을 시작하는 이유는 지금부터 전하는 말씀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하여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수도원을 떠나갔습니다. 그러자 한 수련자가 수도원을 떠나가는 자기 동료들을 말리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원장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왜 그들이 떠나가는 것을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좇아간다. 그러면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간다.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온다. 그렇지만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좇아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길은 자신이 체험하지 않고서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달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싫다고,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불평하고 비난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대부분 이러합니다. 특히 신앙의 삶 중에서도 이 시간의 주제인 ‘기도’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길이 보이지 않아 답답할 때에 눈물과 한숨으로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되고 이루어질 때의 그 기쁨은 말로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지루하고 힘겨운 노동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경험하고 알았던 다윗은 시편 34:8절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경험을 통해서만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의 생명줄이자 하나님과 연결된 유일한 통로입니다.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연결될 길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리스도인치고 기도에 대하여 고심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의 모양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에 어떤 특정한 형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요구사항은 있습니다. 지금 그 내용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이 시간에는 본문과 연결해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1. 본문의 내용과 그 배경을 살펴봅시다.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응답 받는 기도의 모델을 제시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거만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편견으로 대하는 오만불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도시의 한 과부가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을 그 재판관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도 배경도 없는 과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내 원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한동안 과부의 소청을 무시하던 재판관이 매일 찾아와서 떠들어 대는 것이 귀찮을 뿐 아니라 다른 일조차 힘들게 했습니다. 결국 재판관은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과부의 소청을 들어줄 결심을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간청하는 과부의 소청을 들어주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녀들의 소청을 들어주지 않으시겠느냐?”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야기 끝에 묘한 뉘앙스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 주님께서는 ‘간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응답을 얻는 기도의 조건이 ‘믿음’이라는 사실도 덧붙이십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마지막 세대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약속된 ‘믿음의 기도’를 찾기가 힘들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 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라고 기도 쉬는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기도의 줄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일 기도의 줄을 이어가고 있습니까? 이제 응답이 약속된 기도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살펴봅시다.
2.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1)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첫 번째 조건은 ‘믿음’입니다.
본문 8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에서 말씀하는 ‘믿음’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실천적인 믿음’입니다. 즉 비유 속의 과부처럼, ‘어떠한 곤경에 처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지속적으로 간구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염려스러운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분명한 사실조차 거부하며 간구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의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또한 기도를 하지만 ‘응답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형식적인 기도’에 치우치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것입니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인‘웰츠(Herbert George Wells)’라는 분이 쓴 단편소설 중에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동안 30년을 한결같이 기도했습니다. 이 30년의 기록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은 대기록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오랫동안 한결같은 대주교의 기도하는 모습을 부러워하였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주교의 기도는 화려한 언어로 매끄러운 내용이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으며, 듣는 이의 애간장을 다 녹일 만큼 간절했습니다. 심지어 그 기도를 듣기 위하여 먼 곳에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대주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것도 그 자랑거리던 기도시간에 죽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습관대로 거룩한 복장을 하고 마음을 모아서 늘 하던 대로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라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그만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는 화려한 언어나 애간장을 녹이는 감각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사정을 아시며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6-8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의심’은 곧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악입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는 말씀대로 응답이 약속된 첫 번째 조건은 ‘오직 믿음의 기도’입니다.
2)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두 번째 조건은 ‘부르짖음’입니다.
본문 7절을 봅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부르짖다”의 원래 의미는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도움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들어주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로 강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간구하다’라는 말로도 가능한 ‘사생결단하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요청은 많습니다. 예레미야 29:12절에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하시며, 33:3절에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22:23절에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고 하시며, 시편 기자는 77:1절에서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하나님께 내 음성으로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신약에서도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부르짖는 간구를 예수님이 들으셨습니다. 마가복음 10:47,48절에서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친히 보이셨던 것처럼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하여 간청하는 기도’입니다. 마치 헤엄을 치지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그런 간절함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부르짖는 기도가 응답이 약속된 기도입니다.
3)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세 번째 조건은 ‘끈질김’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이 말씀은 비유의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의 목적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즉 ‘응답될 때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기도하는 끈질긴 기도’를 말합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는 무시되고 외면당하는 수모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간청하는 끈질김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도 바로 이 “포기할 줄 모르는 끈질김”입니다. 누가복음 21: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히브리서 6:12절에서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서 오래 참음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감동이 됩니다. 옛 말에도 “한 우물을 파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 가지의 목표를 꾸준하고 끈질기게 공략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집적 저기집적 조금씩 긁적거려 놓으면 땅만 버리지 좋은 물을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도 심지가 곧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얻을 때까지 문을 두드리는 끈질긴 기도가 응답이 약속된 기도입니다.
4) 응답이 약속된 기도의 마지막 조건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태복음 6: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로마서 8:27절입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성도의 기도를 보증하는 도장입니다. 아무리 믿음 안에서 끈질기게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이 우리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며, 내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성도의 기도를 보증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이 중보자로 새겨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13,14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생명줄입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약속된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며 마음과 삶을 다하여 부르짖는 기도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응답을 얻기까지 끈질기게 하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공적인 기도가 성공적인 삶을 이루게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줄을 놓지 마십시오. 우리의 아름다운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기도의 삶으로 형통한 승리의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